세마 성당 2018. 5월 영적독서 모임

작성자 : 글라라    작성일시 : 작성일2018-05-18 12:50:07    조회 : 466회    댓글: 1

세마 성당  2018. 5월 영적도서 : 「눈물 한 방울」


지은이 : 앙젤 리에비 • 에르베 드 샬랑다르
앙젤 리에비는 일간지 「알자스」 기자 에르베 드 샬랑다르를 만나 자신이 겪은 체험을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에르베 드 샬랑다르는 「알자스」에 앙젤 리에비의 이야기를 실어 ‘아셰트Hachette상’을 받았다. 그다음 앙젤 리에비의 체험을 책으로 출간해 ‘증언의 순례자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서규석
갑자기 아내의 뇌 중앙부위 동맥이 파열되고, 슈퍼 박테리아에 감염되었다가 더 심각한 2차 출혈이 발생하자 의료진은 장례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때 프랑스에 있는 역자의 딸이 보내준 「눈물 한 방울」을 읽고, 아무리 중환자여도 의식이 있다는 저자의 체험이 크게 다가왔다. 그 후로 아내에게 사랑을 전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느껴 희망을 가지고 아내 곁을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의학적으로 가망이 없던 아내가 40개월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이제는 그와 함께 생활하고 여행도 다닌다.(조선일보 2018. 4. 29. 기사)


나눔의 글

요양병원에서 3년 남짓 기도 봉사를 하면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고통을 못 느끼는 것처럼 평화로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한, 의식이 없는 환자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이 분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청하는 간절한 화살기도와 주모송을 바치고 병실을 나올 때 마음이 무척 무거웠습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링겔액 · 인공호흡기 · 심장박동기를 달고서 몇 날 몇 칠을 꼼짝도 없이 잠자듯 누워 있는 이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눈물 한 방울」은 저자의 뇌사상태 체험을 마치 독백獨白처럼(35가지 소주제) 써내려간 생생한 증언의 병상 기록입니다. 

 

저자의 말
 
이 책을 쓰는 내 소망은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해야 할 말을 하는 데 있다.
이 이야기는 의학개론도, 모험소설도, 전기도 아니다. 바로 투쟁이야기다.
잊어버릴까? 드러낼까? 되새길까? 초월할까? 묻어버릴까? 털어놓을까? 나는 자주 이런 질문을 나 자신에게 했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긍정적이어야 한다. 원한이나 보복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나는 소송을 하거나 책임을 따지는 일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환자를 돌보는 분들이 환자의 소리를 듣고 한 번 더 생각하길 바란다.
예전의 나처럼 말 못하고 움직일 수 없었던 분들에게 내 체험이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잘못은 발생할 수 있으나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나와 같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만 있다면, 내가 겪는 고통을 더 기쁜 마음으로 견딜 수 있을 것이다.

 

1. 깜깜한 밤에 혼자서
여기가 어디지? 주변이 깜깜하다. 암흑이다. 내가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부르려고 해보지만 입 밖으로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내 생각만 메아리칠 뿐이다.

“230번 환자 벌써 치료했어?”

그들은 왜 내 눈을 뜨게 해주고 턱을 풀어주러 오지 않는 걸까? 왜 지나가기만 하는 걸까? 왜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않는 걸까? 깊은 밤, 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생각한다. 깨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들이 생생히 기억난다.

앙젤은 의식이 돌아오면서 이렇듯 병실에 모든 소리를 그녀는 듣고 있으며 생생히 느끼며 생각한다.

2. 손가락 끝이 따끔거린다
2009년 7월 13일 월요일.
나는 활기가 넘친다. 2월에 디스크 수술을 받았지만 이미 지난 이야기다. 운동을 시작했고 자전거도 열심히 탔다. 7월 13일 새벽이 오기 전, 아침마다 하듯이 욕실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화장을 했고 내 상태는 좋았다. 

