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정원 - 지푸른

작성자 : 지푸른    작성일시 : 작성일2017-01-15 17:04:29    조회 : 450회    댓글: 5
비밀의 정원

"가을날 어느 늦은 오후..."

 

 

ㄷ자의 한옥 안에는 먹먹한 고요가

고기 부레같이 들어 차고 서까래 둘러 선 위로

ㅁ자의 하늘은 어째 더 적막 하며 푸르다.

어디쯤 구멍도 난 담벼락은 보기 좋게 나트막 하고

가을녘의 나른한 햇볕이 붉게 누워 말을 거는 고추.

멀리 지난 헬기 소리 남긴 자락 아래

이다지도 고즈녁한 오후를 마당에다 바느질 하면

볕 머물다 막 지난 자리

새의 가슴같은 마루 바닥 온기에 얼굴 모로 눕히고

심심한 아이는 물 속처럼 소리를 듣는다.

오른편 지붕으로 건너 오는 노을이

가을날 이파리 위에서 자신을 울린다고 아이는 생각 한다.

온곳 모르는 슬픔이 되어 주눅이 들다

어디 숨어 버리고 싶은 아이는 늦으시는 어머니를 기다린다.

그러나 유혹 된 아이는 노을 속으로 자맥질 쳐 들어 간다.

 

언제나 늦배우고 생각만 깊었던 아이는

뱃전에서 마르는 고기 비늘같은 공간을 찾아

따로이 집을 짓는다.

맘속 어디로부터 유혹 당한 아이는

낫 지나 간 가을 뒷편의 밭에다

저를 닮은 인형을 세운다.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다.

너무 밝지 않은 걸러낸 빛과 조금의 외로움,

무당 뛰넘던 멍석 속의

창백한 이의 갇힌 기타 소리....

뒤꼍 해 미처 못드는 곳,파란 이끼가

융단같이 깔린곳에서 묵묵 하다.

폐를 앓는 안방의 할머니는 아이를 부르지 않는다.

아이도 할머니가 무서웠다.

아버지를 낳지 않은 셋째 할머니.

열한 남매의 맏이인 아버지는

두살 터울 아우에게 호적의 장남을 내어 주고.

낳아 놓고 멀리 가 버린 어머니를 원망 않던 아버지.

새로 맞은 두분의 어머니.

 

신산의 세월을 살아 낸 아버지,덩달린 어머니.

 

어른이 된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다.

낙하의 아픔을 비와 이야기 하며

함께 내려 앉는 서늘한 바람에 가슴을 내 놓는다.

모두가 그리움이 되어 버린 늑골 속의 기억들...

창밖의 비는 세월을 안고 내린다.

 

                           - 가을 단상 -

 

댓글목록

작성자: 글라라님     작성일시:

새의 가슴같은 마루 바닥 온기에 얼굴 모로 눕히고...
너무 밝지 않은 걸러낸 빛과 조금의 외로움...
뱃전에서 마르는 고기 비늘같은 공간을 찾아...

가을비,아니 슬픔이 세월을 안고 내리는 "가을날 어느 늦은 오후"
잘 감상했습니다.
님의  詩作 note가 궁금해지네요

작성자: 지푸른댓글의 댓글     작성일시:

시작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글라라님의 표정들,예컨대 기쁘거나 놀랄 때,난감해하거나 조심스러울 때,
고마워하거나 작게 감동할 때의 표정들이 바로 시같습니다.
가장 정직하고 꾸밈없는.
꾸미거나 셈할 필요없이(시는 적어도 이 과정을 거치니까요)툭 튀어나오는 표정의 언어가 하고많은 의사전달 방식중 으뜸이거든여!

작성자: 헬레나08님     작성일시:

잘 읽었습니다~
누구나 마음 안에
비밀정원(일급비밀) 하나 쯤은 있으리라~~~?!

작성자: 지푸른댓글의 댓글     작성일시:

굳이 드러내지 말아야 할 비밀은 아닌,
부러 드러낼 필요도 없는,
하지만 삶 내내를 관통하는 비밀인 셈이지요~

작성자: 미리내님     작성일시:

"어른이 된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다" 라고
나지막이 속삭일 수 있다는 것은
과거의 슬픔과 고통속에 갇혀있지 않고
묵묵히 시련을 견디며 드디어 행복을 찾았다는 것이네요~
어른이 된 아이에게 진심으로
큰 박수와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 가을 단상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