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쟈크 필립
1947년 프랑스 로렌 지방에서 태어났다. 1976년 베아티튀드 공동체에 입회하여 4년간 이스라엘에 머물면서 유다주의를 공부했다. 1981년부터 로마에서 신학과 교회법을 공부한 후 1985년에 사제로 서품되어 이탈리아 공동체 책임자로 일했다. 1994년 프랑스로 돌아와 공동체 양성을 담당하고 평의원으로 일하며 프랑스와 해외에서 피정을 지도했다. 최근에는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서 공동체 발전을 위해 자주 현지를 방문하고 프랑스 공동체에서 양성과 교회법을 담당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하느님을 위한 시간』 Du temps pour Dieu, 『삶으로 부름받아』 Appele a la vie, 『평화 안에 머물러라』 Recherche la paix et puorsuis-la 『내면의 자유』 Liberte inteieure가 있다.
옮긴이 : 조안나
나눔의 글
흔히 우리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애쓰며 불안해한다. 그러나 하느님 눈길 아래 평화롭게 머물면서 우리 지혜와 능력을 무한히 뛰어넘는 그분의 지혜와 권능으로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일하시게 해드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물론 게으름과 무위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활동을 하되 온유하고 평화로운 영이신 하느님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하라는 것이다. 자주 불안하고 동요되며 지나치게 서두르는 우리 자신의 영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비록 하느님을 위한 것이더라도.
자크 필립 『평화 안에 머물러라』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중에서
깊은 숲 맑은 시냇물 흐르는 물가로 인도하듯 잔잔한 평화가 밀려오던 『평화 안에 머물러라』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대체로 이해하기 쉬운 자크 필립 신부님의 『성령 안에 머물러라』(3월 영적 도서)를 요약하여 나눔의 글에 올립니다.
머리말
“오, 예수님, 거룩해진다는 건 얼마나 쉬운지요. 선의만 조금 있으면 되니까요. 예수님은 영혼 안에서 매우 작은 선의라도 발견하시면 서둘러 당신을 영혼에게 주십니다. 그때는 영혼의 잘못도, 넘어짐도, 그 어느 것도 예수님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그 영혼을 도우려고 서두르시며 영혼이 하느님 은총에 충실하다면 빠른 시일 내에 피조물이 이 세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성덕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매우 관대하시며 아무한테도 당신 은총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더 많이 주시기까지 하는 분입니다. 성덕에 이르는 지름길은 성령의 영감에 충실히 머무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글은 파우스티나 수녀의 일기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영혼들의 가장 큰 문제, 때로 고뇌에 이르기까지 이르는 문제는 어떻게 성덕에 이르는지를 아는 것이다.
당신은 이런 문제를 한 번도 느끼지 않았을 수 있다. 그대 마음은 하느님을 최대한 사랑하려는 열망을 전혀 느껴보지 않았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제발 성령께 이런 열망을 그대 안에 불러일으켜 달라고 기도하기 바란다. 그대를 편안히 놔두지 말아 달라고 청하라! 그렇게 하면 그대는 복된 사람이 될 것이다.
이처럼 사랑의 충만을 열망하는 사람들한테는 길을 밝혀주고 특히 그 지름길을 가르쳐 주는 가르침이 매우 소중하다. 거의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내가 보기에, 거룩한 영혼들을 더 많이 빨리 거룩해지게 하는 것을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러면 교회도 큰 유익을 얻을 것이다. 세상은 성인들의 기도를 통해 구원될 것이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앞에 인용한 구절과 일기에 쓴 또 다른 성찰을 통해 체험에서 우러난 가르침을 주고 있는데,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 성덕에 이르는 가장 짧은 길은 성령의 영감에 충실한 것이다. 따라서 파우스티나 수녀는 노력을 한 군데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우리 노력을 삶의 여러 영역으로 흩뜨리면 그 효과가 보잘것없거나 아무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성령의 영감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며 실천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멀리 볼 때 이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왜 그런지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슨 뜻인지 보여주고자 한다.