이른 아침, 햇살이 비치는 회사 주차장으로 출근! 첫 그림자가 깔린다. 손가락 끝이 따끔따끔하다. 신경통일까? 모든 손가락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조퇴를 하고 작업실에서 나왔다. 집에 온 나를 보고 남편 레이가 놀란다. 그가 내미는 통증 완화 알약을 먹고 누웠다.

하지만 내 상태는 더 나빠졌고 두통은 더욱 심해졌다. 나는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왜 내 머리가 터질 지경인지, 왜 마비되어가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드는지....
구급차가 도착하고 의사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내 손의 통증, 두통, 마비되어가는 느낌에 대해 묻고는 어떤 말도 해주지 않는다. 내 증상은 어떤 병리학과도 연결되는 것이 없다.

3. 잘못된 선택
나를 실은 침대가 병원 복도를 달린다. 벽에 부딪히고 문에 부딪치고, 그때마다 내 머리는 터질 것 같다.
표현하고 호흡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반사 능력을 잃어가는 것 같다.
이제는 서서히 마비가 오는데 저려오는 느낌보다 더 기분이 나쁘다. 내가 살아있는 건지 죽은 건지 잘 모르겠고 방금 일어난 일도 잊어버린다.

드디어 의사들이 내 백혈구에서 무언가 잘못된 것, 기능이 이상한 것을 찾아낸다. 결정은 내려졌다. 내 입 안에 관을 삽입하고 인공호흡기로 연결해 생명을 유지 하는 거다.
의사 선생님이 레이에게 설명해준다.

“부인에게 하루나 이틀정도 혼수치료를 시행하려고 합니다. 치료를 쉽게 하는 방법으로 신진대사를 낮추고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아들이도록 할 것입니다.”

더는 이런 대화를 따라갈 수 없다. 그들은 나를 살리기 위해 어두운 밤으로 내몬다. 그런 다음 느닷없이 내 생명을 위험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것이다.

4. 내 몸은 감옥이다
아직도 암흑이다. 깜깜하다. 이 칠흑 같은 암흑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사람은 모든 것에 적응하니까.
여러 날이 지났다. 잠에서 깨어났는데도 밤은 물러가지 않았다. 의사들, 레이와 카티는 내 의식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까? 모든 것이 고요하고 호흡 소리와 기계 소음만 연속으로 들린다.

레이가 들어왔다. 누군가와 얘기하고, 또 어떤 여인과 몇 마디 나누더니 지금은 내 옆에 있다. 나는 그를 느낀다. 그가, 내 남편이 여기 있다. 나는 떨며 레이한테 말을 건네 보지만 소란스런 내 생각만 울린다. 내 말 들려? ....그는 대답이 없다.

레이는 가고, 나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울부짖지만 절규는 내 안에서만 일어날 뿐이고, 움직인다고 믿지만 완전히 부동 상태다. 사람들에게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어떻게 말해야 한단 말인가?

나무에 나를 비유해 본다. 나무는 움직일 수 없고 말도 없고 잘라도 소리치지 못한다. 하지만 살아 있다. 만일 누군가 나를 자른다면 반항하지 못하리라.
나는 두꺼운 껍질로 둘러싸인 나무가 된 느낌이다. 내 안에서 두드려 보지만 아무도 듣지 못한다.
기필코 저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야 하는데 나는 소리 지를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단지 듣고 생각만 할 수 있다.

갑자기 잠에서 깬다. 어렴풋한 빛에 눈이 부시다. 안과 의사가 내 한쪽 눈꺼풀을 들어 올려 눈 속 깊이 불빛을 비춰본 다음 다시 덮었다. 내 눈꺼풀의 커튼이 닫히고 다시 암흑이다.

그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게 말이 되는가? 안절부절 못하는 내 마음을 읽어내지 못했다고? 소리치고 울며 구조를 청하는 내 마음을 .....
내 눈 속 깊은 곳에서 생명의 불씨 한 점도 못 봤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죽은 나무에 불과하고 강물에 던져버릴 나무둥치만도 못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5.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
“앙젤, 혼수상태에도 너는 예뻐!”
내 이웃이며 30년 지기 친구 베르나테트 목소리다. 내가 혼수상태라고?

