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 성당 2020. 2월 영적 도서 : 「나를 위한 시간」
지은이 : 노트커 볼프 신부
Notker Wolf, OSB
1940년 독일 알고이의 밧 그뢰넨바흐에서 태어나 뮌헨과 로마에서 철학과 신학, 자연과학을 공부했다. 1961년 암머 호숫가에 있는 성 오틸리엔 베네딕토 수도회에 들어 갔으며 1977년 아빠스로 선출되었다. 2000년에는 세계에 퍼져 있는 800개의 베네딕토 수도원과 25,000명의 회원을 대표하는 수석아빠스로 선출되어 로마 본부를 중심으로 세계를 다니면서 회원들을 돌보는 등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지은 책에 「Gott segne Sie! 하느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이곳 아래에서의 삶을 위한새로운 생각들」, 「Regeln zum Leben 삶의 규칙: 현대인을 위한 십계명」, 「Erfüllte Zeit 충만한 시간: 삶을 위한 용기」, 「Worauf warten wir?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독일을 위한 이단적인 생각들」, 「Die Kunst, Menschen zu führen 사람을 인도하는 기술」 등이 있다.
옮긴이 : 전헌호 신부
나눔의 글
많은 업무로 끌려다니다시피 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시간의 의미와 활용법, 시간을 마음대로 다스리는 법과 그리스도교 정신에 따라 사는 자세를 일깨우는 묵상서로 모두 24편의 글을 소개합니다.
많은 업무에 끌려 다니다시피하며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스트레스와 부산함 속에서 과연 고요함을 찾을 수 있을까? 아빠스는 이웃과 함께 있는 시간, 기도하기 위한 시간 등을 마련함으로써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할 수 있고, 또한 시간을 창조적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 학장 전헌호 신부님이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베네딕토 사상과 성경 말씀, 여러 사상가의 말씀을 토대로 한 이 책은 ‘삶의 스트레스와 부산함, 바삐 움직이는 속도 속에서 고요함을 찾을 수 있을까? 외부에서 엄습해 오는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많은 일을 하면서도 내적 평안과 고요함을 지니는 것이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더욱 의미 있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을까?’ 등과 같은 물음을 던지는 이들에게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고 관리하는 비결, 무엇보다 자신에게 여유롭고 한가한 시간을 허락하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저자는 바쁜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고요한 시간을 마련하고 그 시간을 누리라, 이웃과 함께 있는 시간을 마련하라, 기도하기 위한 시간을 내라고 권합니다. 이런 시간을 마련함으로써 우리는 서서히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할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충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현재의 순간에 충실히 집중하며, 시간에 끌려다니지 않고 시간을 창조적으로 다스리도록 초대합니다.
머리말
수석 아빠스인 저는 세계 6대주에 퍼져 있는 800개의 수도원과 관계해야 합니다. 저는 관리자로서 많은 일과 만남을 수행해야 하고, 다른 한편 수도자로서 수도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물음은 제게도 해당됩니다. 현대 생활이 제공하는 이렇게 엄청난 스트레스와 부산함 속에서 고요를 찾을 수 있을까? 외부에서 엄습해 오는 이 모든 압박 속에서 주도적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날에는 관리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본질적 삶을 위한 시간을 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제 시간’은 다른 사람과 함께하기 위한 것이거나 기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하던 일을 멈출 수 있습니다. 하던 일을 그대로 두고 일어서서 ‘이제는 다른 것이 더 중요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기도할 때는 하느님이 중요하고, 대화할 때에는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코헬렛의 지혜는 오래된 것이지만 여전히 옳습니다. 구약성경의 설교자가 말한 이러한 지혜는 제게 언제나 길잡이가 됩니다. 어떤 사람이 나눌 말이 있어 찾아오면 저는 시계를 보지 않습니다. 그가 시간에 쫒기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그는 온전히 머물게 됩니다. 그가 저와 함께 있는 동안은 그의 시간입니다. 이는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시간이 인간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신적 차원을 지니게 됩니다.
예수님은 시간을 잘 다루셨다는 점에서 제게 좋은 모범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기도하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마련하셨습니다. 제자들과 겐네사렛 호숫가를 거닐 때에는 제자들을 위해 온전히 할애하셨습니다. 엠마오 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는 예수님이 걱정거리를 털어놓은 사람들 곁에서 온전히 함께하신 시간에 대한 것입니다.
때때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필요로 할 경우에는 제자들도 예수님 곁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피로에 지치셨을 때 베타니아에 있는 친구 집에 가 쉬시며 원기를 회복하셨다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바리사이들이 압박해 올 때 예수님은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셨습니다. 루카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우리 삶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도 거리를 유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유 말씀을 통해 어떤 부유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서방 수도회의 창시자인 베네딕토 성인만큼 인간의 처지를 고려하여 현명하게 시간을 관리하는 질서를 만들어 인류의 시간 문화에 기여한 사람도 없습니다.
수도 생활의 시간 관리 방법은 오늘날 세상 삶에도 영감을 주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좋은 영향을 줍니다. 수도 생활에서 시간 관리 방법은 내면의 리듬과 조화를 존중하고 전례와 자연을 따르며 낮과 밤의 흐름과 절기로 구성된 한 해의 흐름에 큰 가치를 둡니다. 이 모든 것이 현실 속에서 진행됩니다.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지금 시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제한 된 시간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의미 있고 올바르게 살아갈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시간을 절약하겠다고 서두르는 사람은 오히려 시간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고 모두 천천히 살아가는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올바른 해결책은 아닙니다. 우리는 현대의 속도에서 완전히 벗어나 살 수 없지만, 시간의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우리 시간’을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놓지 않으면 삶은 가치를 잃고 맙니다.
이 책은 자신에게 시간 허락하기, 여유 갖기, 자신의 시간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기와 같은 주제를 다룹니다.
“한가한 시간을 허용하자. 삶은 자신의 것이다!” 노트커 볼프
1. 기쁘게 살기 위해 태어났다
저는 그리스도교가 많은 윤리를 필요로 하지만 윤리에 대해 많은 말을 할 필요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니체가 “그리스도인은 좀 더 명랑할 필요가 있다.”고 한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당됩니다.
우리는 행복하고 기쁘게 살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지 고통을 겪고 불행해지려고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태어나는가?”라는 질문에 아무도 “슬퍼하기 위해.”라고 대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삶에 대해 기쁨을 간직하셨습니다.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이 기쁨은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두려워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난날의 수도원들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윤리는 지속적 감시와 통제가 일반적이었고, 이것이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순명을 굴종으로 이해했거나 이 둘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 유치하고 미성숙한 시대 흐름이 원인이었습니다.
수도 생활 전통의 시각은 이와 매우 다릅니다. “언제까지 다른 사람들한테만 관심을 가지고 자신한테는 소홀할 생각인가? 자신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 사람이 누구를 돌볼 수 있겠는가? 먼저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가 12세기에 자신의 제자이자 나중에 교황 에우제니오 3세가 된 피사의 베르나르도에게 한 말입니다.
베르나르도는 인간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네딕토회의 영성을 깊이 체득하고 살았던 그는 수덕적 삶의 중요성과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도 중요했지만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중요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저술한 수도규칙은 게으름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삶에 대한 기쁨은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성인은 수도규칙 서문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수도자는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 수도 생활 초기에는 힘들게 느껴지고 길도 좁아 보이겠지만, 수덕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의 영혼은 밝게 깨어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길을 어쩔 수 없이 가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걸어간다.”
베네딕토 성인이 수도자들에게 수덕의 길로 나아가라고 권고한 것은 완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덕 생활을 하라는 것과 완벽을 요구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