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 성당 2020. 11월 영적 도서 「사막의 안토니우스」

작성자 : 글라라    작성일시 : 작성일2020-11-30 17:15:07    조회 : 195회    댓글: 0

세마 성당 2020. 11월 영적 도서 사막의 안토니우스

지은이 :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295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비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했고, 318년에 부제로 서품되어 알렉산드리아 대주교의 비서가 되었다. 325년 부제로서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하여 배후에서 아리우스 이단을 거슬러 괄목할 만한 활약을 했다. 328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45년간의 주교 재임 기간 동안 교회에 큰 해악을 끼친 아리우스 이단을 거슬러 치열하게 싸웠다. 그 결과 다섯 차례에 걸쳐 17년간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유배 생활 중 세 번이나 사막의 수도승들에게 피신했고, 이로 인해 사막과 그곳의 훌륭한 수도승들을 알게 되었다. 정통 교리의 수호자 아타나시우스는 378년에 사망했다.

 

지은이 : 안토니우스

사막 교부. 수도 생활의 시조

 

옮긴이 : 허성석 신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사제이다. 로마 성 안셀모 대학교에서 수도승 신학을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왜관수도원 수련장과 대구 가톨릭 신학원 강사를 거쳐, 미국 뉴멕시코 주의 성 베네딕도회 사막 수도원에서 3년간 수도생활에 전념하고, 200911월 귀국 후 성 베네딕도회 화순수도원(왜관수도원 분원) 원장, 분도출판사 사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코이노니아편집장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본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성 베네딕도 규칙: 번역·주해』 『중용의 사부, 베네딕도의 영성』 『수도 영성의 기원등을 짓고, 사막 교부, 이렇게 살았다』 『프락티코스』 『마음의 기도』 『안티레티코스』 『사막의 안토니우스』 『그노스티코스』 『사막 교부들의 금언』 『공동생활을 위한 권고』 『사막에서 피어난 복음을 우리말로 옮겼다.

 

나눔의 글

 

그리스도교 문학의 중요한 고전이자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 안토니우스의 생애

3세기 중엽,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깊은 사막으로 가서 죽을 때까지 은수생활을 한, 성 안토니우스의 삶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사막에서 수도 생활을 방해하는 온갖 유혹에 맞서 싸우며 굳건히 한 길을 간 그의 삶은, 오늘날 세속의 유혹에 흔들리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유혹에 맞서고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 모범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무덤에서, 사막에서, 안토니우스가 악령을 물리치는 생생한 경험이 쓰여진 이 책은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가 쓴 안토니우스의 생애와 안토니우스의 금언’ 38개와 안토니우스의 서간’ 7통을 담고 있어 위대한 사막 교부인 안토니우스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줍니다. 양심의 순교자 안토니우스의 생애만을 요약하여 나눔에 글에 올립니다.

 

 

서론

 

아타나시우스와 안토니우스의 생애

 

아타나시우스가 안토니우스의 생애 저술할 당시 그는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에는 아리우스라는 사제에 의해 주창되고 확산된 아리우스 이단이 창궐했다. 그들은 예수의 신성을 부정했는데, 예수는 거룩하고 위대한 인간일 뿐 하느님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4세기 내내 교회에 큰 해악을 끼친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싸웠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아리우스 이단은 니케아 공의회(325)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381)에서 단죄되었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성자는 성부와 같은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선언했다. 아타나시우스는 부제 신분으로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했고, 얼마 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 후 373년에 죽을 때까지 46년 동안 알렉산드리아에 머물며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그는 주교 재임 기간의 절반을 유배로 보내야 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아리우스파를 지원했던 황제들은 그를 먼저 트리어Trier2년간, 그다음 로마로 5년간 유배를 보냈다. 그러고서 그들은 아타나시우스에게 사형선고를 내려 그를 죽이려 했다. 35628일 밤, 황제의 군대와 아리우스파 무리가 알렉산드리아의 산타 테오나Santa Theona 성당을 포위했다. 그때 신자들과 기도하고 있었던 아타나시우스 주교는 성당에서 탈출하여 사막에 있는 수도승들에게 피신했다. 계속된 박해에 그는 세 번씩이나 사막으로 피신해야 했다. 이렇게 그는 사막과 거기서 매우 훌륭히 생활했던 수도승들을 알게 되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우스가 죽으면서(356117) 물려준 외투(생애91,8 참조)를 지니고 있었으며, 수도승생활이 교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주교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늘 수도승생활에 큰 관심과 호의를 보였다.

 

유배지에서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우스와 관련된 증언들을 모아 성인의 생애를 통해 수도승생활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양심의 순교자(생애47,1 참조)안토니우스의 생애를 이야기하고 있다.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기술하면서 그는 하느님의 사람(vir Dei)의 모범과 수도승생활의 이상을 소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바로 이것을 소개하는 최초의 문헌이자 니케아 신앙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문헌이다.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공의회의 교회와 함께 그리스도를 참된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된 하느님으로 선언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옹호하면서 그분의 육화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가능해진 神化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예로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제시하고 있다.

안토니우스는 사막에서 싸운 하느님의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고, 훌륭한 전투를 치러 마침내 존재 전체가 은총으로 변모되어 거울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이 성인의 생애에 관한 진술이야말로 니케아 신앙에 대한 가장 훌륭한 방어다. 만일 아리우스파들의 주장대로 그리스도께서 본성으로써가 아니라 참여로써 하느님이셨다면, 인간 안에 절대 하느님과의 유사성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안토니우스의 생애는 수도승생활의 모델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인 삶의 모범이자 신앙과 사랑이 육화한 모범이다. 이 작품은 단지 수도승들만을 위해 쓰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참된 하느님이요 참된 인간으로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우스를 개인적으로 알았고, 성인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때 이 작품을 썼다. 따라서 이 생애의 기본 윤곽은 역사적 사실에 충분히 부합하다고 본다. 아타나시우스는 자기 작품을 서방 수도승들에게 바치면서 그들이 이집트 수도승들을 본받고 또 이 작품을 널리 퍼뜨려 다른 이들도 읽게 하라고 권고한다.

 

이는 그 사람들도 수도승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주님이요 구세주께서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사람과 끝까지 당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신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었다. 아타나시우스의 권고는 즉시 받아들여졌다. 얼마 후 안토니우스의 생애는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그 후 새딕saidic(고대 이집트 방언), 아르메니아어, 시리아어, 에티오피아어, 조지아어 번역본들이 나타났다. 이 판본들의 방대한 확산은 안토니우스가 참으로 수도승들의 사부였고 안토니우스의 생애는 실제로 이야기 형태로 된 은수생활의 규칙이 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안토니우스의 여정

 

안토니우스의 생애는 매우 역동적이라는 점이 그 특징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의 삶, 수도승생활, 안토니우스의 생애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여정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우리에게 일련의 연속적 단계를 제시하고 있다. E.T. Bettencourt베텐코트는 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네 단계로 나눈다. 안토니우스는 매번 더 큰 고독을 찾아 깊이 들어간다.

1단계: 안토니우스는 열여덟 살에서 스무 살 사이(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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