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 성당 12월 영적 독서 모임

작성자 : 글라라    작성일시 : 작성일2016-12-14 13:28:21    조회 : 647회    댓글: 2
세마 성당 12월 영적도서 : 「위기는 선물이다」 -그대 능력을 믿어라-
지은이 : 안셀름 그륀
옮긴이 : 김선태
 
지은이 안셀름 그륀 Anselm Grün
· 1945년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성베네딕토 뮌스터슈바르차흐 대수도원 수사 신부
· 성경과 사막 교부들의 가르침과 융의 분석 심리학 등을 연구한 신학박사, 세계적 영성 지도자
·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 재정관리자로서 20년 넘게 활동.
· 독일 최고경영자들의 영적 고문이며 베스트셀러 작가
 
 
옮긴이 김선태 신부님의 글 : ‘위기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위기를 겪습니다. 저자는 위기 앞에서 정면으로 맞서라고 요구합니다. 위기는 성장을 위한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위기를 겪는 현대인의 용기를 북돋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위기와 정면으로 맞서는 구체적 방법을 저자는 소개합니다. 불안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 냉정을 유지한 채 위기를 분석하고 객관화 하는 것, 작은 조치를 실행하는 것, 위기에 대해 하느님과 대화하고 그분께 맡기는 것, 이웃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 등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아닙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근본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저자는 ‘성령 칠은’을 우리 시대의 위기와 개인적 위기를 용기있게 대처하는 능력으로 제시합니다.
 
또한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혹독한 고통과 시련을 겪을 당시 예수회 알프레도 델프 신부님은 ‘성령 송가’를 깊이 묵상함으로써 그 혹독한 세계와 세력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위로를 받고 자신을 깊이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부제목 ‘그대 능력을 믿어라’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재한 영혼의 힘인 성령을 신뢰하라는 뜻입니다.
 
 
나눔의 글
 
’얼굴에 선량함을 가득 담고 침묵하는 노인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부드러운 ‘황혼 빛’을 비춰준다′ ....「황혼의 미학」 중에서.
지난 5월 「황혼의 미학」에 이어서 다시 만나는 안셀름 그륀의 「위기는 선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무심코 지나쳐버린 ‘성령 송가’를 새롭게 묵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삶을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웠던 위기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삶은 위기의 연속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 두려움에 떨지 않고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위기는 선물이다」에 차분히 귀기울여 들어보았습니다.
 
 
1. 위기를 만나다
 
1) 위기의 본질
심리학은 개인적 위기든 경제 • 사회적 위기든 아니면 이성의 위기든 모든 위기는 결국 정체성의 위기라고 말한다. 따라서 언제나 궁극적 관건은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일이다. 지금 겪는 위기에 직면하여 나는 과연 누구인지, 위기는 나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하는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2) 기회인 위기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위기는 발전과 성숙의 기회이지만 자동적으로 좋은 결말을 내지는 않는다.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은 우리 책임이기 때문이다. 위기를 무시하거나 완화하는 사람은 내적으로 파괴되지만 위기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지를 묻는 사람만이 거기에서 배울 수 있다. 내 삶을 지속하는 근거를 내 영혼이나 하느님 안에서 찾을 경우에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3) 위기의 종류 : 사춘기의 위기, 정체성의 위기, 이성의 위기, 중년의 위기, 은퇴의 위기, 실직의 위기, 질병의 위기, 성공의 위기, 관계의 위기, 신앙의 위기
 
•중년의 위기
독일 신비가 요하네스 타울러가 중년의 위기, 곧 40대의 에게 엄습하는 위기에 대해 말했다. 종교인은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이제까지 영적 생활에서 느끼는 기쁨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위기를 겪는 것이다. 마치 기계처럼 작동할 뿐 종교적 의무를 이행은 하지만 진심으로 하느님을 느끼지는 못한다.
융에 따르면 우리는 중년 이후에는 내면의 길을 감으로써 자신만을 맴돌고 자신의 관심사만 추구하는 인생의 전반기에 취하는 이기적 자아에서 하느님 상을 담고 있는 자신의 참 자아와 대면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내 배에 오르실 때 비로서 내 참 자아를 만날 것이며 외적으로 환난이 있음에도 고요를 누릴 것이다.
 
