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센룸 그린의 "황혼의 미학"을 읽고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6-05-11 17:46:03    조회 : 583회    댓글: 1


안셀름 그린의 “황혼의 미학”을 읽고


"2014년 성서읽기 독후감 대상"을 수상한 허신자 젤뚜르다 자매님의 독후감입니다.

안셀름 그린 신부님은 수도회 사제로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제 수도자들을 위한 영적 지도신부로 봉사하고 있다. 먼저 책 제목과 지은이에 호감이 갔다. 제목이 황혼의 미학이라... 왜냐면 황혼, 늙음이라 하면 왠지 긍정적 모습보다는 춥고 쓸쓸하고 외로워지고 단절되어 고립되어 가는 느낌이 드는데 미학이라니...

저자는 이렇게 역설한다. 늙음에 대한 성찰은 삶에 대한 성찰이다. 노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자세, 늙음에 대한 숙고는 노인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다. 늙음에 대한 성찰은 인간의 신비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훌륭하게 나이 드는 기술을 터득하려면 노년의 신비와 함께 잘 늙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린 신부님의 글을 읽고 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나는 나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 작년엔 백내장 수술도 하고 오래전엔 몇 가지 수술도 했었다. 기력이 점점 하락해 육신은 젊음에서 점점 멀어지고 마음도 의기소침해지고 가끔 쓸쓸함과 허망함이 옆구리를 스치며 내 삶도 언젠가는 정상적인 삶의 흐름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일말의 두려움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하느님 감사합니다.”로 시작하는 기상과 함께 아직은 보고 듣고 냄새 맡으며 주방에서 남편을 위해 요것조것 반찬을 만들며 언뜻언뜻 창 너머 앙상한 가지들을 후르르후르르 옮겨 날아다니는 새들을 볼 수 있는 일상의 기적들이 나를 기쁨으로 초대한다. 물이 흐르고 해가 뜨고 지듯이 그냥 고개 숙인 마음으로 나의 늙음에 수반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수긍하고 싶다. 왜냐면 자연의 요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내 삶을 속이게 되는 거니까...

저자는 나이 드는 기술 3가지를 말한다. (1) 받아들이기, (2) 놓아버리기, (3) 자신을 넘어서기라고 한다. 자신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사람만이 자기 삶의 맛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생 손해만 보고 고생만 했다고 한탄하는 노인은, 남을 탓하고 비난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한다. 불필요한 감정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기꺼이 놓아버려 떠내려 보내고 하느님을 신뢰하고 의탁하여 자신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노년이길 나와 노년의 우리들에게 기대한다.

늙어지면 실수가 줄어들 것 같아도 영 그렇지가 않다. 나의 본성 안에 자리한 선하지 못한 감정들이 어떤 사건이나 시련이 오면 어김없이 흙탕물을 일으킨다. 이런 것들은 어쩌면 자신의 깨져버릴 실존을 두려워함에서 오는 것일 게다. 그래서 노년의 첫째 과제는 지혜롭게 되는 일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온유하며(주님을 닮아) 깊이 볼 줄 알며 내 삶의 근원을 하느님에게서 찾을 줄 안다. 삶의 모순들을 한 맥락에서 보는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어졌다.(요한 19, 30)”라는 말씀이다.

나의 마지막 노년에 나를 형성한 모든 것의 총체는 무엇이어야 할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사랑의 완성이다. 사랑이 꺠지기 쉬운 우리의 실존을 이어주고 미완의 나의 삶을 완성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성 요한은 “마지막엔 오직 사랑으로 심판받을 것이다.”라고 했다. 하느님께서 노년의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원하실까?

이제 시편 71장 18절의 말씀으로 기도하련다. “늙어 백발이 될 때까지 하느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시편 71,18)” 하느님은 이 종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시리라 확신하기에. 늙어가도 기쁘고 행복하다. 생로병사에 집착 않고 영원의 삶을 사는 우리의 황혼은 오직 하느님만이 희망이었으면 좋겠다.

겨울이 깊어져 눈과 바람이 산야를 뒤덮는다.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려 애쓰시고 그 사랑을 자식과 이웃들에게 못주어 안달하시다 돌아가신 친정 엄마가 오늘 따라 더욱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시편 92장 15-16절의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 “늙어서도 열매 맺으며, 수액이 많고 싱싱하리니 주님께서 올곧으심을 알리기 위함이라네.(시편 92, 15~16)”

 

댓글목록

작성자: 미리내님     작성일시:

결국 젊어서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가꾸고 성찰하며
산 사람이 노인이 되어서도 훌륭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네요.
참다운 삶이란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고 이웃을 이해하고 관용하며
가난한 사람을 위해 善을 많이 베푸는 것인데요 -
정말 그렇네요 ~
저도 죽음을 앞두고,
내 지나온 삶을 그려놓은 그림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 난 하느님 섭리대로 잘 산 거 같아" 라는 말을 남기고
고요안에서 평화로이 죽기를 바래봅니다^^
...
그러러면 저의 삶을 지금이라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아주 많이 바꾸어야 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