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달 내가 가벼이 경통을 돌린 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게 아니라 단지
너의 지문을 쓰다듬기 위한 것이었네
그 해 내가 긴 머리를 조아리며 먼지를 껴안은 것은
부처님을 뵈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너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서였네
그 세월 내가 수많은 산들을 돌고 불탑을 돈 것은
다음 생의 수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가는 길에 너와 마주치기 위한 것이었네
단지 바로 그날 밤 나는 모든 것을 잊어 버렸네
믿음을 팽개치고 윤회를 버렸네 단지
부처님 앞에 슬피 울던 장미를 위해 이미
오래전 사라져버린 예전의 빛을 위해서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