1부
성덕은 성령의 작품이다
사람들은 흔히 성화가 인간 노력의 결과라고 착각한다. 완덕에 대한 명확한 프로그램을 갖고 점차 그 실현을 위해 용맹하고 인내롭게 매진하는 것이 성화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여기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아니 어쩌면 다행이도!) 모든 것이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물론 용기와 인내도 필요하다. 하지만 성덕은 분명 우리가 세운 프로그램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살펴보려 한다.
1. 성덕은 우리 힘으로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성덕에 이를 수 없다. 성경 전체에서도 성덕은 하느님 은총의 결과라고 가르친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라고 말씀하신다. 바오로 사도 또한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로마 7,18)라고 말했다. 또 성인들도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은 우리 각자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인 성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먼지가 빛으로, 쓰레기가 순수함으로, 죄가 성덕으로, 피조물이 창조주로 그리고 사람이 하느님이 되다니! 오, 놀라워라! 그러나 이 일은 그 자체로 어려운 일이며 자연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오직 하느님만이 풍요롭고 놀라운 은총을 통해 이 일을 하실 수 있다. 우주 전체의 창조도 성덕에 비하면 그다지 걸작은 못 된다.”(『마리아의 비밀』, 1부 시작 부분)
우리가 제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스스로 자신을 바꾸지 못한다. 하느님만이 우리 결함과 사랑의 부족을 메울 수 있고 이를 위해 우리 마음에 깊은 영향력을 지닐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잘 알 때 헛된 노력과 낙담을 피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성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성인으로 만들어 주시는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 노력이 열매를 맺으려면 좋은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곧 완덕을 우리 노력의 결과처럼 얻으려 애쓸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지 않고 우리를 성화하시는 그분의 은총에 최대한 열려 있으려 노력해야 한다.
이 사실은 스스로의 힘으로 성인이 되고자 하는 오만한 생각을 내려놓고 자신의 가난함을 받아들이는 등 겸손함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매우 큰 희망을 주기도 한다. 우리 나약함을 평온하게 받아들이고 하느님께만 신뢰와 희망을 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성덕의 비결은 어떤 의미로 우리가 하느님을 제대로 대할 줄만 안다면 그분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있다. 이것이 아기 예수의 데레사의 작은 길의 비결이다. 곧 하느님은 아버지시므로 우리가 그분 마음을 사로잡을 줄만 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반드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데레사 성녀가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자신의 유일한 스승인 십자가의 성 요한한테서 발견했으리라 생각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영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의 권능과 끈기는 대단합니다. 바로 하느님 자신을 정복하고 사로잡으니까요. 사랑하는 영혼은 행복합니다. 그 영혼은 하느님을 자기 포로로 만들어 자신이 바라는 것을 모두 얻으니까요. 사실 하느님은 우리가 사랑으로 그분께 다가가기만 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실 그런 분입니다.”(영가 B, 32,1)
우리의 사랑과 신뢰가 하느님 마음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한 이 대담한 문장은 매우 아름답고 깊은 진실을 담고 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또 다른 곳에서 이 진리를 조금 다르게 표현했다. “하느님 마음을 움직이고 사로잡는 것은 굳건한 희망(망덕)이다.”(십자가의 성 요한, 잠언 112) 또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끊임없이 당신을 향하고 그분께만 의지하는 영혼의 희망을 매우 높이 평가하시므로 영혼은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얻는다고 말할 수 있다.”(십자가의 성 요한, 잠언, 119)
성덕은 삶의 계획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얻는 것이며, 그것을 얻을 수 있는 틀림 없는 방법도 있다. 문제는 어떤 방법이냐를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성인이 될 능력이 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갖는 신뢰가 그분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앞으로 하는 이야기의 목적은 우리 자신이 성덕에 이르는 올바른 길로 들어서도록 하는 데 있다.
2. 하느님만이 각 사람의 길을 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