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 가난한 사랑 노래

작성자 : 미리내    작성일시 : 작성일2015-08-08 11:53:17    조회 : 654회    댓글: 1

(부제: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1970년대 골목길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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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리내님     작성일시:

신경림 시인이 막 50대 초반에 들어섰을 때다. 시인이 자주 가던 식당에 청초하고 어여쁜 처녀가 있었다. 어느 날 이 처녀가 시인에게 면담을 청하였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녀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신경림 시인의 시를 무척 좋아한다며 한번 만나달라는 거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인에게 어렵게 청을 넣은 이 식당 따님의 마음이 어여뻐 시인은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두 남녀는 머지않아 부부 연을 맺었다. 그때 시인은 두 사람을 축복하며 〈너희 사랑〉이라는 시를 지어 결혼식에서 읽어주었다. 결혼식은 컴컴한 반 지하 방에 열 명 남짓 모여 단출하게 치러졌다. 노동운동을 하던 남자가 수배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가진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너무도 행복해하는 이 어여쁜 청춘 남녀에게 〈너희 사랑〉을 선물한 후 이들을 생각하며 또 한편의 시를 썼으니 그것이 〈가난한 사랑 노래〉다.”

[출처]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작성자 arcetly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