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 영생의 꿈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25-02-28 11:48:17    조회 : 53회    댓글: 0

이 글은 <가톨릭평론> 46호(2024년 겨울, 우리신학연구소)에 실린 글입니다.

돈에 대한 사랑은 모든 악의 뿌리이니 나쁜 가지처럼 다른 정욕들을 키우며 그 가지에서 피는 꽃들이 시들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정욕들을 끊어 버리고 싶은 이는 그 뿌리를 끊어야 한다. 탐욕이 남아 있다면 가지들을 자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가지들을 자른다 해도 즉시 자란다.1)

대 그레고리우스가 틀을 잡은 칠죄종에서 돈에 대한 욕망은 ‘인색avaritia’이라 불리지만, 이전 수도승 전통에서는 ‘탐욕pleonexia’과 ‘인색philargyria’을 구분한다. 전자는 돈이나 부를 더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의지를 말하고 후자는 돈, 물질적 부에 대한 사랑을 가리킨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 둘은 내 것 아닌 재물을 탐하는 것과 이미 손에 넣은 재물을 쥐고 있으려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대 그레고리우스는 “그의 배 속은 만족을 모르니 그는 제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네”(욥기 20,20)라는 성서 구절을 풀이하면서, 탐욕과 인색이 사람의 마음속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악한 자의 배 속은 탐욕이다. 죄스런 욕망으로 집어삼키는 것들을 모두 그 속에 담아 두기 때문이다. 갈망하는 것들을 채울 때 그 욕망이 채워져 편안해지는 게 아니라 좁아진다. 이는 마치 태울 장작을 받아들이면 불길이 더 일어나는 것과 같다.... 탐욕스런 자는 그 욕망에 사로잡혀 원하는 것들을 쌓아 두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많이 모으면, 다시 말해 그의 욕망의 배 속이 다 채워지면 오히려 고통을 겪는다. 쌓아 둔 재물을 어떻게 지켜 낼까 노심초사하는 동안 배부름 자체가 그를 괴롭히기 때문이다.2)

요컨대 탐욕의 배가 채워지면 인색 때문에 나눌 줄 모르고 더 고통을 겪는다는 이야기다.3) 이렇게 탐욕과 인색은 구별되는 모습을 갖고 있지만 둘이 서로 밀접하게 움직이므로 크게 하나로 본다.4)

한국인의 삶의 의미, 물질적 풍요?

2021년 초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행한 여론 조사 결과가 공개되어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을 비롯해 17개 선진국 성인 1만 9000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한국인은 조사 대상국 가운데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삶의 의미 중 첫째로 꼽았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나라에서 이 설문에 가족, 직업, 물질적 풍요순으로 답한 반면 한국인은 물질적 풍요, 건강, 가족순으로 대답했다는 것이다. 한국 응답자들이 물질적 풍요를 삶의 가장 큰 가치로 꼽으며 그 이유로 댄 것은 호구지책, 내 집 마련에서부터 가족 부양 자금, 부채 상환, 오토바이나 여행 같은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여유 자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했다.5)

물질에 매달리는 한국인들의 의식은 우리 경제 구조가 갖는 취약성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이 이룬 ‘경제적 기적’으로 인도보다 낮았던 1인당 소득이 유럽 여러 국가와 비등한 수준에까지 이르렀지만, 폭넓은 복지국가제도를 마련하지 않았고, 대가족이 질병과 실업 등에 대해 보험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이렇게 재분배 정책이 약하고 강한 복지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보험 메커니즘으로 기능하던 대가족 제도가 해체되면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크게 늘어났다. ‘세계 부 데이터북Global Wealth Databook 2023’(UBS) 통계를 보면 한국은 순자산 100만 달러 이상의 백만장자 수가 세계에서 열 번째로 많은 나라다.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부의 53.3퍼센트를 가지고 있으며, 상위 1퍼센트가 전체 부의 22.3퍼센트를 가지고 있다.6)