그러니까 내가 아직도 혼수상태라는 거다. 의사들이 보기에 하루 이틀이라던 그 망할 혼수상태가 여태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나는 완벽하게 깨어 있는데 그들은 나를 무의식 상태에 있다고 믿는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들을 향해 외친다. 나 여기 있어! 얘기도 듣고 있어. 혼수상태가 아니라고! 와서 보고 날 좀 구해 줘. 나를 구해주지 않고 뭐하고 있는 거야?
내가 의식이 있다는 걸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들이 하는 말을 나는 이렇게 다 듣고 있는데 어째서 그들은 하나도 모르는 걸까?

그들은 미쳤다. 이건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다.
혼수상태는 이런 게 아니잖아. 나한테는 초감각적인 느낌이 있다. 아직 암흑 속이지만 감각은 잃지 않았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나를 만질 때 내 몸은 그 압력을 느낀다.
청각은 제대로 기능할 뿐 아니라 오히려 보통 때보다 더 예민해졌다. 아주 미세한 소음도 분석할 줄 알기에 ......

특별히 나를 살릴 수 있는 사람들 소리에 굶주려 있다. 병원 직원들, 의사 선생님들, 가족, 친구들, 직장 동료들.... 현재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려면 모든 것을 들어야 하기에 내 귀가 눈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나는 친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은 나를 흔든다. 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도 그들은 나를 잊지 않고 보러온다.

레이가 내 손을 잡는다. 내 팔을 조금 들어 올렸다가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내 팔은 인형처럼 다시 내려진다.

환자들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있을 때만 존재한다. 레이와 카티(딸)의 돌봄이 없었다면 나는 죽었을지 모른다.

문병 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환자는 희망이 없다.

6. 알 수 없는 짐승의 송곳니
“이런 일 한 적 있어?” “아니요, 한 번도...”
간호사들이거나 간호조무사들이다. 그들이 나를 돌봐주려나 보다. 코에 뭔가를 밀어 넣는 동시에 입안에 또 다른 것을 집어넣는다. 그런 다음 한 손을 내 목구멍 깊이 집어넣는데 콧구멍으로 물이 쏟아지는 것 같다. 마치 물에 빠져 죽는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짐승의 송곳니와 발톱에 속이 찢기는 것 같기도 하다.

참을 수 없는 통증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나는 발버둥 칠 수 없을 뿐 아니라 표현할 수도 없기에 겉으로는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고 얌전히 있다.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으며 작은 경련조차 없다.

창자를 끄집어내는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요하게, 고통이 없다는 듯, 겉으로는 동조하는 듯, 부동자세로 있다.

왜 이런 고문을? 왜 이런 폭력을?
흐르지 않는 눈물이 움직이지 못하는 내 몸을 흠뻑 적신다. 하느님 저를 여기서 구해 주세요! 제가 지옥에 떨어진 건가요?

이제 나는 괴롭힘 당하는 짐승의 삶을 알겠다. 최소한 가족들이 여기 있을 때는 나를 고문하지 않는다. 내 번뇌가 줄어든다. 사람들이 계속 나를 찾아오면 좋겠다.

곧 사람들의 방문은 끊어지고 고문관들이 들어온다. 그들은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나를 취급한다. 치료가 끝나자 어떤 분이 여러 번 반복해서 ‘죄송해요 부인, 죄송해요’하고 용서를 구하는데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7. 관타나모 수용소처럼
“선생님, 부인이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레이가 대답한다.
“네 아주 좋아해요”

암흑에 있으면서 밤인지 낮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오래도록 고요한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밤임을 알고 그럴 때면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했는데 이제는 조용한 시간이 없어졌다. 전혀 없다. 대중음악에 이어서 고전음악이 나오고 다시 대중음악....

음악이 나를 미치게 할지 몰라. 언젠가 내가 여기서 나가는 날, 내 정신이 똑바로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관타나모 수용소에서는 수감자들에게 연속으로 음악을 들려주는 게 지독한 고문이라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내가 치료받아야 할 곳에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범죄로 고문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또다시 나를 ....

