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계절 성모성월 5월에 - 안셀름 그린 지음 "황혼의 미학" 을 만나다
나뭇잎아! 바람이 너를 데려가려 하거든 가만 있거라.
얼굴에 선량함을 가득 담고 침묵하는 노인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부드러운 '황혼 빛 '을 비춰준다. 침묵하는 법을 배운 노인은 외롭다고 푸념하지 않는다.
늙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따라서 늙음에 대하여 사색할 때는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 어떻게 하면 현재를 의식하며 주의 깊게 살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나눔의 글 :
심리학자 프리츠 리츠만은 자신을 초월하는 것, 자기 경계를 초자아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노인에게 주어진 본질적 과제라고 본다. 忘我를 통한 의식 확장 즉 자신을 넘어서기라고 말한다. 이는 우주적 느낌이 될 수 있다. 이 느낌 안에서 우주와 내가 하나임을 안다. 우리가 우주의 한 부분이라고 느낀다. 그러면 우리는 고독하지 않다.
노년에는 신앙도 변한다. 노년에는 영성이 점점 단순해지고 하느님의 초월성이 중요해진다 그의 기도는 점점 고요해지고 단순해진다. 노인은 그저 하느님 앞에, 하느님 안에 있다.
자아를 버리면 하느님의 신비가 열린다. 영성의 외적 형태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방법은 문제 되지 않는다. 그저 하느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
기도의 본질은 하느님에게 ‘예’ 라고 말하는 것과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신비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를 위해 하느님을 이용할 수 없다. 언젠가는 하느님의 넓으심과 무한하심 , 인간이 형용할 수 없는 하느님이 돌연 나타나신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런 하느님 안으로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
나이가 들면 우리 영성의 풍요로움을 포기하게 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 영성을 간단한 기도와 침묵으로 제한 한다. 마음이 가난한 가운데 우리의 공허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신 하느님에게 우리를 온전히 맡긴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은 죽음에 반항하지 않는다. 감사하며 삶을 되돌아 본다. 죽음으로 선조들과 하나 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죽음은 다른 사람들과 우리를 떼어 놓는 것이 아니라 합일시킨다.
죽음에 대한 상상도 놓아 버려야 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우리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성인들도 시련과 영혼의 고통을 겪으며 죽었다. 노년의 칼 라너는 하느님이 이끄시는 대로 죽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자신의 죽음에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살고 죽는다. 삶을 구원한 것이 사랑 이라는 사실이 죽음에서 분명해진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구원의 신비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년에는 신앙도 변한다. 노년에는 영성이 점점 단순해지고 하느님의 초월성이 중요해진다 그의 기도는 점점 고요해지고 단순해진다. 노인은 그저 하느님 앞에, 하느님 안에 있다.
자아를 버리면 하느님의 신비가 열린다. 영성의 외적 형태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방법은 문제 되지 않는다. 그저 하느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
기도의 본질은 하느님에게 ‘예’ 라고 말하는 것과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신비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를 위해 하느님을 이용할 수 없다. 언젠가는 하느님의 넓으심과 무한하심 , 인간이 형용할 수 없는 하느님이 돌연 나타나신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런 하느님 안으로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
나이가 들면 우리 영성의 풍요로움을 포기하게 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 영성을 간단한 기도와 침묵으로 제한 한다. 마음이 가난한 가운데 우리의 공허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신 하느님에게 우리를 온전히 맡긴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은 죽음에 반항하지 않는다. 감사하며 삶을 되돌아 본다. 죽음으로 선조들과 하나 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죽음은 다른 사람들과 우리를 떼어 놓는 것이 아니라 합일시킨다.
죽음에 대한 상상도 놓아 버려야 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우리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성인들도 시련과 영혼의 고통을 겪으며 죽었다. 노년의 칼 라너는 하느님이 이끄시는 대로 죽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자신의 죽음에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살고 죽는다. 삶을 구원한 것이 사랑 이라는 사실이 죽음에서 분명해진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구원의 신비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