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무드 오쿠무 신부의 진화신앙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5-03-03 17:30:27    조회 : 438회    댓글: 1
< 양자 신학의 저자이며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이야기 속에서 하느님을 재발견하기> 첨부파일
 
에서 일부.
 
 
미래:
우리가 가진 것은 박애정신 가득한 창조, 생명과 가능성을 향해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험이다. 인간의 눈에, 그 역학은 종종 기이하고, 광적이며, 파괴적이고 엉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큰 시각적 규모에서 관찰하면, 그것은 탄성과 담력을 부여받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도달하는데 있어서 서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생물학적인 생명이 전개되어지는데는 수십억년의 세월이 걸렸다. 아직까지도 많은 보다 야성적이고 멋진 탐구들을 위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이온의 세월들이 남아있다. 우리가 살아남아 그러한 것들을 즐기게 될 수 있을지 하는 것은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들에게 달려있는 문제다.
그것은 보다 크고 웅장한 규모에서 생명과 재연결하는 우리의 능력에 상당부분 의존되어져 있다. 우리는 우주적인 소속과 지구적인 통합이라는 관계의 매트릭스에 속해져 있다. 우리의 삶은 이러한 보다 큰 지지 유기물들이 없이는 무의미하며, 사실상 존재할 수 없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우리 존재의 모든 것,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을 제공해 준다. 우리의 삶은 우주적 life-force의 소우주이다.
우리의 우주와 우리의 지구에게 있어서 다음에 올 진화의 단계는 무엇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거의 추측해 낼 수 없는 이슈이지만, 앞으로 많은 단계가 놓여져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우주는 인간의 상상력이 거의 그려볼 수 없는 수많은 이온의 세월동안 앞으로도 계속 꽃피고 번창할 것이다. 행성 지구의 미래는 과학과 종교분야에서 여러 가지의 불길한 예측의 주제가 되어져 왔으나, 진화는 그러한 것들이 모두 심하게 부정확한 것임을 증명해 낼 가능성이 높다. 가장 최악의 예측을 하고 있는 시나리오를 근거로 하더라도, 지구는 최소한 앞으로 50억년의 세월을 더 생존할 가능성이 짙다. (모든 주요 종교들이 내 놓고 있는 종말의 날 예언들은 이것으로 끝을 맺게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가 되면, 인간의 정신 그 자체는 엄청나게 진화해 져 있을 것이고, 아주 다른 관념들에 도달해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우리 자신들이 그때까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아 있게 된다고 가정하게 된다면.
Roszak 은 (1998) 인류가 보다 더 점잖아 진다는 것은 인류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또한 훨씬 더 겸손해 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우리의 오만함은 지구 및 인류에게 믿기 어려운 고통과, 고난과, 무의미함을 초래시켰다. 이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행동 방식이다. 우리는 그처럼 멋진 우주, 그처럼 창조적인 지구, 그처럼 다채로운 피조물과 생명체의 공동체를 부여받아 왔는데, 우리가 정상적인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이 광적인 경쟁충동은 무슨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지구에 아름답게 속해져 있으며, 우주적인 생명의 웹에 밀접하게 속해 져 있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창조에 흠뻑 스며들어있는 정결함의 냄새를 숨쉰다. 생명의 정원에서 우리의 God,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들에게는 너무나 투명한 그 기원적이며 영속적인 미스터리는 우리들과 함께 산책하신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신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해야 하며, 그것은 모든 것들이 결합되어져 있는 그 미스터리를 존중하는 것이어야 한다. 양자 진공, 초신성 폭발, 탄생-죽음-재탄생의 반복되는 순환, 광합성 과정등등, 신(The divine)은 모든 피조물 안에 새겨져 있다. 이러한 것들과 그 외 많은 것들이 우리의 일차적인 성서를 이루고 있는 챕터들이다. 신격(Divinity)은 우리들의 안에, 우리들의 주변에, 풍부하게 존재한다.
미래 가능성의 약속은 보장되어져 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신의 궁극적인 무상의 행동, 기독교인들이 부활의 관념에서 그리고 있는 핵심적인 진리이다. 미래에는 마침표가 없으며, 결코 있을 수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래는 인간정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사고, 이념, 그리고 추측을 훨씬 넘어서 있다. 현재 진화 중에 있는 우리 인간의 심리적 능력 안에서, 우리는 단기적인 결과물을 예측하려 애쓰며 무모한 행동을 하는 대신, 그와 같은 미래의 창조적인 잠재성 수용으로 보다 더 이동해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성찰에서 벗어나 신뢰로 이전해 가야 한다. 우리는 인간의 확실성에 대한 충동적인 필요에서 넘어서서 우주적 소망에 대한 신뢰로 이전해 가야 한다. 우리는 그 아름다움, 고통, 그리고 가능성을 모두 지닌 이야기를 포용해야 한다. 우리가 그 이야기와 함께 흐르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우리의 행로에 놓은 모든 단계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이야기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리들은 그 이야기에 밀접하게 속해져 있다. 이 이야기는 패러독스와 가능성들이 함께 놓여져 있는 성역이며, 그곳에서 우리 역시 우리의 홈, 우리의 진리, 삶 속에서의 우리의 의미를 찾게 된다. 
 
 

댓글목록

작성자: 헬레나08님     작성일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