•질병의 위기
모든 병은 위기를 가져다준다. 질병의 위기가 기회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질병으로 인해 나 자신과 나의 삶, 하느님에 대한 나의 관념이 무너지는 경우이다. 곧 자신의 삶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기보다 질병이 말하려는 바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질병은 내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러나 거기에 이르기 위해 나는 주저와 죄책감, 절망과 불안을 거쳐야 한다. 질병이 나 자신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 자아를 찾고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며 완전히 다른 하느님의 모습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신앙의 위기
구약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도 위기에 빠졌다. 그가 죽고 싶은 까닭은 자신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다. 그는 원수들을 외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그 원수가 자신 안에도 들어앉아 있음을 느꼈고 제힘으로는 그 원수를 없앨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엘리야는 호렙에서 신앙을 새롭게 배워야 했다. 거기서 하느님은 엘리야가 이제껏 생각한 모습이 당신의 실제 모습이 아님을 일러주신다. 하느님은 땅을 뒤흔들어 모든 원수를 멸망시키는 분이 아니다. 하느님은 완벽주의, 완전히 순수하게 존재하길 바라는 우리의 망상 속에 계시지 않는다. 하느님은 떠다니는 침묵의 고요 속에서만 당신 목소리를 듣게 하신다.
침묵 속에서 우리의 낡은 하느님 상이 깨진다. 침묵 속에서 심판하고 벌하시는 하느님 상, 모든 것을 기록해 두시는 하느님 상, 마음대로 행동하시는 하느님의 상이 깨지고 침묵 가운데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우리가 마치 유일하게 진리를 소유한 사람인 것처럼 독선적으로 하느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그만 둔다.
우리가 신앙의 위기에 빠진다면 그것은 낡은 생각을 버리고 친숙한 하느님 상과 결별하라는 초대이다.
 
4) 위기를 벗어나는 법
 
• 공포에 사로잡히지 마라
엄청난 두려움이 닥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나 어떻게 공포에 대처하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불안이 엄습하면 불안과 마주하여 이야기 하라. 마지막 까지 불안을 생각하고 그대를 불안하게 하는 것을 상상하라 불안을 피할 것이 아니라 불안에 대해 스스럼없이 더 친밀해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닌 치유의 힘을 믿는 것이다.
 
• 냉정을 유지하라
공포는 분명 사려 깊은 사고를 방해한다. 신비가들은 불안이 들어설 수 없는 내적 공간에 대해 말한다. 어떤 감정도 침범할 수 없는 고요한 공간에 이르면 불안은 나를 지배할 수 없다. 그곳에서 나는 위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그리고 위기를 객관적으로 판단해 본다. 위기가 왔다고 세상이 멸망하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다.
 
• 작은 조치를 실행하라
그리스 철학자들은 걸으면서 사상을 발전시켰다. 이는 상징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경직되어 있으면 생각도 경직되지만 능동적으로 대처하면 내적 활동도 강력해지고 생각도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작은 조치는 실제로 행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 기도하라
위기 가운데 기도하라는 조언은 그저 마음을 달래는 임시방편으로 보인다. 위기 가운데 기도한다면 나는 수동적으로 정지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하느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문제와 불안과 걱정에 대해 하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내 딱한 처지와 무기력을 그분께 내맡긴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 걱정과 불안을 포함하여 나 자신을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셨다. 그래서 나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알려 달라고 하느님께 청할 수 있다. 기도는 걱정을 덜어주지는 않지만 구체적 길을 찾도록 힘을 준다.
하지만 하느님을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시는 마술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느님은 중요한 해결책을 마련하도록 책임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당신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상황을 바꾸실 수 있다. 그분은 성령을 통해 인간 마음속에 있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시며 사회와 세계도 움직이신다.
우리는 기도 가운데 하느님께 우리를 완전히 맡기고 그 위기를 통해 하느님은 무엇을 바라시는지 물어야 한다. 하느님께 가능한 빨리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청하는 사람은 영혼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길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속에 하느님이 탄생하시는 것을 놓치게 된다. 이 탄생을 통해 새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 조언을 구하라
깊은 숙고와 기도를 했음에도 여전히 진전이 없다면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많은 사람이 자기 감정을 이야기하기를 어려워한다. 가식적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참모습을 친구나 사목자 또는 심리 치료사에게 말하려면 겸손이 필요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 그가 내 문제를 해결해 주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결정적 조언을 주어야 한다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런 태도는, 나 자신은 수동적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내 삶의 성공 여부를 다른 사람에게 책임 지우겠다는 꼴이다.
 