8. 나는 죽는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부담이 덜어지기도 하고 겁나기도 하는데 어쨌든 겁에 질릴 때가 더 많다.

그들이 내게 축농증 시련을 주러 다시 왔다.
“하루 한 번만 하면 돼. 솔직히 우리가 이렇게 애먹을 필요가 없는 게 이 환자 곧 저승에 간대! 대장이 그랬어.”

나는 다시 고함을 지른다. 나 혼자만 듣는 이 처참한 고함을!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다시 말하지만 어떻게 그딴 소리로 내 생명을 단정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잘 지내고 있는데 내가 잘못되도록 너희들이 전력을 다하고 있단 말이야! 최첨단 기계들로 내 몸을 다 검사해 봐. 그러면 내가 여기 이렇게 살아 있는 걸 알 수 있어.

고통의 잔이 다 채워지지 않았나보다. 어느 날 갑자기 격심한 통증에 놀랐다. 마치 내 한쪽 유두가 뿌리째 뽑히는 것 같다. 허공에다 소리를 지른다.

몇 시간 뒤인지 며칠 뒤인지, 두 번째로 같은 고통을 겪었다. 생살을 절단하듯 아프다. 피가 나나? 이런 공격이 있기 바로 전에 한 남자가 동료에게 하는 말이 들린다.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실히 알려면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이렇게 유두를 세게 잡아당기면서 꼬집어보면 알아요.”

찢어질 듯 아프다.

“보셨나요? 어떤 반응도 경련도 없고 얼굴에 미세한 변화도 없지요. 아무것도! 단언하지만 이런 통증을 느끼면 그 누구든 무감각하게 있을 수 없어요. 이건 오래된 비결인데 알아두는 게 좋아요.”

이제부터 모든 게 분명하다. 사람들이 내가 의식이 없는 걸로만 알았는데 이젠 죽었다고 믿는다는 걸 알았다. 

예전에 레이한테 죽으면 화장하고 싶다고 하면서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그렇다면 내 몸이 아직 따뜻해도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다면, 신장이나 심장을 적출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당연히 마취도 하지 않겠지. 장기 기증은 기본적으로 뇌사상태의 사람들, 즉 뇌기능을 멈춘 사람에게 시행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학자들은 내 뇌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극심한 통증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그들에게 나는 의식이 없는 사람이고, 뇌가 기능을 하지 않고 있으니 나는 죽은 사람이다.

9. 사랑하는 우리 엄마에게
금요일 늦은 오후, 병원에 온지 나흘째 되는 날이다. 레이와 카티가 중환자 집중치료 전문의와 이야기 중이다.

“인공호흡기 연결관을 떼는 게 어떨지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 레이가 겨우 말한다.
“죄송하지만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희망이 없습니다. 심장 외에는 아무것도 기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도 반응이 없다. 묻는 사람도 없다.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단호한 결정을 내리지? 나한테 해준 것도 없고 시도해 본 것도 없으면서 어떻게 최종 판결을 할 수 있지?

“이젠 절차를 밟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하는 것보다 지금 하는 게 더 낫습니다.”
“절차요? 장례를 위한?”

레이와 카티는 조각상처럼 누워있는 나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다.

이런 끔찍한 선언은 경솔하게 내리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것은 법규에 규정되어 있어야 하고 결정은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동의와 여러 가지 특정 검사를 한 다음 의사 여러 명이 함께 내려야 한다.

월요일이다. 레이가 투쟁할 힘을 충전하고 왔다. 그가 의사와 다시 만나서 나눈 대화는 지난 금요일과는 전혀 다르다. 더 이상 레이는 전능한 의사 앞에 선 학생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레이가 결정한다.
“우리는 앙젤에게서 호흡기 연결관을 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간단히 말해 나는 당신이 내 아내에게 손대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박식한 의사는 변명하지 않고 물러난다. 

