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 성당 2020. 5월 영적 도서 「내면의 멜로디」

작성자 : 글라라    작성일시 : 작성일2020-06-08 18:52:31    조회 : 239회    댓글: 0

지은이 : 안셀름 그륀 신부

 

1945년 독일 뢴 융커하우젠에서 태어나 1964년 뷔르츠부르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차흐 대수도원에 들어갔다. 1965년부터 1974년까지 성 오틸리엔과 성 안셀모 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뉘른베르크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뮌스터슈바르차흐 대수도원의 재정 관리자로 일했다. 현재는 피정 지도와 영성 지도, 강연과 저술을 주로 하고 있다. 그는 지역과 종교를 뛰어넘어 많은 독자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는 우리 시대 최고의 영성 작가다.

 

옮긴이:전헌호 신부  엮은이: 안톤 리히테나우어 

 

나눔의 글

 

지금 전 세계는 아주 작은 생명체 코로나 19 바이러스로부터 두려움과 불안함과 고립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유령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세계 인류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덕분에 앞만 보며 쉴새 없이 달려가던 우리가 천천히 자신의 시간을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밤낮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던 공장의 기계가 일시 멈추면서 땅도 하늘도 예전의 맑고 청명한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잠시 급히 가던 길 멈추어 서서 우리는 물어봅니다. 삶의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은 정녕 무엇일까요?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우리가 삶의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면 자신의 영혼의 숨결(내면의 멜로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합니다. 이 책은 안셀름 신부님이 그것의 소중함을 잊고 무심하게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들려주고픈 마음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상실의 시대에 들려주고픈 내면의 멜로디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는 것을 연습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요약해서 나눔의 글에 올립니다.

 

서문

 

데틀레프 블록(Detlev Block)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말한다. 삶이 언제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언제나 긍정적인 측면이 압도적이다. 삶의 즐거움은 일종의 공기와 같은 에너지다. 연이 바람을 타고 떠오르듯이 즐거움은 우리를 일상생활 위로 떠오르게 한다. 삶은 전체적으로 볼 때 결코 무겁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도대체 누가 이 원초적 에너지를 틀어막고 흩어버리는 것일까? 교육 탓일까? 아니면 윤리 도덕의 회초리 때문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즐거움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삶의 기쁨은 우리를 위해 언제나 충만하게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깊고 먼 곳에 숨어 있다. 그곳에서 적개심이나 반발심 없이 귀를 연 채 조용히 있다. 올바른 말로 올바른 이름을 부르면 그것은 우리에게 다가온다.”

프란츠 가프카(Franz Kafka)가 일기에 기록한 말이다.

 

안셀름 그륀은 말한다. 삶의 즐거움은 우리 어른들이 다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사는 것,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은 우리가 다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특별한 것을 준비하거나 특별한 의지를 가져야 하거나 어떤 특별한 목표를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존재 자체를 맛보고 그것에 흥미를 가지면 된다.”

 

갈망은 그것을 추구하게 한다. 기쁨은 우리를 재미있고 활발하게 만든다. 우리가 피에로를 재미있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미숙하고 아둔한 행동을 업신여기기 때문은 아니다. 그가 아무런 목적의식을 지니지 않고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피에로가 사람들과 함께 놀이를 하면서 삶에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공감하고 함께 웃는다.

 

훌륭한 피에로는 어린아이처럼 자연스럽게 놀이를 하는 사람이라고 스위스 피에로 출신인 디미트리는 말한다.

 

가능한 어린아이처럼 되어보라. 삶이 즐거워질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톤 리히테나우어

 

 

긍정적인 에너지

-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것

 

삶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삶을 좋아하고 좋은 날들을 보고싶어하는 사람은

누구냐? 라는 말을 들으면

너는 접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것이다.

네가 참되고 영원한 삶을 원한다면

네 혀를 조심하여 악한 말을 삼가고

입술을 거짓된 말로부터 지켜라!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여라.

평화를 찾아 나서고 그를 따라가라.’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규칙 머리말(15-17)에 있는 말이다. 성인은 삶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젊은이들을 수도원으로 초대했다. 우리의 목표는 젊은이들에게 삶을 좋아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삶을 좋아하는 것은 쾌락을 좇는 사회가 제공하는 것과는 다르다. 피상적이고 표피적인 쾌락과 다른 것이다.

 

이것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물고,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살며,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기 위한 기술이다. 모든 탐욕을 떨쳐버리고 나 자신을 잊어버릴 때, 비로소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나에게 무엇을 주는가? 이것에서 나는 무엇을 느끼는가?’

오직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사람만이 이 순수한 현존을 맛볼 수 있고 그것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많은 만족, 적은 기쁨

 

언어는 기쁨과 만족에 대한 고유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우리는 단 1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서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기쁨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적이란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무엇이든 가능한 한 많이, 빨리 해결하고자 한다.

여기서 생기는 것은 언제나 많은 만족과 적은 기쁨이다.

 

헤세는 주변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사람이었다. 그 결과 그는 늘 새로운 만족을 찾아 바삐 서두르는 행위를 몹시 비판하게 되었다. 항상 서둘기만 하는 사람은 기뻐할 여유를 가질 수 없다. 헤세는 오늘날 재미를 찾아 서둘러 다니는 사람들이 누리는 만족은 결국 올바른 만족이 아니라 일종의 대용품을 즐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 현상은 그들에게 기쁨을 누릴 만한 내적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표시이다.

기쁨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야 얻을 수 있다. 기쁨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천천히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새로운 만족을 날쌔게 붙들어 넉넉히 가지려 하기보다는 현재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병적으로 찾는 재미

 

방탕의 모태는 기쁨이 아니라

기쁨이 없음이다.

초인과 황홀을 추구한 프리드리히 니체가 명철한 판단력으로 한 말이다. 어떤 사람이 세상의 온갖 재미를 전부 쫓아다니며 방탕하게 사는 것은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로 기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기쁨이 없는 상태는 병적으로 재미를 찾는 행위의 모태이다. 쾌락을 좇는 사회현상은 그 시대의 허망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시대엔 기쁨이 없다. 재미라는 것도 대개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가며 쥐어 짜낸 것이다. 재미를 위해 종종 다른 사람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심지어 웃음거리를 찾으려고 다른 사람을 악용하기까지 한다. 그런 식으로 비인간적인 쾌락 사회가 진행되어 간다.

재미는 단지 외부에 머물 뿐 마음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지 못한다. 사실 모든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이미 기쁨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길어 올릴 수 있는 보물 가운데 하나이다.


행복 제조기

 

쾌락 중독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