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성당 9월 영적 도서 :파격 (破格)
지은이 : 임금자
가톨릭 수녀.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소속.
타이완 푸런대학교 철학박사 (중국철학 전공)
전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미국 가톨릭대학교 연구교수
뉴욕 주립대학교 연구교수
나눔의 글
이 이야기는 조선과 청국을 드나들면서 세상의 변화를 누구보다 빨리 파악하고 조선이 변화해야 함을 인식한 역관과 상인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들이 갈구한 당시의 변화란 바로 뿌리 깊은 신분제도의 종식이며, 그러기 위해 그들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들은 이미 그들 공동체 안에서 신분제도를 철폐하고 평등을 실현하고 있었다. 한편 권력층에서는 인간의 평등이 반상(班常)의 분별을 원칙으로 하여 나라의 질서와 기강을 유지하는 조선의 건국이념인 유학(儒學)과 배치되는 점을 주목했다. 백성들 사이에 평등 의식이 퍼지면 유학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고 조선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점을 감지한 권력층에서는 대대적으로 천주교 박해를 일으켜 많은 신자를 죽였다.
이 글은 신분제도의 철폐만이 조선 백성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이라 믿고, 그 신념을 실현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破格의 格은 당시의 신분제도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세상의 변화를 파악하고 수용하려는 사람들과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막으려는 세력 사이에서 드러나는 마찰,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사랑과 갈등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이룬다.
픽션인 듯 논픽션인 듯 자연스럽게 읽어 내려간, 제법 두툼한 페이지의 장편소설이다.
외세의 침략이 있기 전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폭풍 전야의 조선은 그저 동방에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다. 청국을 드나들던 역관 유진길은 베이징에서 ‹‹천주실의››를 접하면서 정하상을 만나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는다. 또한 집안의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새로운 삶의 길을 걸어간다. 이로 인해 가정은 부인과 자식들과도 헤어지게 되고 풍비박산이 나게 된다.
“천주라고? 있긴 뭐가 있어. 있다면 무자비하고 무기력하겠지. 그토록 오래 피가 마르도록 열심히 기도 했건만 믿을 것도 못되는 허깨비를 믿고 있었던 것이지...”
돌쇠가 한탄하며 내뱉는 이런 독백처럼 기복 신앙에 매여 있는 그의 모습에서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초선을 열렬히 사랑하다 끝내 이루어 질 수 없음을 알게 된 돌쇠 박선식 안드레아는 성경 속의 가롯 유다가 되어 밀고자로 변심한다. 정하상과 유진길은 모진 매질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주리를 틀리고 뼈가 부러졌으며, 골수가 쏟아져 성한 데가 없었으나 그들은 끝내 성직자들의 거처를 불지 않았다.
43세의 앵베르 주교, 37세의 모방신부, 37세의 샤스탕신부, 신학을 공부하던 45세 정하상 바오로, 전교회장을 하던 49세 유진길은 모진 고문을 당하고 한강의 새남터에서 순교한다.
“살아봤자 잠시인데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천국이 있습니다”-이 말은 곧 순교자들이 남기고 간 신앙 고백이다.
영국과 청국 사이에 아편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보면서 김대건은 신앙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량한 중국인들에게 대포를 쏘아대며 삶의 터전을 약탈한 뒤 태연히 십자성호를 그으며 주님을 찬양하는 양인들, 더구나 아편을 들여와 중국인을 병들게 하는 아편 장사치들도 십자가를 가슴에 걸고 예수의 이름을 올리는 모습을 본다. 그런 사람들이 입에 올리는 천주를, 예수를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역관 김재연과 청국의 다이전 장군은 ’가르침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며 예수의 가르침이 인간에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다면 무엇하러 믿는가? 신은 보이지 않으니 그 신을 믿는 사람들을 보고서 신을 믿을 뿐이다‘ 라고 했다. 그렇다면 과연 천주를 믿을 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김재연과 다이전 장군의 말은 지금 우리들도 깊이 생각해야 할 의미 있는 말이다.
로마 제국 시대 네로 황제의 천주교 박해는 실로 엄청났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들은 굶주린 사자들의 밥으로 먹히는 순간까지도 두려움 없이 주님을 찬송하며 기쁘게 순교하였다. 이것이 ‘사람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계시기에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신앙의 신비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겠는가. 성녀 마더 데레사, 성 프란치스코와 같은 많은 성인들의 사랑 실천이 있었기에 천주교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진리의 종교라고 자랑하며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참혹한 아편 전쟁 상황을 보며 잠시 고뇌하던 김대건은 그러나 다시 주님의 찬미로 넘쳐난다. ‘주님, 저는 사람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계시기에 믿습니다. 저는 마음 속에 계신 주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주님이 저와 함께 계시고 사람을, 우주를 사랑하시는 것을 확신하기에 주님을 믿습니다’
김대건은 공포와 절망이 엄습하는 배를 타고 청국에서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모시고 제주도의 서쪽 용수리에 도착한다. 그 당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인간이 아니라 천주가 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신자들은 늘었는데 성직자는 태부족이었다. 어떻게 하든 성직자들이 조선에 입국할 수 있도록 방도를 마련해야 했다. 육로는 불가능하므로 바닷길을 이용해야 하는데 지난번처럼 작은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결국 병오년 1846년 봄, 김대건은 성직자들이 중국 어선을 타고 백령도까지 와서 조선 어선으로 바꿔 타고 들어 올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나섰다가 상하이에서 신품 성사를 받고 귀국해 겨우 여섯 달을 사목한 뒤 체포된다.
그해 병오년 9월 16일, 김대건 신부는 한강 새남터 모래 위에서 휘광이의 번쩍이는칼에 순교하였다. 신품성사를 받고 난 뒤 일 년 남짓이었다. 그 안타까운 나이 26살. 아프리카 남수단 울지마 톤즈의 故 이태석 신부님처럼 하느님은 왜 한 알의 밀알을 꼭 필요로 해야만 하시는지...
그 순교를 끝으로 박해는 중단되었다. 그 누구도 두 서양 성직자의 존재는 발설되지 않았다.
영국을 시작으로 프랑스 시민 혁명 , 노예 해방을 이끌어 낸 미국의 남북 전쟁 등 군주제에서 민주주의 국가가 탄생되기까지 거센 변화의 바람이 몰고 온 피의 역사로 값진 자유와 평등을 이루어냈다. 귀한 열매가 저절로 얻어진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었다. 破格은 그래서 꼭 필요하다.
오늘날 갈수록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횡포 , 종교와 민족, 인종 차별 문제 해결은 아직 요원하다고 본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을 위하여 지금 이 순간도 파격(破格)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