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 잘 익은 사과

작성자 : 미리내    작성일시 : 작성일2015-09-23 16:07:03    조회 : 450회    댓글: 2
백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을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 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댓글목록

작성자: 헬레나08님     작성일시:

잘 읽었습니다~
백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이런 저런 일들과
긴 시간들이 잘 익힌 사과를 할머니께서 오물오물 드시네요~~^^

작성자: 미리내님     작성일시:

늙어서 시간이 참!! 빠르다고 말하는 사람은
인생의 여정을 그럭저럭 보낸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하네요
암튼 詩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살았으면!! 하는 저의 바램입니다.

소월상을 받은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