내 운명은 다시 한번 바뀐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10. 커튼 뒤에서
망설이다 주님의 기도를 떠듬떠듬 읊는다. 종교는 항상 위기 상황에서 신뢰를 되찾는다. 나는 아직 이 세상과 더 가까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자기 육체를 떠날 때, 자신이 누워있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유체이탈을 체험하지도 않았다. 오직 거대한 어둠과 내가 상상하는 천연색이 보일 뿐이다.

카티가 나를 부추긴다.
”엄마, 일어나! 엄마가 필요해. 내 딸들도 할머니가 필요해. 깨어나서 알프스산맥 정상에 올라야지.“

내 딸아, 염려 마, 나 여기 있어. 나는 애써 커튼을 움직여 보려고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친다.

11. 전자 소음
오빠 폴이 내 옆에 있다. 이제는 어둠에 익숙해져서 나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알아본다.
“앙젤, 사랑하는 내 동생, 인사도 없이 떠나지는 않겠지? 네가 우리한테 그러진 않겠지? 한 마디 말없이, 웃어주지도 않고 떠나지는 않을 거지?”

내가 그의 말을 대신 마무리해 준다. 나는 끊임없이 말하고 웃는다. 슬퍼서 인상이 찌푸려지고 오한에 몸이 떨린다. 고통스러워 딸꾹질이 난다. 너무 괴로워서 돌 같은 내 몸이 울고 있다.

복도에서 오빠가 소리친다.
“여기요, 이리 와보세요! 어서요, 문제가 생겼어요!”
기계들이 울리기 시작한다. 오빠도, 심장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심전도 기계도 미친 듯 뛴다.

병실로 들어온 사람들이 더 차분하다.
“염려마세요”
그들에게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걸 오빠는 모른다.

정말 말하고 싶다. 이 기계음은 죽음의 신호가 아니라 생명의 신호라고, 내가 살아있다는 신호라고!
오빠는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을 알려 주었다. 바로 중계 역할을 하는 기계들을 통해서 내 마음의 외침을 표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나는 소리치는 법을 배웠으나 아무도 내 소리를 듣지 못한다.

12. 점쟁이(작은 희망의 표징)
“여보, 아무 문제없어. 모든 게 잘 되고 있어.”

레이가 여기 있구나, 바로 내 옆에. 나는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아도 된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레이가 내 손을 잡고 말한다. 편안해진다. 카티의 맑은 목소리도 들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엄마, 엄마, 우리 여기 있어!”
사랑하는 딸아, 나도 여기 있어. 너는 내가 속으로 울고 있다는 걸 알지? 보이지 않는 내 눈물은 다른 때보다 더 부드럽다.

13. 눈물 한 방울
결혼기념일이다. 무슨 소리야? 오늘이? 내가 병원에 있은 지 그렇게 오래됐다고?
레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오늘은 모든 기념일 중 가장 슬픈 날이다. 

나는 내 안의 감옥에서 울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말 할 수만 있다면.... 기뻐해야 하는 날인데도 흐느껴 운다.

카티가 아주 다정하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 예쁜 우리 엄마 내가 아빠를 잘 모시고 있으니까 아무 문제없어.“
내 마음은 감동에 젖어 사랑, 슬픔, 두려움 범벅이다. 내 속은 울음으로 가득 찼다.

카티가 계속해서 말한다.
“엄마가 우릴 떠나면 안 돼. 내가 아직 엄마한테 얘기하지 못했는데 셋째를 갖고 싶어. 아기가 태어나는 걸 엄마가 봤으면 좋겠고, 아기도 할머니 얼굴을 꼭 봐야 하잖아.”

남편과 딸 그리고 손녀들과 함께한 친밀한 삶을 이렇게 이상하게 빼앗기다니... 질식할 것만 같다.

“엄마?”
카티가 갑자기 일어선다.
“아빠! 이것 봐! 엄마가 울어!”
레이가 일어선다.
“의사를 불러야겠어!”

사람들이 병실 안으로 들어오고 소란스럽다.
흥분한 카티가 말한다.
“엄마가 반응을 보였어요! 엄마가 울었어요! 뺨에서 눈물 한 방울이 지금 막 흘렀어요!”
“엄마, 내말 들려? 내 말이 들리면 대답해 줘. 나한테 보여 달란 말이야! 울어봐! 뭐든 움직여 봐!”

