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 성당 2021. 5월 영적 도서: 하느님의 연인 「헨리 나웬」
지은이 : 마이클 오래플린 옮긴이 : 서한규
책소개(바오로 딸)
나눔의 글
1957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은 나웬 신부는 1960년대 중반부터는 줄곧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명성을 쌓았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중반까지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가르치던 그는 1985년 장애인 공동체 라르슈를 만나면서 미련 없이 하버드를 떠납니다. 그리고 라르슈 공동체 캐나다 지부 '새벽'에서 장애인들과 10여 년을 보내다가 1996년 심장마비로 하느님 품에 안깁니다.
우리가 참으로 내적 자유를 얻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본보기로서 잘 보여주는 헨리 나웬(1932~1996) 신부의 영적 전기문을 요약하여 나눔의 글에 올립니다.
들어가며
새벽
네덜란드의 사제이자 영성 작가인 헨리 나웬은 199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떠날 즈음 그는 꽤 유명한 가톨릭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헨리 나웬의 책은 기도나 사목 같은 영적 문제를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독이나 빈부 문제 같은 실존적 주제도 다루고 있습니다. 출판된 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영적 체험을 통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스스로의 경험과 선택, 관심사에 관해 글을 써 나가면서 헨리 나웬의 메시지는 점점 닮아 가기 시작합니다. 삶과 저서는 마침내 그렇게 일치하게 됩니다. 나는 여러분이 책을 통해 그의 삶의 많은 부분을 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헨리 나웬의 삶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유명한 영성 작가가 되고 나서도 그는 미디어에 신경을 쓰거나 특별한 생활양식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성 생활을 확실히 실천하기 위해서 많은 강연을 거절했고 예일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 자리도 마다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시토회Cistercian 수도원의 침묵 관상에 참여하는가 하면, 제3세계 선교사가 되기 위해 페루 리마 근처의 빈민촌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시는 경우가 대개 그러하듯이, 영적 고향을 찾는 그의 바람은, 하버드 대학교가 점점 불편해져 가던 1985년에 이루어집니다. 몇 차례 예비 접촉 후에 그는 ‘새벽’Daybreak 공동체에 지도신부로 가게 됩니다. ‘새벽’은 라르슈L’Arche의 캐나다 토론토 지부로, 정신적 · 육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핵심 멤버’들을 돌보는 데 전념하는 범교파적 · 국제적 공동체입니다. 나웬은 ‘산상설교의 정신으로’ 사는 공동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새벽’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바로 그곳임을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장애를 가진 조카가 있었지만, 그 자신이 장애인과 함께 살면서 봉사하는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장애인들의 연약함과 너그러운 마음에 헨리 나웬 자신도 경계를 풀었습니다. 그곳에는 연민과 친밀함이라는 특별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헨리는 상처받은 사람들 각자에게도 꼭 필요한 역할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그는 늘 강조했습니다.
헨리 나웬은 ‘새벽’의 지도신부로 초대된 것을 영적 부르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부르심에 따라 보스턴을 떠나 토론토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장애가 심한 사람들을 돌보기도 했는데 이것이 그에게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다해 스스로를 정화하는 체험의 시간이었습니다. 달변가 헨리 나웬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과 살아야 했습니다. 거동이 힘든 사람들과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헨리 나웬은 점점 그들의 관심과 사랑을 얻게 됩니다. 라르슈의 삶을 통해 그는 숱한 강연과 분주하고 들뜬 생활에서 멀어지는 데 성공했습니다. 인기를 좇기보다는 라르슈에서 공동체와 우정, 사람을 돌보는 직무에 전념했습니다.
우정
헨리 나웬의 뛰어난 매력 가운데, 다른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는 말 그대로 수천 명의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성실하고 관대하며 늘 활기에 넘치는 그는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었고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저마다 자신이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헨리는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근원적 힘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직접 방문은 물론이고 편지, 전화, 소포 등을 통해 그는 수많은 사람의 소중한 벗이자 믿음직스런 조언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특출한 두 삶을 동시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서너 가지의 삶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통찰력 있는 작가로서 많은 작품을 펴낸 그는 위대한 설교가이자 뛰어난 교사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만남으로써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잘 알려진 저서 『손을 내밀며』Reaching Out는 헨리 나웬 영성의 기본 특징을 보여 줍니다. 타인에 대한 성실한 봉사가 개인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도처에서 정열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모습은 분명 그리스도교적인, 즉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입니다.
이 점이 헨리 나웬의 뛰어난 재능이자 사목의 핵심입니다. 스스로 배우고 경험한 바의 한계를 넘어 나아갈 때도 그는 그리스도교적 관점과 정체성을 견지했습니다. 그리고 독자나 주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에 곰곰이 생각하도록 도우면서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정말로 또 다른 그리스도 같았습니다.
무능한 사람
헨리 나웬은 ‘또 다른 그리스도’이면서 자신만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을 가는 고통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주신 재능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별 위안이 되지 못했습니다.
라르슈의 일원이 된 후에도 종종 침착성을 잃거나 변덕스러워졌고 맡은 일을 처리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연설가, 작가, 상담가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지만 (샌드위치 만드는 것처럼) 단순하고 일상적인 일은 잘하지 못했습니다. 유명 인사들, 특별한 재능으로 각광받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헨리 나웬도 자기 재능 이외의 방면으로는 아주 무능했습니다.
라르슈에서 그는 스스로의 무능력과 직면하면서 일상사를 수행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겸손하게 받아들였고, 공동체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정서적으로 충만한 안정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역사
세상을 떠난 뒤 헨리 나웬에게는 더 뜨거운 감사와 사랑이 쏟아졌습니다. 작가이자 사제이며 수많은 이의 영적 지도자요 친구였던 그가 죽은 뒤에 일어난 새로운 현상들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했고, 시간이 갈수록 그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음을, 즉 훌륭한 작가이자 좋은 친구였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공동체에 보내신 빼어난 인물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헨리 나웬에 관한 책과 그의 작품을 토대로 한 책들이 출판되고, 그를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세미나, 피정, 국제회의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헨리 나웬 협회가 생겨났고, 토론토 대학교에는 헨리 나웬 기록 보관소와 헨리 나웬 저작물 센터가 세워졌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들에 관해 완전히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습니다.
이 책의 상당 부분도,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헨리 나웬에 관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메시지를 안고 세상에 파견된 이 사람에게서, 다른 이들처럼 나 역시도 가능한 한 많이 배우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