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 성당 2017년 1월 영적 독서 모임

작성자 : 글라라    작성일시 : 작성일2017-01-11 14:31:40    조회 : 641회    댓글: 1
세마 성당 2017년 1월 영적도서 : 「물고기 뱃속의 지혜」
지은이 : 루돌프 슈테르텐브링크 지음
옮긴이 : 김선태 신부
 
지은이 소개
· 1937년 바드 크로히츠나흐에서 태어났으며 도미니코회 수사 신부
· 1985~1991년까지 쾰른 대성당 설교 담당 신부
· 1991~현재까지 강연 • 피정 • 지도 • 저술 등을 통해 왕성하게 활동
 
나눔의 글
 
구약성서 가운데 익살을 담고 있는 유일한 문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요나서를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나는 요나서를 여느 책처럼 읽지 않는다. 마음에 올려놓고 마음의 눈으로 읽는다.” 라고 했습니다.
「물고기 뱃속의 지혜」를 만나기까지 요나서에 대해 무지한 저로서는 마치 동화책과도 같은 구약 성경의 생소한 인물 요나는 누구이며, 물고기 뱃속의 지혜라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궁금하면서도 내심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나서 묵상집 한 권을 그대로 고스란히 모두 나눔의 글에 옮겨 놓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된 것은 페이지를 넘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특별히 이 요나서 묵상집은 많은 심리학 • 철학 • 문학 작품의 내용을 자주 인용하였고 이것이 주제 접근을 용이하게 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요나는 예수께서 그 활약상을 거론하셨던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요나, 네 예언자들 중 하나입니다.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름 ‘요나’는 ’비둘기’라는 뜻입니다.
요나서는 물고기 뱃속의 요나를 이야기합니다. 요나서 묵상집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묵상 내용을 나눔의 글에 실어봅니다.
 
 
1. 물고기 뱃속의 의미 :
병원이든 수용소든 감방이든, 모두 「물고기의 뱃속」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요나를 익사 위기에서 구한 것은 그를 삼킨 물고기였다. 고통스런 성숙의 과정을 견디게 한  그 물고기 뱃속이다. 죽음인 줄 알았던 게 오히려 새 생명을 준다. 중병, 혹독한 고통, 심지어 대죄에 이르기까지, 이런 큰 물고기들은 그렇다면 하느님의 구명보트인 것이다. 벼랑 끝 상황은 감옥이든 어두운 바다든 그물이든 물고기 뱃속이든, 우리를 가두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요나는 가장 무서운 적이 자기 자신이라는 걸 모른다. 우리가 생각보다 이기적이라는 걸 좀 인정했으면 좋겠다.
 
2. 하느님에게서 늘 달아나는 인간 :
예언자 요나는 하느님의 심판을 알리기 위해 “하느님을 외면하는 도시” 니느웨로 가야 했다.
요나는 길을 나서지만, 가급적 주님을 멀리 피하기 위해 정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한다.
하느님에게서 도망치는 사람은 하느님과 자신에게서 뿐 아니라 이웃에게서도 멀어진다. 자신과 타인에게 이방인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어느 길로 가든, 결국 길은 하느님에게로 돌아오게 나 있다. 뒤쫓기만 하시는 게 아니라 더 앞서 달리신다. 하느님의 사랑은 달아나는 인간보다 더 빠르다. 인간이 달려가는 바로 그 곳에 하느님은 이미 현존하시고 거기서 인간을 기다린다. 이것이 바로 요나서가 이야기하는 진리다.
 
3. 죽음을 바라보는 지은이의 다른 시각 :
하느님께서 왜 요나를 부르셨는가? 당신 계획을 실천하시는데 요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우리를 필요로 하시어 현세에서뿐 아니라 영원에서도 우리를 필요로 하신다. 여기서 왜 인간이 죽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당신 영원에서도 우리를 필요로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죽는 것이다.
 
4. 양심과 정체성에 대해서 :
’요나서 2장 마지막 구절 : 주님께서는 그 물고기에 분부하시어 요나를 육지에 뱉어 내게 하셨다.’고 말한다. 양심의 소리를 듣는 순간 우리도 요나처럼 발 디딜 육지를 얻는다. 새 세상이 열리고 새 생명을 얻는다. 이 독특한 동화는 우리 자신, 우리의 정체성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정체성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양심이란 우리 정체성으로 가는 길을 일러 우리 안의 온갖 갈등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안내자다.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장소, 양심의 소리를 듣자.
 
