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한국교부학연구회
김산춘 예수회 사제, 서강대학교 교수
노성기 광주대교구 사제, 광주가톨릭대학교 총장
배승록 대전교구 사제
서공석 부산교구 원로 사제
이상규 대전교구 사제
이성효 수원교구 보좌주교
이연학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사제
장인산 청주교구 원로 사제
정양모 안동교구 원로 사제
최원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하성수 서강대학교 강사
황치헌 수원교구 사제,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책소개
교부敎父들이란 1세기부터 7, 8세기에 활동한 교회 지도자들을 일컫습니다. 사도 시대가 끝나고 그 사도들의 제자들로 이어지는 교부들은 성경과 사도들에게 배운 가르침을 자기 시대의 신자들에게 전해 준 ‘교회의 아버지’들로, 지금 교회가 가르치는 대부분의 교리와 전례 그리고 영성은 교부 시대에 이미 기본 틀이 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부들의 가르침은 성전聖傳의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교부들의 말씀은 믿고 기도하는 교회의 실생활 가운데 풍부히 흐르고 이 성전의 생생한 현존을 입증”(「계시 헌장」 8항)하기에 교부들의 역할과 그들의 가르침을 배우는 일은 실로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한국교부학연구회의 필진 열두 명이 교부들의 저서에서 한 대목을 발췌하여 본문을 직접 소개하고 현대적 해석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가톨릭신문」에 공동 기고한 글을 모아 엮었습니다. 사도 시대 이후 성경과 사도들에게 배운 가르침을 당시 신자들에게 전해 주고 해설한 교부들의 글은 시대와 지역과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감동과 교훈을 안겨 주기에 충분합니다. 아울러 우리 시대의 상황과 연관하여 덧붙인 필자들의 해설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신앙생활과 영성 생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책 속에서
전통적으로 교부들은 교회를 ‘어머니’라고 불러 왔다. 당신 자녀들을 밥해 먹이고, 똥오줌을 닦아 주고, 더럽혀 놓은 옷을 빨래해 주고, 때와 허물을 청소해 주는 고마운 어머니로 우리 교회를 여겨 왔기 때문이다. 교회는 뻐기고 벌주고 감독하고 훈계만 하는 팥쥐 어멈이 아니다. 우리가 비록 넘어지고 실패하고 좌절했다가도 툴툴 털고 다시 일어나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어머니! 이 어머니가 바로 교부들이 우리에게 일러 준 ‘자모慈母이신 교회’, ‘어머니 교회’다(166쪽).
나눔의 글
모든 것이 급속도로 변하는 오늘날에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사랑과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이며, 이런 점에서 교부들의 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고전’이 됩니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감동과 교훈을 주는 귀한 글이라는 의미에서의 이 ‘고전’은, 교파를 뛰어넘어 모든 그리스도인이 물려받아야 하는 그리스도교의 소중한 공동 유산입니다.
이 책을 통해 교부들의 깊고 드넓은 샘에서 길어 올린 맑고 시원한 생수를 직접 맛보는 기회를 누리게 될 것이고, 교부들의 삶과 교부 문헌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특별한 영적 깊이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보고寶庫(교부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를 요약해서 나눔의 글에 올립니다.
1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
김산춘
창조주께서 그대를 모든 피조물보다 얼마나 더 존귀하게 여기셨는지 깨닫길 바랍니다. 그분은 하늘도 달도 태양도 아름다운 별도 다른 어떤 피조물도 당신 모습(eikon)에 따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대만이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본성의 모상이고 영원한 아름다움의 초상이며, 참된 신성神性의 닮음이고 복된 삶을 담는 그릇이며, 참된 빛의 각인입니다. 그분을 바라보면, 그대는 그대의 순수함에서 반사되는 광채로 그대 안에서 빛나고 계신 그분을 닮아 가면서(2코린 4,6 참조) 그분처럼 됩니다.
