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삐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
삐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bard de Cahardin)은 1881년 5월 1일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1911년 신부가 되기까지 신학, 지질학, 고생물학 등을 연구했다. 소르본 대학에서 포유류의 진화를 연구, 자연과학 부문의 박사학위를 받고 "파리 가톨릭 대학"에서 지질학 교수 자격도 얻었다.
1923년 과학적 사명을 띠고 중국에 파견된 후 20년 이상 지질학 및 고생물학의 연구와 탐험에 몰두했다. 1929년 북경 주구점에서의 북경원인 발굴은 고고인류학 분야의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다. 2차대전 후 파리로 돌아온 떼이야르는 "파리 과학 연구원 국립중앙연구소장"에 임명되었으며, "꼴레즈 드 프랑스"의 교수로 초빙되기도 했다. 1951년에는 인류학 연구기관인 뉴욕 웬느 그렌 재단의 상임연구원으로 초청받고, 1955년 별세하기까지 거기서 연구와 집필을 계속했다.
그는 신학자, 철학자이기 전에 지질학자요 고생물학자였다. 그러나 경험적 현상의 비결과 설명에만 치중하는 단순한 과학자는 아니었다.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발전 속에 함축된 인간의 의미를 숙고함으로써 조화있는 세계관 수립에 힘쓴 사상가이기도 했다. 그는 과학적 진화론을 신학에 도입하여 과학과 종교의 조화를 꾀하고 나아가 우주의 미래를 예시함으로써 현재 그리스도교 신학계로부터 예언자적 신학자로, 신화적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생애 말년을 그는 뉴욕에서 지냈다.
1951년 그곳에서 Wenner-Gren Foundation for Anthropological Research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수많은 학술협회의 명예 회원이기도 했다. 1955년 부활 대축일 선종하셨다.
옮긴이 : 이문희 대주교
1935년 9월 14일 대구에서 태어나 1962년 프랑스 리용 신학대학 철학과, 1966년 파리가톨릭대학 신학부를 졸업하였다. 1965년 12월 사제품을, 1972년 11월 주교품을 받았다. 1986년 7월 제8대 대구 대교구장으로 착좌하였으며 1993년~1996년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역임하였고, 2007년 대구 대교구장에서 은퇴했다.
「사랑으로 부르는 평화의 노래」「저녁노을에 햇빛이 Ⅰ」「인간 현상의 이해」와 시집 「일기」「아득한 여로」를 냈다. 「삶 · 죽음 · 부활」「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신의 영역」「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종교사상」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책소개
신과 인간, 우주에 대해 조명
2010-09-05 00:00:00|이지혜 기자 |평화신문
"신의 사랑으로 우리도 신 안에 들어가고, 그의 사랑으로 일체를 이룰 때 우리는 없어진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참으로 신의 영역에 몰입하게 된다."
고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로 20세기 고고인류학 분야에 획기적 업적을 남긴 떼이야르 드 샤르댕(1881~1955, 예수회) 신부의 「신의 영역」이 출간됐다. 전 대구 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가 옮겼다.
1923년 중국 베이징에서 인류 화석 '베이징 원인(原人)'을 발굴한 샤르댕 신부는 과학적 진화론을 신학에 도입한 예언자적 신학자로 유명하다. 과학적 분석을 따르면서도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열정을 놓지 않은 그는 과학과 종교가 융화되는 우주의 법칙을 추구했다.
「신의 영역」은 과학자 신부가 예언자적 신학자로서 신비적 직관과 탁월한 예지로 신과 인간, 우주에 대해 조명한 책이다. 그는 자연과 초자연, 신의 영향과 인간의 활동을 명백히 구분하지 않는다. 신앙인의 윤리적 자기완성 또는 완덕을 향한 길을 소개하는 것도 아니다. 죄와 은총에 관한 언급도 드물다. 다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그러나 초자연화된 인간에 주목했다.
그는 "신의 영역은 신이 있는 곳이고, 그곳에 우리가 있을 때"라고 설명한다. 세계가 신의 이름을 부를 줄 모르고 참다운 초월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지구 자체를 그리스도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인간이 가진 집착을 통해 해탈로 나아가는 비약으로 십자가 의미에 대해서도 접근했다. "더 많은 물질을 정신에 종속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지상의 것을 조금 더 정복할 때 이미 자신을 더 소유함과 동시에 자신을 버리지 않겠는가?"(84쪽)
자기보다 위대한 것을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은 인간적 노력에 충실했으므로 집착에서 해탈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스스로 발전하기를 노력(집착)하면서도 신 안에서 자신을 포기(해탈)하는 과정으로 십자가 의미를 풀어냈다.
