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의 詩편지](39) 12월은
이해인 수녀
경향신문 자료사진
12월은
우리 모두
사랑을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잠시 잊고 있던
서로의 존재를
새롭게 확인하며
고마운 일 챙겨보고
잘못한 일 용서 청하는
가족 이웃 친지들
12월은 우리 모두
은총의 시간에 물든
겸손하고
따뜻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며
세상 사람 누구에게나
벗으로 가족으로 다가가는
사랑의 계절입니다.
- 시집 <희망은 깨어있네> 중에서
일년이 빠르다는 말을 늘 습관처럼 하고 살지만 왠지 올 한 해는 더 빨리 지나는 것 같습니다. 12월이 되면 수녀원에서도 대청소, 김장, 과자굽기, 홀몸어르신 방문, 성탄편지쓰기 등등으로 매일을 조금 더 바삐 보내는 편입니다. 힘들어서 날카로워진 마음을 순하게 길들이라며 우리 모두를 겸손한 배려와 사랑으로 초대하는 12월! 12월엔 그동안 감사를 다 표현하지 못했던 친지들에게 미루지 말고 편지를 쓰면 좋겠습니다.

이해인 수녀
엊그제는 아주 오랜만에 스위스에서 일하는 후배 수녀들로부터 항공우편을 하나 받았는데 보름도 더 걸려서 늦게 도착한 편지가 반가움을 더해주었습니다. 늘 빠른 택배나 속달편지에 익숙한 요즘 저도 이젠 좀 천천히 가는 손편지를 써야지 생각하며 빙그레 웃어봅니다.
몇 달 전 좋은 인편이 있어 그들이 궁금해할 만한 소식을 곁들여 정성스레 써 보낸 시인수녀의 편지에 엄청 감동받았다는 수녀들! 스위스도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추세라 그 영향으로 소임에도 지장이 많다면서 어려움을 호소했고, 그중에도 부엉이 가족이 즐거움을 주었다며 사진까지 곁들여 보냈습니다. 인적이 드문 수녀원 뒷정원에서 부엉이가 새끼를 낳아 모두 5마리가 지내다 떠났는데 그들이 다시 보고 싶고 ‘수녀님도 참 보고 싶다’는 말을 잊지 않으니 편지가 이어준 자매적 우정에 콧날이 시큰해졌습니다.
얼마 전 거의 일년 만에 서울을 다녀오자마자 암이 전이되어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수녀들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불쑥 전화하기도 겁이 나 위로의 말을 우선 문자로 전하니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차츰 마음이 안정되는 중이라고 기도 부탁한다는 답을 보낸 두 수녀에게 저는 ‘사랑의 손편지를 써야지’ 생각만 하는데도 벌써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12월엔 평소에 좋아서 되새김하던 시나 좋은 글귀를 옆의 사람들과 나누어도 소박한 기쁨을 만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은 병실 소임을 하는 수녀들의 아침기도 시간에 함께하며 어느 스님이 예전에 적어 준 “용서는 나의 수행/ 원수는 나의 스승/ 나눔은 나의 행복”이라는 노란 메모쪽지의 글귀를 읽었습니다. 여기서 원수는 어떤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하루의 일과에서 나를 속상하게 하거나 맘에 안 드는 어떤 상황일 수도 있으니 우리 함께 노력해 봐요”라고 말했더니 다들 웃으며 “원수는 나의 스승!”이라고 제 등 뒤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12월엔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낯선 이들도 가족으로 대하는 넓은 마음을 주십사 하고 기도합니다. 지상에서 누구를 사랑할 날이 그리 많지 않음을 새롭게 기억하면서.
이해인 수녀의 詩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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