그렇기에 피조물 가운데 그대의 위대함과 견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늘 전체는 하느님 한 뼘 손으로 가릴 수 있고, 땅도 바다도 그분의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위대하고 능하시며, 주먹으로 피조물 전체를 짓누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그대가 완전히 품을 수 있는 분이 되시고 그대 안에 거처를 정하십니다. 그분이 그대의 본성 안에서 걸으셔도 결코 비좁아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 가운데에서 거닐니라”(2코린 6,16).
그대가 이 장면을 본다면, 그대는 지상 그 어떤 것에도 눈을 돌리지 않으며, 하늘을 더이상 놀라운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 자신이 하늘보다 더 변함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오, 인간이여, 어찌하여 아직도 하늘을 보고 감탄합니까? 하늘은 사라지지만(마태 24,35 참조), 그대는 언제나 존재하시는 분(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머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땅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밀물이 끝없이 뻗어 나간다고 놀라지 마십시오. 그대는 땅과 밀물을 보며 그대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쌍의 어린 말을 탄 기수처럼 그대는 이 요소들을 그대가 좋게 여기는 것으로 만들었으며, 그것들을 복종시킵니다. 땅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으로 그대를 도와주고, 바다는 말을 잘 듣는 어린 말처럼 그대에게 등을 내밀며 인간을 바다의 기수로 받아들입니다.
*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아가 강해』2,68-69
‘교부들의 황금시대’라는 4세기에는 기라성 같은 교부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소아시아 카파도키아 지방에는 더욱더 휘황하게 빛나는 세 별, 카이사리아의 주교 바실리우스, 나지안주스의 주교 그레고리우스 그리고 니사의 주교 그레고리우스가 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335/40~394년 이후)는 젊은 시절,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수사학을 공부하며 세속적 출세를 꿈꾸었다. 그러나 누이 마크리나와 형 바실리우스로부터 영적 감화를 깊이 받아, 형의 친구인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의 권면으로 수도생활에 투신한다. 자신의 관상 생활을 풀어놓은 『아가 강해』는 이러한 수도생활을 바탕으로, 형 바실리우스가 틀을 놓은 수도제도에 신비적 성격을 새겨 놓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특히 사순 시기에 낭독되기도 했는데, 훗날 ‘지성적 신비주의’라는 영성의 큰 줄기를 이루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오늘날처럼 마음이 메마르고 분열되어있는 시대에 우리는 아가가 지니고 있는 ‘사랑의 언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아가를 글자 그대로 읽으면 실로 에로틱하여 종교적 글이라고 전혀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레고리우스의 깊은 영적 해석에 따라 읽으면,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이 무한히 깊어가고 영적으로 이해된 그들의 혼인에서 솟아오르는 즐거움을 구구절절 맛볼 수 있다.
본문은 그레고리우스의 열다섯 편 강해 가운데 둘째 강해로, “여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이여, 그대가 자신을 모르고 있다···”(아가 1,8)을 해석한 부분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여기서 진정으로 ‘자신을 아는’(自己知) 두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자신을 자신이 아닌 것과 구별하여 아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모상’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본문은 후자에 관한 해석이다.
그레고리우스에 따르면, 인간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품을 수 있는 이다. 하느님의 모상은 그 원형原型을 그저 가만히 닮는 것이 아니라 원형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열어놓고 닮아 가는 동적 존재라는 것이다. 또 이 강해에서 말하는 ‘덕’은 단지 인륜의 문제가 아니라, 신비에 관한 그의 또 다른 주저 『모세의 생애』의 부제副題가 말해 주듯이,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가리킨다. 영혼이 ‘사랑의 질서’ 안에 흔들림 없이 뿌리를 내리며, 하느님과의 그 사랑의 신비를 살아가는 삶 말이다.
2
사랑에 겨워 앓고 있는 몸이랍니다
김산춘
신부는 사수射手가 멋지게 자신을 향해 쏜 화살을 보며, “사랑에 겨워 앓고 있는 몸이랍니다”(아가 2,5). 라는 말로 그 솜씨를 찬미합니다. 화살이 마음속 깊이 관통하였음을 가리킵니다. 화살의 사수는 바로 사랑이십니다(1요한 4,8 참조). 사랑이신 하느님은 당신이 만드신 “날카로운 화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