나눔의 글
이 책은 세상을 찬미하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세상 모든 곳은 신의 영역이며 사람의 행동 안에서 사람과 신이 구체적으로 만난다는 것을 여러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신을 추구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의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인 행동에 의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신의 영역」을 크게 세 가지 주제로 즉, 1부 '능동성의 신화', 2부 '수동성의 신화', 3부 '신의 영역'으로 설명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현대인에게 인간의 모든 행동을 통해 신은 세계 자체처럼 도처에서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며, 이 신을 받아들이기위해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행동 안에서 신을 ‘보는 것’임을 신비적 직관과 탁월한 예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요약한 내용을 나눔의 글에 올립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프롤로그 긴요한 조언
이 책에서 수덕신학修德神學에 관한 완전한 체계를 찾지 말 것이다. 이 책은 일정기간 동안 관찰한 심리적 발전의 단순한 묘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도덕적 악, 즉 죄에 대해 소략하게 언급되더라도 놀라지 말기 바란다. 이 책은 죄에서 이미 몸을 돌린 영혼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총의 작용에 대한 말이 다소 부족해도 마음 쓰지 말 것이다. 여기서 검토된 주제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그러나 초자연화된 인간이다. 의식적 인간 심리의 영역 안에서만 파악했기에 자연과 초자연, 신의 영향과 인간의 활동을 명백히 구분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은총의 작용에 관한 명시적 언급이 없어도 그 뜻은 도처에 함축되어있다. 이론적으로 용인된 실재성實在性의 형태로뿐 아니라, 실제적인 은총 관념이 이 책 전반에 함의되어 있다.
사실 영혼과 그의 온 존재가 의화義化되고 강화된 의지로 신의 대해大海에서, 자기 안팎에서, 받침돌을 찾지 못하여 발이 닫지 않는 걸 느끼지 못하는 ‘신비가’에게, 신의 영역이 지닌 위대함이나 매력은 없다.
서론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8).*
이 시대에 종교에 대한 풍요로운 생각이나 곤혹감은 아마 우리 주위에나 우리 안에 계시되는 세계의 광대함과 그 세계의 일체성에서 기인할 것이다. 현실 세계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과학은 시공간의 깊이와 넓이를 한없이 더해가고, 우주 구성 요소 간의 새로운 연결고리를 끊임없이 밝혀내고 있다.
이러한 발견의 흥분 가운데 친화력과 공감을 자아내는 세계는 영혼과 더불어 존재하기 시작했으니, 지금까지는 인간의 영혼이 체험한 것이라기보다 꿈 같은 것이었지만 이제 그 실제를 드러내고 있다. 학식 있고 균형 잡힌 올곧은 사상가에게나, 아는 체 잘하는 현학자에게나, 더 넓은 일치와 조직된 영역에 내재하는 미지의 에너지에 대한 예감은 똑같다. 오늘날 자신이 우주의 한 시민이요 그 원자와 같은 존재라고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래서 드문 일이 아니다.
언젠가 이런 집단적 각성을 통해 삶의 진정한 한계에 봉착할 때, 인간 집단은 종교에 대해 큰 충격을 받고 종교를 거부하거나 찬양하게 될 것이다.
한편의 사람들은 세계가 너무 거대하여 그 속에서 인간은 방황하고 무시되며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 여기게 될 것이고, 다른 한편의 사람들은 세계가 너무 아름다워 이 세계만 사랑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과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이다. ··· 나는 여기서 형이상학이나 호교론을 펴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와 동행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고라로 돌아가, 바오로 사도가 아레오파고스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리라. 사람을 창조하신 신은 사람이 당신을 알게 하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다. 우리 인생이 찾으려는 신은 우리를 둘러싼 대기처럼 퍼져있기에 감지될 수 있다. 신은 세계 자체처럼 도처에서 우리를 감싸고 있다. 이 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 그를 ‘보는 것’이다.
이 작은 책에서 독자는 이 시대를 함께 느끼고 있다고 믿는 한 사람이 교회의 영원한 교리를 반복하는 것을 볼 것이고, 이는 곧 어디에서나 신을 볼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신은 가장 은밀하고 가장 확실하고 가장 결정적인 데서 보일 것이다. 이 책이 문제 삼는 것은 다만 하나의 실천적 태도다. 더 정확히는, ‘눈의 교육’이라 해도 좋겠다. 나와 함께 자리 잡고 여기서 바라볼 뿐, 논쟁하지 말자.
이 특권적 지점은 선택된 소수에게 예약된 험한 정상頂上이 아니라, 이천 년 그리스도교의 경험으로 구축된 든든한 전망대다. 예서 바라보면, 서로 상반되는 인력引力으로 신앙을 혼란에 빠뜨린 두 별이 합쳐지는 것이 보인다. 혼합과 혼동 없는 신, 참다운 그리스도교의 신이 우리 눈앞에서 우주를 정복할 것이다. 우주는 한없는 광대함과 세속적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신은 수정을 통과하는 광선처럼 피조물의 층들에 침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