• 기회를 발견하라
모든 위기에는 기회가 숨어 있다. 모든 개인적 위기도 새로운 삶의 기준을 발견하여 내 삶을 새롭게 정리하고 진지한 삶을 영위할 기회가 된다. 고통과 고통에 결합된 자기평가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자신을 무턱대고 폄하할 수 있는데 이런 자기폄하를 그치게 되면 지금 상황에 깃든 기회를 조심스럽게 제시할 수 있다. 희망은 위기에 맞서 일어설 힘을 준다.
위기를 겪은 후의 삶은 더욱 겸손해질 것이며 우리가 참 자아와 일치한다면 훨씬 진지하고 진실하며 순수해질 것이다.
 
2. 힘을 주고 격려하시는 성령
 
나는 삶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성령의 신비를 묵상하고 싶다. 우리가 삶을 완성하고 위기와 갈등을 겪으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계속 삶에 정진하도록 하느님이 베푸시는 능력이 바로 성령이심을 제시하는 일이다.
하느님이 우리 삶의 근원이며 목적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겨진 하느님의 형상이시다. 성령은 우리가 삶의 힘을 길어내는 샘이시고 길을 걷도록 힘을 주고 격려하는 능력이시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 하느님 안에 머물고 하느님은 성령을 통해 친히 우리 안에 머무신다. 아우구스티노의 말대로 성령 안에서 하느님은 ‘내 깊은 속보다 더 깊이 계시는 분’이다.
현대 상황에 맞추어 성령 칠은을 묵상하는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다. 이런 묵상은 현대인에게 강한 마음과 용기를 북돋아 주어 용맹하고 온전한 신뢰로 자신의 길을 계속 걷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런 다음 성령 송가를 묵상하고 싶다. 이 송가는 사형선고를 받고 베를린 감옥에서 생애 최고의 위기를 겪던 예수회 알프레드 델프 Alfred Delp신부에게 위기를 견딜 힘을 주었다.
이런 놀라운 송가를 묵상하는 일은 오늘날 우리한테도, 하느님께서 성령 안에서 베풀어 주신 능력을 신뢰하면서 용기 있게 위기를 극복할 힘을 줄 것이다.
 
3. 성령 칠은
 
신학은 언제나 성령을 삼위일체 하느님의 세 번째 위격으로 이해했는데 이로써 성령의 신비에 대한 접근을 쓸데없이 어렵게 만든 셈이다. 성령을 위격으로 여길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인간적 인격을 생각하면서 한 분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쉽사리 서로 다른 세 분의 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위격은 구체적 인간이신 예수 안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은 하느님 자신을 하나의 인격으로 계시하신 사람이다.
이런 인격적 하느님은 성령 안에서 당신 인격의 가장 내밀한 것, 곧 당신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마음으로 인도하신다. 그분은 하느님의 인격적 선물이시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실 것이다.” (요한 14,26)
성령께서 선물을 주시는 까닭은 우리가 그 선물을 사용하여 공동체를 건설하고 더 나은 인간 사회를 이루게 하기 위해서다. 홀로 즐기거나 다른 사람 앞에서 우쭐대게 하려고 그 선물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힘으로 이 세상을 가꾸고 늘 예수님의 영으로 가득 채우도록 그 선물을 주시는 것이다.
 
1) 지혜의 선물
지혜는 다만 지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상태다. 이는 결국 하느님 뜻 앞에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사람한테만 가능하다.
인간은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는 소피스트의 회의에 맞서 플라톤은 지혜에 대한 새 개념을 발전시켰다. 곧 인간이 하느님의 지혜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혜 안에서 인간은 진리를 소유할 수는 없지만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칭거, in: Sandfuchs)
‘지혜는 인간을 언제나 영원을 향한 순례자로 만들고 현재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것을 거부하게 하는 동요’다(같은 책)
예수님은 어떤 지혜의 스승보다 위대하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분의 지혜에 참여한다. 그는 많은 지식을 터득한 사람보다 더 많이 본다. 아우구스티노는 어머니 모니카가 아들인 자신처럼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참으로 지혜로웠다는 점을 언제나 놀라워했다. 제자들은 신앙을 통해 이 세상의 현자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고 더 깊이 보게 된다.
 
