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KJH 편집111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5-01-04 18:03:47    조회 : 54회    댓글: 0

현재 우리 인류가 저지르고 있는 환경 파괴 및 온갖 잔인한 행동을 보면 우리는 스스로 갈 길을 재촉하는 동물처럼 보인다. 지질시대를 나타내는 ‘세epoch’ 그 길이가 대개 300만 년이 넘는 법이고, ‘홀로세The Holocene’에 접어든지 이제 겨우 1만 1500년 남짓인데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지질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르기로 했다. 새로운 ‘세’를 설정하려면 지층의 특징이 이전과 또렷하게 구분돼야 한다. 이건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다. 우리 지층에는 엄청나게 많은 플라스틱과 닭 뼈가 켜켜이 쌓여 있을 테니 말이다.

138억년 우주 역사를 1년으로 환산하면 1)지구가 탄생한 46억 년 전은 얼추 9월 1일이었다. 지구에 2)생명이 처음 나타난 것은 10월 초였고, 3)인류속의 출현은 12월 31일밤 11시 40분쯤 되어서야 일어났다. 현생 인류인 4)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은 길게 봐야 25만년 전이니 11시 59분이 지난 후였다. 우리가 이른바 5)농업혁명을 일으키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때는 자정을 불과 20초 앞둔 시점이었고, 문화 혁명 6)르네상스자정 1초 전에 일어났다.

2012년 제13회 카셀 도쿠멘타(Kassal Documenta) 초대 작가 문경원, 전준호는 ‘미지에서 온 소식’이라는 예술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같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나는 그 책에 첫 장을 쓰는 영광을 얻어 ‘인간실록편찬위원회’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인간이 멸종하고 더불어 예술도 사라진 먼 미지의 미래에 우리 못지않게 지적인 동물이 탄생해 지구의 역사를 실록으로 편찬하는 위원회의 모습을 그렸다.

최재천 <생태적 전환, 슬기로운 지구 생활을 위해서> 중에서

인간실록편찬위원회는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모기와 티 렉스의 실록도 아직 편찬되지 않았는데 기껏해야 1분도 채 살지 못하고 사라진 미물에 관한 실록을 굳이 만들어야 하느냐는 주장과 거의 순간에 살다 간 존재이지만 지구에게 저지른 만행으로 보면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 고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논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짧고 굵게 살다 간 우리의 죄목은 굵고 길었다.

우리 생물학자들은 요즘 쓸데없는 내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과연 살아온 시간만큼 생존할 수 있을까? 나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턱없다고 답한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 등 지금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온갖 환경 파괴의 현장을 지켜보노라면 인간은 스스로 갈 길을 재촉하는 동물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군림은 앞으로 300년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2016년 4월 26일 하라리가 방한하여 열린 대담에서, 나는 300년이 아니라 이번 세기 안에 인류가 멸종한다 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인류세의 기원을 농업 혁명의 시작점으로 잡는다 해도, 만일 하라리나 나의 예측이 들어맞으면 인류세는 겨우 1만 년 남짓 이어진 역대 가장 짧은 지질시대가 될 것이다. 인간실록편찬위원회는 끝내 인류세를 허구로 규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으며, 지혜의 시기이자 어리석음의 시기였다. 믿음의 시대이자 불신의 시대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을 향해 가고자 했지만 거꾸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끝난다.

‘요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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