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이라는 말과 '미안'이라는 말
세상에서 참 좋은 말 중에 오늘날 와전된 말이 '친절'이라는 말과 '미안'이라는 말이에요.
본래 친절이라는 말은 예의 바르고 상냥하다는 뜻이 아니라고 해요. <주역周易>의
어느 주석서에 보면 소년과 소녀 사이는 최고로 친절하다 이랬어요. 그건 '절친'이라는 소리,
아주 친하다는 소리예요. 소년, 소녀 가만히 놔두면 막 스파크가 일어나잖아요.
그처럼 누구보다 시인은 대상에 대해 '친절'한 사람, 혹은 친절하려고 애쓰는 사람,
그렇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늘 '미안'한 사람이에요. 여기서 '미안'하다는 말은
그냥 예의상 '익스큐즈 미' 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의 전 존재가 불편하다는 뜻이에요.
'미안未安'의 '미未'자는 아닐 미, 아직 편안하지 않다. 언제까지나 편안할 수 없다는 거에요.
내가 이러이러한 일에 대해 아직 편안하지 않다. 내 존재가 불편하다는 것이지요.
'불안'이라는 말과는 달라요. 이 미안함이란 말은 아주 작지만 뜻은 참 큰 거예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자기와 남의 삶에 대해 미안할 수밖에 없는 거라.
이 미안함을 간직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 삶 전체를 추문으로 만드는 거라.
내가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시란,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위가 되고,
그것을 이야기하면 모든 것이 스캔들이 되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
이 삶 자체가 온통 허위이고 스캔들인데 어떻게 하루하루 편할 수가 있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의사 선생님이 수필집을 냈는데 제목이 "선생님, 안 나아서 미안해요"
이런 거라. 어떤 아주머니가 신경외과 환자인데, 뇌혈관이 터져서 눈이 안 떠지는 거라.
근데 이 환자가 의사 선생님 보고 "선생님, 안 나아서 미안해요" 이러는 거라.
어찌 이리 말할 수가 있겠어요. 난 그 말이 참 좋아. 그 말 앞에서 시 쓰는 사람이 부끄러워져요.
미안이라는 말의 정말 의미는 그런 거라. 선생님이 그렇게 친절하게 고쳐 주시는데 이렇게
안 나아서 미안해요. 제 몸둥아리가 그 지경이 되어서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겠어요.
그게 아름다운 거라. 아름답다는 건 예쁘게 꾸미는 게 아니라, 진실을 딱 들이대는 것,
그래서 미안하게 만드는 것, 그게 아름다운 거라........
[끝나지 않는 대화] 발췌
'친절'과 '미안'이라는 부분이 아름다워 한음절 한음절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