나는 스스로 놀라운 걸 감지했다. 잇따라 얼빠진 듯한 말 한마디가 거기 있던 사람들의 심장에 일종의 지진을 일으켰다.

“앙젤이 손가락을 움직였어!”

이번에는 레이가 말한다.

“여보, 아주 훌륭해! 당신이 움직였어!”

이제야 한 줄기 어렴풋한 빛이 이 거대한 밤을 뚫는 것 같다. 내가 존재함을 알리려고 얼마나 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그들을 붙잡기를 바랐던가? 내면에서 나를 흠뻑 적시는 눈물이 밖으로 솟아 나오기를 얼마나 원했던가!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갈 수 있다. 기쁨의 눈물이 흐른다. 오늘은 모든 결혼기념일 중 가장 멋진 날이다.

14. 비상벨
이 소중한 눈물이 어떻게 흐른 걸까? 내가 흘린 눈물을 보석 상자에 넣어서 간직하고 싶다. 카티의 행복이 나한테 전해진다.

내가 눈물을 흘리고 새끼손가락을 움직이고 눈을 뜬 일은 기가 막힌 병세의 호전이다.

15. ABC부터
레이는 날마다 작은 초록색 노트에 나의 진척 상황을 적는다.
깨어난 이후 나는 하나의 물건, 생각하고 고통 받는 물건, 피노키오처럼 언젠가 되살아날 것을 꿈꾸는 인형이다.
도와주고 조종하는 사람이 없는 피노키오처럼 내 머리도 스스로 지탱할 수 없다.

레이와 카티는 나와 소통할 수 있는데 왜 의료진 그들과는 할 수 없을까? 언제나 똑같은 문제다. 시간과 마음과 사랑의 문제! 의료 관계자들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아무도 내게 이 세 가지 기준치를 딸과 남편처럼 맞추어 줄 수는 없다.

(16~29 : 생략)

30. 새날
환경에 변화가 왔다. 나는 스트라스부르 남쪽 교외에 있는 일키르쉬 종합병원 회복실에 있다. 드디어 새 지평이 열렸다. 이제 영안실과 떨어져 있는 새 병실에서 지낸다.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났다.

침대에 누워 있다고 병이 낫는 게 아니기에 물리치료사가 날마다 나를 데리러 온다. 이제 나는 그의 팔을 잡고 걸을 수 있다. 입원한 이후 처음으로 계단을 걸을 수 있던 건 그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내가 온 지 일주일이 지나면서 그는 내가 인공호흡기 없이 살 수 있다고 판단했다.

31. 소생
클레망소병원이라!
이곳에 오고 싶어 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여기는 병원이라기보다는 기능 회복과 재적응을 위한 곳이다. 나는 이곳에 풀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 물 속으로 들어갈 순간을 애타게 기다렸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내거 더 이상 환자복을 입지 않는다는 거다. 다른 환자들과 비교해 볼 때 나는 가장 자발적이고 모든 과정에 열심이다.

12월 23일, 기막힌 노력으로 실내 자전거 30분 타기를 해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집에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가장 호화로운 병실이라도 집이 주는 편안함에 비할 수는 없다.

32. 안녕, 봄아!
2010년 1월 30일 토요일은 중요한 날이다. 내가 완전히 집에 돌아온 날!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일주일에 세 번 클레망소병원으로 통원 치료를 받으러 간다.
레이가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이제 연인들이 하는 낭만적인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

나는 해냈다. 원래의 내 삶으로 되돌아오는 이 대단한 일을! 지옥을 빠져 나왔다. 벼랑 끝에 있던 할머니가 거의 50대 정상인으로 돌아왔다.

날씨는 화창하고 나무들은 아름다운 연초록 옷을 입고 있다.

33. 끝에서 처음까지
나는 병원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서 생각으로만 수백 킬로미터를 달렸다. 그러고 나서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 팔을 몇 센티미터 움직이는 법을 익혔다.

