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과 함께(2014.1.4.주님공현전토요일)
“안드레아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요한.1,41)
사는 동안 수많은 만남이 있었습니다.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은 많지만 마음에 깊게 간직한 만남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깊게 여운을 남기는 만남보다 잊고 지내는 만남은 더 많습니다. 깊은 감명을 받거나 의미가 있는 만남은 흔하지는 않습니다.
구르는 낙엽을 보면서도 까르르 웃고, 바뀌는 계절마다 색다른 시인이 되며, 세상의 온갖 고통을 다 짊어진 듯이 폼을 잡던 “젊은 날의 초상”은 그래도 잊지 못하는 나 자신과의 만남으로 남아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로운 만남보다 잊혀져가는 만남이 더 많은 것은 우리의 감수성이 그만큼 무디어지기 때문인가 봅니다.
감수성이 무디어지는 것은 우리가 삶을 살기보다 살아남기에 급급해서 '나'를 잃어버리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비록 새로운 만남에서 느끼는 우리의 감성이 옅어질지라도, 지나간 만남을 되돌아보며 느끼는 감성은 더 깊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추억하는 감정이 굳이 기쁜 것만은 아니어도 ‘잃어버린 나’를 더 깊게 만날 수 있다는 위안입니다.
중년을 넘기는 삶은 새로운 ‘너’를 만나는 기쁨보다 잃어버린 새로운 ‘나’를 만나는 기쁨이 더 커지는 때입니다.
새로운 ‘너’가 싫어서라기보다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한 잃어버린 ‘나’를 새롭게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 만남은 ‘너’를 만나기에 바빠 소홀했던 만큼 ‘나’를 사랑하는 새로운 시간입니다.
참 ‘나’를 만나는 시간은 ‘우리가 메시아를 새롭게 만나는 시간’입니다. ‘메시아’를 만난 참 ‘나’로써 ‘너’를 새롭게 만날 때 우리는 삶을 힐링(healing)하는 새로운 메시아마저 체험하게 됩니다.
나이가 드는만큼 잊고 살았던 나를 만나는 것은, 메시아를 만나기 위한 은총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