5. 결론적으로 인간은 모두 요나다 :
니느웨는 어디에 있는가? 니느웨는 –도시든 회사든 단체든 공동체든 –악의 • 시기와 질투를 일삼아 타인의 삶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곳을 뜻한다. 신의 • 사랑 • 종교 • 죄 등과 같은 보다 높은 가치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곳에도 있다.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니느웨를 체험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한다. 어쩌면 니느웨는 다들 요나 같은 존재 우리 자신 안에도 있다. 니느웨 사람들을 혐오한 요나는 그들의 멸망을 바랄수록 자신도 타락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런 요나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가? 우리 모두, 우리가 기피하는 니느웨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는가?
 
6. 온갖 죄악에 빠져있는 니느웨를 벌주기를 바라는 인간 요나와 하느님의 시각 :
요나는 타락의 늪에 빠진 니느웨 사람들을 증오했다. 하느님께서 결국 당신 자비로 니느웨를 구원하실까봐 겁났다. 법과 질서와 정의밖에 모르는 사람은 하느님을 제대로 이해할 리 없다. 어쩌면 윤리 도덕의 존립 자체가 우려될지도 모르겠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은 도덕적 삶도 진지성을 잃고 복음이 그토록 강조하는 회개도 의미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런 반문은, 인간의 도덕적 삶과 진정한 회개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가없는 자비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회개란 인간이 자기 길을 버리고 하느님의 길에 들기를 결단함으로써 새로운 삶으로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징벌이나 멸망에 대한 공포는 분명 아닐 것이다.
 
새 출발을 결단한 죄인은 하느님의 가장 사랑스러운 자녀고, 용서는 하느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일이다.
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에서 늙은 스타레츠의 입을 빌려 한 말과 일치한다....“두려워말게. 그대 영혼도 불안해할 것 없네. ......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소진시킬 만큼 큰 죄를 지을 수 없다네. 그대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길 만큼 큰 죄가 있을 수 있다고 믿는가? 하느님은 죄 중의 그대를, 아니 그대의 죄까지도 사랑하시네.”
 
프랑스의 시인이자 작가인 프랑수아 모리악은 그의 편지에서 “하느님과 인간이 엮는 이 드라마에서 인간 혼자 대화를 단절시킬 수는 없는 겁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포기해도, 하느님은 인간을 절대 포기하시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편지글처럼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려는 것이 바로 요나의 이야기다.’ 라고 지은이는 묵상의 결론을 내리는 듯합니다.
 
이제, 루돌프 슈테르텐브링크의 요나서 묵상집에서 가장 빛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그대로 옮기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작자 미상의 어느 문헌에서 하느님은 만인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그대의 고난을 안다. 그대 영혼의 투쟁과 나약함을 알고 그대 육신의 나약함과 질병을 안다. 나는 그대의 비겁과 무기력을 안다.
그래서 말하노니 : 그대 마음을 내게 맡겨라. 그대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하라. 원치 않은 잘못에 빠질지라도, 그대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하라. 그대 처한 매순간, 냉정과 열정, 충실과 불충, 어떤 처지에서든 나를 사랑하라. 그대가 완전해지기를 기다려 날 사랑 하겠노라 한다면, 그대는 영영 날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대의 나약함까지 사랑한다. 그대의 지식과 재능이 내게 무슨 소용인가? 나는 그대의 덕을 바라지 않는다. 그대가 많은 덕을 쌓았다면, 자기애도 함께 있을 것인즉. 주님인 나는 걸인처럼 그대 마음 앞에서 기다린다. 그대의 의심과 부족한 믿음만이 내게는 상처일 뿐.
그러니 명심하라 : 그대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할 것!‘
 
“사랑할 때만,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누군가가 있음을 느낄 때만, 인간은 속속들이 변화되고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다”(Gerhard Lohfink).
 
※ 묵상집의 마지막 부분은 책 속의 부록으로 독서와 묵상과 성찰을 하도록 1막 ~ 8막으로 구성되었으며 안내문을 그대로 따라 하면 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작성자: 지푸른님     작성일시:

찬미 예수님!

차라리 주변은 얼마든지 변하라지요.
변해도 변하는줄 모르는 게으른 내 마음새인데야 뭐.
하여도, 이 냉소의 눈매에도
틀림없이 꼭 그대로,
암만 세월이 흐른대도 늘같을 이,
김명분 글라라님의 열정이 참 보기좋아요.
문득씩 장난기 어린 얼굴,강기숙 아녜스님,이 양반 말 나누지 않아도 마주하는 것으로만도 울목도리같으신 분.
채색 안한 그냥 도화지같은,가감이 없고 여름날 줄에 널은 하얀 이불 홑청같으신 주남숙 율리안나님,자주색 가방들고 갈래머리로 툭하면 소녀같은 웃음을 터뜨리실 것같은 신영순 로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뒤늦은감 있지만,나태한 물고기뱃속의 저 니콜라오 대신 흔쾌히 팀장을 맡아주신 글라라님께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