2) 통찰의 선물
통찰이란 감정 개입 없이 모든 것을 순수하게 합리적으로 보는 이성 ratio을 뜻한다. 그러면 어떻게 통찰이 성령의 선물일 수 있는가?
때때로 우리는 지성이 순수 객관적이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지성은 많은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가 이전에 우리 의견이나 의지로 확정했던 것을 지성으로 증명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지성이 선입견에서 벗어나, 우리 관심과 흥미만 정당화하는데 악용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총이 필요하다.
통찰의 선물은 지성이 하느님 성령의 빛을 받아 사물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세상과 사물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올바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3) 의견의 선물
성령의 세 번째 선물은 의견이다. 의견consilium은 지혜로움과 사려 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의견의 선물은 구체적인 각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행동을 깨닫게 하거나 표명하게 한다. 그는 또한 의견의 선물을 인간의 덕행인 지혜와 사려깊음과 관련시킨다.
 
4) 용기의 선물
의견의 선물이 지성을 향한다면 용기의 선물은 의지를 향한다. 용기는 내가 시대의 도전에서 달아나지 않고 맞서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께서 용기를 북돋아 주심을 아는 것은 큰 위안을 준다. 그분은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능력을 끌어내어 완성하신다.
성령은 당신 능력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살아가도록 도와주신다. 스테파노는 예수님처럼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용서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처럼 치유의 기적을 행하고 불구자를 다시 일으킨다.
바오로는 성령의 능력으로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한다.
우리가 용기의 선물을 청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성령의 은총을 구하는 것이다.
 
5) 지식의 선물
지식의 선물은 성경 말씀과 교회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는 선물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이미 위에서 거론한 지혜의 선물은 하느님 일에 관여하고 지식의 선물은 ‘이 세상과 우리 일상 삶에 관련되는 일에서 더욱 확실한 판단을 내리는 일’에 관여한다.(로프코비츠, in: Sandfuchs)
참된 지식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사람들은 보통 모든 것을 자기 생각대로 바라보고 판단한다. 참된 지식은 나 자신도 실제적으로 바라본다. 내가 나의 이상형과 일치하지 않고 지극히 평범하고 한계가 많은 존재임을 안타까워할 때 비로서 나는 참된 지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이 세상을 잘 헤쳐 나가도록 충분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
사려 깊은 지식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체에 연관성이나 맥락을 알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급한 마음으로 조언을 구하거나 하느님이 빠른 해결책을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6) 공경의 선물
신심 또는 공경의 의미를 지닌 독일어 프뢰미카이트는 다소 부정적으로 들린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영성Spiritualität’이란 말을 더 선호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공경의 선물은 하느님을 공경하고 아버지로 섬기는 능력을 의미하며 동시에 자기를 낮추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태도를 의미한다.
공경의 다른 전망은 정의다. 성경은 의로운 사람을 칭송한다. 의로운 사람은 경건한 사람을 뜻한다. ‘그리스도교의 공경은 가난과 불의에 대항하여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고 인간의 정의와 권리를 세우기 위한 싸움이 일어날 경우 그 갈등에서 적당히 빠져나올 수 없다. 그리스도교의 공경은 그런 모든 전선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취할 수 없다. 공경은 신비적인 동시에 정치적이다.’ (카스퍼, in: Sandfuchs)
공경은 우리가 스스로 지닐 수 있는 태도가 아니라 선물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여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성령의 선물이다. 공경은 위기마다 하느님 뜻을 물을 채비가 되어 있다. 경건한 사람은 위기를 하느님께 맡기고 그분 앞에서 먼저 순수한 과학적 눈으로, 이어서 신앙의 눈으로 바라본다. 신앙의 눈을 통해 나는 위기가 궁극적으로 나를 하느님께 인도하며 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바탕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그 바탕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
 
