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 성당 2020. 7월 영적 도서 「하늘은 땅에서 열린다」
지은이 : 루돌프 슈테르텐브링크
도미니코회 수사 신부로 1937년 바드 크로이츠나호에서 태어났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쾰른 대성당 설교 담당 신부로 일했고 지금까지 강연, 피정 지도, 저술 들을 통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옮긴이: 김선태 주교
1989년 사제품을 받고 전주교구 전동성당과 둔율동성당 보좌신부로 사목했으며, 1997년 스위스 프리부르 대학교에서 기초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주 가톨릭신학원에서 강의했고 솔내성당, 화산동성당, 연지동성당, 삼천동성당 주임신부를 지냈다. 2017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전주교구장 주교로 임명받았다.
옮긴 책에 「하늘은 땅에서 열린다」,「안셀름 그륀의 희망 메시지」,「물고기 뱃속의 지혜」,「DOCAT 무엇을 해야 합니까」,「내 삶을 가꾸는 50가지 방법」,「위기는 선물이다」,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마라」,「사랑을 그리는 숨은 꽃, 데레사」,「예수 생명의 문」,「예수 자유의 길」,「함께 울어주고 함께 아파하고」 등이 있다.
나눔의 글
영성 묵상집「하늘은…」은 어떤 이론이나 세상에 대한 신앙 해석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과 이웃과의 대화 등을 담은 예화를 통해, 보다 쉽게 삶의 의미와 길을 제시합니다.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 보낸 글을 통해 “하느님께 다다르기 위해 무한한 거리를 여행할 필요가 없다.”고 하며, “모든 사물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마음의 문을 열고 고요한 경배, 평정심, 기도 등을 통해 말씀 안에서 현존을 깨닫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 헤르만 헤세, 마더 데레사 등 널리 알려진 이들의 이야기로 우리가 어떻게 삶 속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또 그는 "하느님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곳에서 기다리신다."고 하며 인내를, "예수님 기적은 언제나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고 하며 깊은 신심을 가질 것을 강조합니다.
조용히 깊은 울림을 주는 영성 묵상집「하늘은…」을 간략히 나눔의 글에 올립니다.
하늘을 갈망하는 인간
두 발을 땅에 딛고 서 있는 모습이 암시하듯 인간은 하늘을 갈망하고, 또 하늘을 향해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끔찍한 죄악에 빠져 있더라도 인간은 하늘을 추구합니다. 하늘의 씨앗이 모든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본성적으로 하늘을 추구하는데도 제힘으로는 하늘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온 힘을 다 쏟아도 자신의 의지와 힘만으로는 하늘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늘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제목「하늘은 땅에서 열린다」가 이러한 사실을 잘 말해 줍니다. 하늘이 스스로 땅 위에서 열리는 것이지, 땅이 하늘을 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문을 열고 땅으로 내려와야 땅은 비로소 하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자는 하늘이 열리는 모습을 여러 형상과 비유를 들어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형상 가운데 가장 뚜렷한 것은 하느님이 몸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찾아오시어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고 지금도 성령 안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찾아오시는 신비입니다. 예수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열린 하늘은 기쁜 소식을 선포합니다. ‘그대는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다. 참으로 사랑받고 있다. 무한하신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다.’
하느님 사랑은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하느님은 모든 일에 계산하는 인간과 달리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셈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용서하시며, 여전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선명하게 계시하는 하늘이 열리는 사건에 대해 인간이 마땅히 취해야 하는 태도는 무엇일까요? 이 점에 대해서도 저자는 여러 형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형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신앙입니다. 곧 인간을 가까이 찾아오시는 하느님을 신뢰하며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일입니다.
우리 인간이 존재 전체로 하느님께 응답하려면 무엇보다 침묵이 요구됩니다. 오직 고요한 침묵 속에서 우리는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쉽게 알아차리며 그분께서 나지막이 들려주시는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침묵하지 않으면 그분의 현존을 느낄 수 없고 그분께서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 말을 들으시는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이 책은 현대인에게 침묵의 중요성뿐 아니라 고요를 사랑하는 방법까지 제시합니다.
이렇게 하늘이 열리고, 또 인간이 신앙으로 응답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 물음에 대해 저자는 다양한 상징으로 대답합니다. 그러나 핵심은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기쁘게 자기 집에 맞아들인 자캐오가 구원을 누린 것처럼,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체험합니다. 하느님이 우리 인간 안에 들어오시어 당신 권능으로 여러 활동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에 압도되어 하느님만 신뢰하는 신앙은 우리를 인간의 무력감에서 하느님의 전능으로 건너가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 인간은 자신한테서 벗어나 이웃을 사랑하는 힘을 얻습니다. 이기심에 가득 찬 우리 삶을 온전히 변화시킵니다. 하느님이 처음에 바라셨던 우리 자신이 됩니다.
저자는 이러한 일이 기도나 피정 등에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일상 삶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자리입니다. 구원을 누리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이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고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하느님이 누구시며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구원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깊은 영성과 특유의 필체로 간결하고 선명하게 제시합니다. 특히 복음을 ‘현대 문화’와 결합하여 선포하기에, 이 책은 현대인에게 복음 메시지를 매우 친숙하게 전달합니다.
화산동 성당에서
김선태 신부
1.하느님의 실재를 체험하다
✻나는 태어나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가
‘어머니와 자녀’는 ‘사랑과 죽음’처럼 인간의 근본 주제다. 만일 어머니 배 속에 있는 태아에게 과연 세상에 태어나고 싶은지를 묻는다면 그는 두려움에 자신의 탄생을 거부할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루어야 한다. 인간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따스하고 편안한 어머니 배 속에서 쫒겨난다. 그는 말 그대로 ‘세상에 방출’된다. 따라서 모든 탄생은 분리와 이별, 포근한 안락의 마침, 불확실성의 시작 등을 뜻한다.
또한 탄생은 어둠에서 빛으로, 좁음에서 넓음으로 건너감을 의미한다. 탄생은 완전히 다른 더 큰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탄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생명은 이 세상에 선물로 받아들여진다. 바로 이런 점에서 모든 분리와 이별은 깊은 의미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분리와 이별이 없이는 탄생이 있을 수 없고 새로운 삶을 장려하지도 않을 것이다.
시작과 마침, 탄생과 죽음은 여러 공통 요소를 지니기에 다음과 같이 비교할 수 있다. 자신의 탄생 과정을 의식적으로 경험한 태아가 탄생을 두려워하듯 성인도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을 두렵게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가 모든 것을 이겨낼 경우 현세적 삶을 기뻐하듯 성인도 죽음 이후에 하느님 사랑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경우 자신이 온전히 선물로 이루어진 존재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인에게 죽음은 두 번째 탄생이며 우리를 존재하게 하신 사랑의 하느님 곁에 영원히 머물기 위해 그분께 이르는 길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인간 존재의 원천일 뿐 아니라 완성이시다. 그렇다면 인간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나와 하느님께로 향하는 데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심오한 신비를 갈망한다
모든 인간은 집을 그리워한다. 많은 일이 가득한 이 세상은 일정 시간 동안은 흥미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우리 집은 아니다. 우리 집은 평안을 주시는 분이 계시는 곳이다. 곧 우리를 잘 대해 주시고 기다리시고 돌보시고 이해하시고 받아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분이 계신 곳이다.
비신자들은 자주 하느님의 존재가 인간의 상상으로 고안해 낸 허구라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모습대로 하느님을 창조하는 존재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의 모든 상상력을 넘어선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실 뿐 아니라 세 위격이심을 우리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요한복음 사가는 말한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주셨다.”(1,18)
적지 않은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