그런 다음 스탠딩 테이블에 기대어 뒤뚱거리는 모습으로 간호사들에게 웃음을 주고 일어서는 행복을 보여주었다.
 
그다음 등 굽은 할머니처럼 후들거리며 천천히 떨면서 소독된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이제는 젊은 신부처럼 춤을 춘다.
 
내 경험이 주는 첫째 교훈은 간단하다. 어떤 일이 닥쳐도 항상 투쟁해야 한다. 둘째 교훈도 기본적인 것이다. 인생의 모든 순간을 만끽해야 한다. 삶의 순간마다 의미를 주어야 한다.

내 것은 하나도 없다. 인생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연약하다.
 
34. 또 다른 시선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모든 검사와 결과에 대한 글을 적어나가는 지금, 그 과정에서 신비스러움이 크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

왜 이병이 7월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나를 덮쳤는지, 아무런 유전적 전력도, 과거 행위도, 어떤 체질 문제도 설명할 수 없다. 왜 몇 달 사이에 현실에서 지옥으로 갔다가 지옥에서 현실로 돌아왔을까?

중환자 집중치료 의사는 흡입기 고장 사고 후에 나에게 충고했다.
“부인, 이제 그 모든 것은 잊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증에 걸립니다!”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권고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병원에서는 언제나 환자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오래도록 나는 이상적인 환자였다. 움직이지 못하고 벙어리에다 귀까지 들리지 않으니 말이다. 환자는 수동적이어야 하고, 개입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견디기만 하면 된다. 간호사들이 나를 치료할 때 레이가 같이 있으면 그들이 싫어하는 걸 자주 목격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병원 문화인데 그 핵심은 의사들의 마음 상태다. 많은 분이 훌륭하다. 이 모험에서 나는 오랫동안 감사드릴 사람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용서해야 할 사람도 여러 명 만났다.

의사들도 평가받아야 한다. 누구나 실수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첫째 방법은 실수를 인정하는 거다. 다른 사람의 생명이 자기 손 안에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은 신이 아니다.

35. 증언
치료는 기술적인 일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경청하고 침묵 너머의 소리까지 알아들어야 한다.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이 종교와 무관하게 보여준 헌신은 복음에 가깝다. 정말 이웃사랑에서 오는 것이었다.

병원이라는 세계는 자신의 특징이 없어지기 때문에 쉽게 정체성을 잃었다고 느낀다. 자신의 존재는 번호에 불과하고 사생활마저 잃는다. 내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허용할 수 없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투병생활 중에 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수없이 겪었지만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병이 나를 정복할 뻔 했으나 내게 정복당했다.

나는 가족과 친구들의 놀라운 지원에 의지하는 큰 행운을 누렸다. 간호와 처방, 내 의지와 좋은 성격만으로는 다시 살아나기 어려웠을 거다. 이웃들의 사랑 없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마무리 지으면서 느끼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 큰 사랑 이야기다. 마비로 웃는 얼굴을 잃었으나 이제는 돌아왔고 더 밝아졌다. 나는 특별한 은총을 받았다.  (End)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랑은 생명을 살린다. 환자들은 주변 사람이 주의를 기울여 줄 때만 존재한다. 환자가 말하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의식이 없어도, 그 곁에서 말을 건네고 희망과 사랑을 준다면 고통을 덜어줄 뿐 아니라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생명을 되찾은 앙젤이 전하는 메시지다.
 
움직이지 못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검사를 해서 환자가 생각하고, 듣고, 감지하고 있다는 걸 알아낼 수는 없었을까? 오늘날의 기술로 삶이냐 죽음이냐, 환자의 상태가 좋은가 나쁜가를 결정하는 단순한 사실을 넘어 환자가 느끼는 걸 알 수는 없을까?

저자의 체험은, 치료는 기술적인 일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경청하고 침묵 너머의 소리까지 알아들어야 한다는 깊은 깨달음을 준다. 또한 환자 곁을 지켜야 하는 간병의 시간이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치유의 시간, 환자와 교류하는 사랑의 시간으로 살아낼 때 환자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음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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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푸른님     작성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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