한국인들이 물질적 풍요를 선망하는 것은, 이러한 빈부격차가 자기 부를 과시하는 경향이 강한 우리 문화와 결합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근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엘사’가 흔한 별명으로 사용된다는데, 여기서 엘사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인공이 아니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짓는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뜻한다. ‘휴거지’(LH 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와 거지를 합성한 형태), ‘빌거지’(빌라와 거지를 합성한 형태)라는 말도 있으며, 전세에 사는 아이는 ‘전거지’, 월세 사는 아이는 ‘월거지’라 불리기도 한다. 이 밖에도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월급 액수에 벌레 충蟲을 합성해 200만 원이면 ‘이백충’, 300만 원이면 ‘삼백충’이라는 말도 생겼다. 또 유명 일본 애니메이션의 제목에서 따온 ‘기생수’는 ‘기초생활수급자’를 의미한다.7)

아이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빈자 혐오는 자기 경제력을 과시하는 어른들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며, 이는 그대로 탐욕이라는 악덕 성격, 즉 소유를 존재와 연결하는 모습과 관련된다.

소유욕: 에고의 탐욕

글의 첫머리에서 보았듯이 에바그리우스는 탐욕을 모든 악의 뿌리라고 본다. 이는 바오로 서간(1티모 6,10)에서 온 것이다. 반면 대중 라틴어 성경(불가타)의 지혜서 10장 15절은 “모든 죄의 시작은 교만이다” 라고 한다.

어찌 보면 교만superbia은 주체와 관련되고 탐욕은 그 주체의 행위와 연관된다. 다시 말해 교만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하느님이 되려고 하는 것이며, 탐욕은 그 피조물이 주인이 되어 소유하려고 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를 특유의 사목적 언어로 이렇게 표현한다.

"이 세상에 재물을 쌓아 두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들이 그 재물을 관 속에 넣어 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가져가지 못합니다! 이 악덕의 어리석음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물질과 맺는 소유의 관계는 단순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땅은 사실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방인이자 순례자로 땅 위를 지나갑니다."8)

하느님을 떠난 사람(교만)이 자기 존재의 근거를 소유에서 찾는 것이 탐욕인바, 이는 우리가 물질과 맺는 관계가 왜곡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소유한 물건의 주인일 수 있으나 반대로 그것들에 소유되어 버리는 것이다.9)

2002년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가오나시顔無し’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황금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이 캐릭터는 돈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을 족족 잡아 삼키는데, 배를 채워 비대해질수록 더 배고파한다. 가오나시라는 이름 자체가 ‘얼굴이 없다’는 뜻이며 이는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 존재를 잃어버린다는 암시를 담고 있다.


먹을수록 배가 고파 급기야 사람들까지 삼켜버린 가오나시. (이미지 출처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동영상 갈무리)
에크하르트 톨레는 끝없이 소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을 ‘동일화identification’라는 개념을 빌어 설명한다. ‘동일화’라는 말은 ‘이뎀idem’(‘같다’라는 뜻)이라는 말과 ‘파체레facere’(‘만들다’라는 뜻)를 합한 형태로 내가 어떤 것과 자신을 동일시하면 나는 그것을 ‘나’와 같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에 나의 자아의식을 부여하기 때문에 그것은 나의 ‘정체성’ 일부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기본적으로 정체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물질이다.10)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 즉 소유 개념은 에고가 자신에게 견고함과 영속성을 부여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허구다. 그러나 소유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깊은 내면에는 또 다른 더 강한 충동이 있다. ‘더 많이’를 향한 욕구가 그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욕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어떤 에고도 ‘더 많이’를 향한 욕망 없이는 오랜 기간 지낼 수 없다. 그러므로 에고를 훨씬 활력 있게 만드는 것은 소유보다도 오히려 욕망이다. 에고는 ‘갖고 싶어 하기’보다 ‘더 많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 따라서 소유가 주는 얕은 만족감은 언제나 ‘더 많이’ 원하는 욕망으로 대체된다.”11)

