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어느 늦은 오후..."
ㄷ자의 한옥 안에는 먹먹한 고요가
고기 부레같이 들어 차고 서까래 둘러 선 위로
ㅁ자의 하늘은 어째 더 적막 하며 푸르다.
어디쯤 구멍도 난 담벼락은 보기 좋게 나트막 하고
가을녘의 나른한 햇볕이 붉게 누워 말을 거는 고추.
멀리 지난 헬기 소리 남긴 자락 아래
이다지도 고즈녁한 오후를 마당에다 바느질 하면
볕 머물다 막 지난 자리
새의 가슴같은 마루 바닥 온기에 얼굴 모로 눕히고
심심한 아이는 물 속처럼 소리를 듣는다.
오른편 지붕으로 건너 오는 노을이
가을날 이파리 위에서 자신을 울린다고 아이는 생각 한다.
온곳 모르는 슬픔이 되어 주눅이 들다
어디 숨어 버리고 싶은 아이는 늦으시는 어머니를 기다린다.
그러나 유혹 된 아이는 노을 속으로 자맥질 쳐 들어 간다.
언제나 늦배우고 생각만 깊었던 아이는
뱃전에서 마르는 고기 비늘같은 공간을 찾아
따로이 집을 짓는다.
맘속 어디로부터 유혹 당한 아이는
낫 지나 간 가을 뒷편의 밭에다
저를 닮은 인형을 세운다.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다.
너무 밝지 않은 걸러낸 빛과 조금의 외로움,
무당 뛰넘던 멍석 속의
창백한 이의 갇힌 기타 소리....
뒤꼍 해 미처 못드는 곳,파란 이끼가
융단같이 깔린곳에서 묵묵 하다.
폐를 앓는 안방의 할머니는 아이를 부르지 않는다.
아이도 할머니가 무서웠다.
아버지를 낳지 않은 셋째 할머니.
열한 남매의 맏이인 아버지는
두살 터울 아우에게 호적의 장남을 내어 주고.
낳아 놓고 멀리 가 버린 어머니를 원망 않던 아버지.
새로 맞은 두분의 어머니.
신산의 세월을 살아 낸 아버지,덩달린 어머니.
어른이 된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다.
낙하의 아픔을 비와 이야기 하며
함께 내려 앉는 서늘한 바람에 가슴을 내 놓는다.
모두가 그리움이 되어 버린 늑골 속의 기억들...
창밖의 비는 세월을 안고 내린다.
- 가을 단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