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는 시간이 필요해요

작성자 : 강명선루치아    작성일시 : 작성일2015-05-18 17:49:31    조회 : 448회    댓글: 0
마을공동체는 시간이 필요해요, 성미산마을
수정일 | 2014-04-10
작성일 | 2014-04-15

* 성미산마을, 마을공동체사업 참여현황
2012년 마을미디어(우리동네 나무그늘, 마을 기억을 담다)
2012~2013년 청소년휴카페(성미산청소년교육활동연구회,일하며 노는 카페 '어슬렁어슬렁 그 집')
2013년 부모커뮤니티(따로 또 같이, 어울려 사는 소행주 사람들)
2013년 부모커뮤니티(어린이문화연대 서부지부, 성미산마을 부모들 모여라)
2013년 마을기업성미산마을카페 작은나무 운영)
 
마을공동체는 시간이 필요해요, 성미산마을

한여름 세탁소 앞 커다란 평상에 동네사람들이 모여앉아 있다. 세탁소 아줌마는 “쩍~!” 하며 반 뚝 잘린 수박 반덩이를 끌어안고, 벌겋게 잘 익은 속살을 수저로 열심히 긁어내 옆 양푼에 옮겨 담는다. 세탁소집 아저씨는 어름 한 덩이를 그 양푼에 올려놓고 바늘을 대고 망치로 두들기며 잘잘한 어름조각을 만든다. 성질 급한 앞집 수퍼아저씨는 나머지 반덩이를 빼앗듯 가져다가는, 칼로 썩썩 썰어내 여러 개의 뾰족 조각을 만들어, 군침 흘리며 모여든 애들에게 나눠준다. 금세 다 먹은 애들은 그 앞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한다. 좀 큰 머스매 한 놈은 조무래기들 데리고 쓰윽 빠진다. 전봇대에 겨우 매달린 가로등 불빛이 채 닿을까 말까한 골목 한 켠에 모여앉아 귀신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평상에서는 수박껍데기를 뒤로 물리고 장기판이 벌어진다. 수퍼아저씨, 아까 수박 썰 때의 용맹은 간 데 없고 ‘한수만, 한수만’을 구걸하며 쩔쩔맨다. 그 앞에서 3학년짜리 꼬마는 코 파며 딴청 피우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40년 전, 도시 속 마을의 풍경입니다. 지금 4,50대 사람들이면 누구라도 공감하는 마을에 대한 한자락 기억입니다. 아니 지금도 이런 살가운 풍경이 남아있는 곳이 있지요. 재개발의 파도에 급속하게 휩쓸려가고 있기는 하지만 서민들이 모여 사는 달동네의 전형적인 풍경일 겁니다.
 
 
성미산마을의 씨앗
성미산마을은 마포구청 예전 청사 뒤에 있는 성미산을 둘러싸고 자리 잡은 마을입니다. 행정구역으로 말하면, 성산동, 망원동, 합정동, 연남동, 서교동을 망라하는 지역입니다. 10여년 전부터 성미산지키기 싸움으로 신문, 방송에 자주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요새는 매년 전국 경향 각지에서 4,000여명이 방문객이 마을을 찾는다고 합니다. 성미산마을은 이미 오래 전에 형성된 주거지역이지만, ‘마을’이라고 자연스레 말하기까지는 약 20여 년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1994년, 제 아이를 어디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던 맞벌이 부부들 20여 가구가 뭉쳤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을 함께 키우기 위해 어린이집을 직적 만들어 운영하기로 하고, 먼저 협동조합을 만들고, 출자금을 모은 뒤, 모여진 자금으로 어린이집을 설립하였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 최초의 공동육아 협동조합인 <우리 어린이집>이 마포구에 처음으로 생기게 됩니다. 이듬해 1995년에는 두번째 공동육아 어린이집인 <나르는어린이집>이 만들어지고, 1999년 방과후교실이 역시 협동조합으로 만들어집니다.
 
1_대안학교“‘우리 아이, 우리가 함께 키운다’는 공동육아의 철학에 공감해, 가뭄에 단비라도 만난 듯이 살던 곳을 과감히들 정리하고 하나둘 어린이집 터전 주변으로 이사해온 것이, 이제 집단이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부리나케 이사 와서 개원 초기 숱한 과제에 파묻혀 끝도 없는 회의와 참여활동 속에서 어느덧 아이들은 쑥쑥 커갔습니다. 당시 장난꾸러기 최고참 꼬맹이가 지금 24살의 여엿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함께 키워가면서 우리 부모들은 새로운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애들 덕에 어른들이 무척이나 친해지고 살가운 관계가 되었습니다.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나 아는 사이가 되었지요. 보통, 아이들 문제가 가장 크고 중요한 이슈가 되었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지역으로 옮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애들이 잘 자라려면 우리 동네가 살만한 곳이 되어야 했으니까요.” (우리어린이집 설립 초창기에 참여한 주민)
 