7) 경외의 선물
성경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시초라고 말한다.( 시편 111,10)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선물을,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내맡기고 그분 뜻을 완성하는 의지의 능력이라고 본다. 그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선물을 희망과 사랑과 겸손의 덕행과 연결시킨다. 경외는 교만에 대립하여 주어진 것이다. 교만은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려는 데서 생긴다. 성경이 원죄라고 부르는 이런 태도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위협거리이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인간의 두려움에서 벗어난다. 하느님께 기반을 두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아첨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을 경외한다고 해서 모든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경외는 위기를 상대화한다. 위기가 내 삶을 뒤흔든다 해도 나는 위기를 하느님의 뜻과 동등하게 여기거나 하느님께서 위기를 보내셨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위기를 어떠한 경우에도 ‘하느님의 형벌’과 같은 개념을 피해야 한다.
 
4. 위기에 도움이 되는 성령 송가
 
사실 성령 송가를 묵상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위기와 많은 개인적 위기에 대한 적절한 답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면 늘 성령 송가(오소서, 성령님)나 성령 찬미가를 불렀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묵상하는 가운데 삶의 도전에 맞서기 위한 도움과 용기를 체험 했다.
성령 송가 ‘오소서, 성령님’은 1200년경 스테판 랭턴이 지었다. 그는 1150년 영국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파리에서 신학교수로 일하다 1207년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었고 1228년 세상을 떠났다. 이 기도에 가락을 붙여 노래하기 시작한 것도 1200년이었으며 후기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가장 유명한 가락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정치범 알프레드 델프Alfred Delp는 1944년 베를린 테겔 감옥에서 이 아름다운 기도문을 묵상하면서 어려운 상황을 굳건히 이겨냈다. 알프레드 델프Alfred Delp는 감옥에서 특별히 더 어려운 생활을 했다. 밤낮으로 수갑을 차고 있어야 했던 그는 묶인 손으로 간수를 통해 외부에서 얻은 작은 종이에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영적 묵상을 기록 했는데 그 결과 대림절•성탄절•공현축일에 대한 글이 보존되었다. 이 묵상은 알프레드 델프가 구금되고 단죄를 받는 실존적 위기상황에서 용기를 잃지 않는 원천이 되었다. 그것은 감옥에서 환상의 세계로 피신하는 도피가 아니라 감옥과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비참한 세계를 견뎌내기 위해 성령의 세계에 깊이 잠기는 것이었다.
 
오소서, 성령님.
주님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오소서,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
오소서, 은총 주님.
오소서, 마음의 빛,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저희 생기 돋우소서.
일할 때의 휴식을, 무더위에 시원함을
슬플 때에 위로를.
영원하신 행복의 빛
저희마음 깊은 곳을 가득히 채우소서.
주님 도움 없으시면
저희 삶의 그 모든 것, 해로운 것뿐이리라.
허물은 씻어주고, 메마른 땅 물 주시고
병든 것을 고치소서.
굳은 마음 풀어주고, 차디찬 맘 데우시고
빗나간 길 바루소서.
성령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는 이들에게 성령 칠은 베푸소서.
덕행 공로 쌓게 하고 구원의 문 활짝 열어
영원 복락 주옵소서.

댓글목록

작성자: 강명선루치아님     작성일시:

아멘.

작성자: 지푸른님     작성일시:

12월에 태어난 저는 겨울을 좋아합니다.
제 양력생일이 12월 6일이며 그 날짜의 성인은 니콜라오(산타클로스)입니다.
바로 제 세례명이죠ㅎ
12월에는 생일도 있죠,영명축일도 있죠,하얀 눈도 있죠,그리고 성탄도 있죠.
그러니 12월을 아니좋아할 수가 있나여~
거기에 결이 곱고,가지런하며 바지런한 영성을 가지신 팀원들이 계시고 함께 할 수 있으니 더더욱 12월은 행복했습니다.
성탄에 눈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오랜만에 아,정말 오랜만에 펜을 들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 보겠어요~

12월 세마 영적독서에 함께  하신 김명분 글라라님,강기숙 아녜스님,주남숙 율리안나님,이은영 로사님,신영순 로사님 모두 반가웠습니다.
모든이에게 주님의 평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