그렇다면 이렇게 끝없이 소유를 추구하는 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탐욕은 긴 노년과 손노동에 있어서의 무능력, 미래의 굶주림과 질병, 궁핍의 고통 그리고 남들에게 생필품을 받는 데 따르는 수치심을 떠오르게 한다.”12) 굶주림과 질병, 궁핍과 수치심 등 나의 한계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막의 수도승들로 하여금 물질을 추구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에바그리우스의 시대에서 1600년을 격한 지금, 돈과 물질은 말 그대로 물신物神이 되었다. 은행의 전산망에 데이터로 기록된 돈은 사멸하지 않아 영생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며, 거의 모든 인간관계를 매개하는 돈은 그것을 가진 이들에게 무한대에 가까운 능력을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내려놓음과 베풂

죽지 않으려는 인간이 물질과 같은 대상에 나를 주어 영생을 꿈꾸는 것이 탐욕이라고 할 때, 탐욕의 반대편에는 죽음을 받아들임, 나를 내려놓음이 있다.13) 이것이 영적 해결책이라고 한다면, 제도적으로 ‘노화해 결국 죽는 돈’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 물건의 가치를 보관하는 돈이, 유산으로 상속되는 방식으로 영원히 존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음식처럼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줄어들어 언젠가 소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14)

칠죄종의 한문인 "칠극七極"은 탐욕에 대한 해법으로 ‘베풂’을 제시한다.15) 여기서 ‘베풂’은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나와 다른 이가 둘이 아니라는 점을 아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한몸 또는 공동체, 그리스도 교가 말하는 하느님나라에 대한 꿈과 통하는 이야기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관계는 위장과 신체 여러 기관의 관계와 같다. 위장은 음식을 소화시켜 제가 필요한 것을 직접 취하고 그 나머지는 신체의 다른 기관에 나누어 준다. 그래서 위장이 튼튼하면 신체가 다 건강하다. 만약 다 간직해 두고서 나눠 주지 않는다면 위장은 남아도는 근심이 있고 신체는 부족한 걱정이 있게 되어 둘 다 병들고 만다. 부족한 병은 병이 온몸에 있고 남아도는 병은 그 병이 가운데에 있으니 어느 것이 더 크겠는가?"16)

1)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여덟 악령", 7쪽.
2) 대 그레고리우스, "욥의 도덕", XV, 26쪽.
3) 황인수, "칠죄종, 일곱 가지 구원", 성바오로출판사, 2019, 92쪽 참조.
4) 백자 막시무스, "사랑의 백단장", III, 18쪽 참조.
5) 곽노필, '삶의 의미 어디서 찾냐 묻자...한국인만 이걸 1위로 꼽았다', <한겨레>, 2021.11.23 참조.  참고로 이 조사에서 미국인 응답자 15퍼센트가 종교를 삶의 의미라고 대답한 반면, 한국인 대상자 가운데 1퍼센트가 같은 항목을 삶의 의미로 꼽았다.
6) 잉그리드 로베인스, 김승진 옮김, "부의 제한선", 세종서적, 2024, 12-13쪽 참조.
7) 전소영, '[신(新)주거 카스트의 그늘] ‘휴거지·빌거지·엘사’ 빈자 혐오에 물든 아이들', <투데이 신문>, 2020.2.10 참조.
8) 교종 프란치스코, 2024년 1월 24일 일반 알현.
9) 교종 프란치스코, 위의 글 참조.
10) E. 톨레, 류시화 옮김,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연금술사, 2013, 63쪽 참조.
11) 위의 책, 77쪽.
12)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허성석 역주, "프락티코스", 분도출판사, 2011, 66쪽.
13)  “이러한 병을 치유하기 위해 수도승들은 극단적이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제안합니다. 즉 죽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프란치스코 교종, 앞의 글)
14)  박성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길', (이시백 등,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 철수와 영희, 2012), 99쪽 참조.
15)  “탐욕은 손에 단단히 쥔 것과 같아서 은혜로 이를 푸니, ‘해탐’을 짓는다(貪如握固 以惠解之 作解 貪)”, 판토하, 정민 옮김, "칠극, 마음을 다스리는 7가지 성찰", 김영사, 2021, 205쪽.
16)  위의 책, 274쪽.

황인수

성바오로수도회 사제. 본지 편집위원. 책읽기와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며 책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사는 것과 배우는 것, 노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믿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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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s://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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