 
최초의 마을기업 생활협동조합
2001년 <두레생활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공동육아조합이 귀중한 기반이 되었지요. 생협은 친환경적인 먹거리 공동구매를 주요사업으로 해서 공동육아조합원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과 관계를 터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생협은 연매출 50억을 넘어서고, 회원이 5,500여 가구에 이르고 다양한 지역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역주민들의 각종 동아리활동 (산악회, 농사모임, 아토피모임, 부모역할 공부모임, 민요 배우기 모임 등등) 결성과 운영 지원, 매년 열리는 성미산 마을축제, 숲속 음악회, 마을 운동회 그밖에 지역의 주요 사안에 대한 공동대처를 조직하는 중심에 생협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으로 ‘성미산 살리기’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만 2년(2001년 7월~2003년 10월)을 넘게 함께한 장기투쟁으로 지역주민의 열성적이고 끈질긴 참여를 이끌어내 성공적인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성미산을 지키는 과정에서 형성된 지역사회 주민들의 끈끈한 관계가 지금 성미산마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린 마을에서 논다
생협을 만들던 2001년 5월, 지역사회에 생협을 알리자고 시작한 축제가 매년 이어져 벌써 10회가 넘었다고 합니다. 5월이면 어김없이 성미산에 만발하는 아카시 꽃내음이 동네에 가득할 때 축제가 시작됩니다. 마을의 ‘끼’ 있는 주민들이 무대에 나와 열정을 불사릅니다. 이제는 일 년에 한 번하는 축제로는 양이 차지 않는다고, 날마다 축제를 하고 싶다고, 갖가지 마을동아리들의 놀이터인 <성미산마을극장>을 만들었습니다. 극장은 1년 365일 하루도 쉴 새 없이 돌아갑니다. 절반은 주민이 무대에서 서고, 절반은 프로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섭니다. 영화, 연극, 콘서트는 물론이고, 패션쇼와 성인식 등 이벤트가 열리고, 마을의 크고 작은 회의와 잔치가 벌어집니다. 마을회관과 마을극장 그 경계에 있는 마을의 광장인 셈입니다. 극장이 생기니 주민들의 문화예술 동아리가 더욱 더 번성합니다. 동네풍물 <성미산풍물패>, 마을극단 <무말랭이>, 사진동아리 <동네사진관>, 동영상 동아리 <물뜨네>, 엄마아빠들의 로망인 록밴드 <아마밴드>가 만들어지고, 마을합창단과 드로잉 동아리 등등 15개의 동아리가 활동을 합니다.
 
 
뿌리를 내리는 마을살이
2_성미산학교생협을 고리로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다리를 놓고, 성미산지키기투쟁을 통해 마을과 하나된 성미산마을의 주민들은 더욱 본격적인 ‘마을살이’를 합니다. 초중고 대안학교를 설립합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12년제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를 주민들이 나서서 만들었습니다. 2년여의 준비를 거쳐 2004년 9월 개교를 하였으니 벌써 9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170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린이집-방과후교실-마을학교 ‘꿈터’에 이어 초중고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로 이어지는 교육시스템이 완성된 셈이지요.
육아에서부터 중등교육으로 이어지는 교육기관이 마을에서 마을주민들의 힘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0년이라는 성인 전(前) 시기를 함께 책임지고 돌볼 수 있는, 마을로서 가장 중요한 인프라를 갖춘 셈입니다. 몇 년을 한 집에 살아도 앞, 뒷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사는 대도시 서울에서, 이사 가지 않고도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생활의 필요를 공감하고 그 해결을 궁리하며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 두텁게 연결됩니다. 이게 바로 호혜적인 생활관계망이고 바로 마을입니다.
 
 
마을기업과 마을고용
생협에 이어 매년 한 두 개의 마을기업이 창업되었습니다. 2002년 100% 유기농 식재료에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반찬가게 <동네부엌>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마을카페 <작은나무>, 동네식당 <성미산밥상>이 주민들의 출자로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습니다. ‘십시일반’으로 재물을 모으고 ‘품앗이’로 일을 나누어 협동으로 이렇게 돈이든 품이든, 여럿이 함께 나누면 엄두가 나지 않던 일도 수월하게 풀려가고, 그 속에서 ‘이웃’을 만나게 됩니다.
3_동네부엌장애를 가진 마을청년 수진이의 일터 <성미산공방>, 수제비누를 제조하는 <비누두레>, 친환경 면생리대, 이불보, 한복 등을 생산하는 <한땀두레>, 노인들을 돌보는 <돌봄두레>는 모두 솜씨 좋고 일하고 싶어 하는 엄마들의 사업체로 창업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대안적인 주택개발 시행사인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가 설립되어 코하우징(co-housing)개념의 공동주택을 개발하여 주민들에게 분양합니다. 이렇게 마을에는 20여개의 마을기업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협동조합의 원리로 운영됩니다. 사업자금은 동네 사람들이 형편대로 출자하여 만들고, 시간과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자원하여 운영을 책임집니다. 마을기업에서 일하는 주민이 대략 150명 가량 되니까, 주민들이 창업한 마을기업이 적지 않은 마을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셈입니다.
 
 
민주적인 마을살이, 생활의 필요를 협동적으로 성취한다
4_소행주“마을살이란, 자신의 생활의 필요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며, 또한 자신과 동일한 필요를 가진 이웃과 함께 협동하여 해결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과정은 (돈이 없어) 시장에서 좌절하고 (관심 없는) 국가로부터 실망한 나머지, 스스로 해결해 가는 ‘삶의 필요’를 깨닫는 과정입니다. 또한 나의 필요가 곧 이웃(타인)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함께 협동해야할 이유를 공감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성미산마을 주민)
 
하지만 협동은 대단히 번거로운 과정이라고 합니다. 함께 한 이들의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와 공존하는 감수성을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결실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일단 협동의 진통을 견뎌내고 나면, 즉 협동의 성공적 성취는 협동의 위력과 가능성을 대번에 일깨워준다고 합니다. 이는 나의 생활을 나의 힘으로 해결해내는, 그것을 방해하고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제거의 필요를 느끼고 과정일 것입니다. 정치란 무엇일까 내가 주인이고, 주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힘 아닐까?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게 바로 ‘주민주권’일 테니까요. 그래서 마을은 주민주권의 학습장이자, 실천장인가 봅니다.
 
 
* 이 글은 책 '서울, 마을을 품다'(서울시, 2012.9)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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