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 성당 2022년 7월 영적도서 :「회심하는 인간」(성서와 인간9)개정판

작성자 : 글라라    작성일시 : 작성일2022-08-25 00:07:38    조회 : 190회    댓글: 0

세마 성당 20227월 영적도서 :회심하는 인간(성서와 인간9)개정판

지은이: 송봉모 신부

예수회 신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원에서 교수 자격증을 받고,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에서 신약주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약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에 성서와 인간 시리즈, 성서 인물 시리즈, 요한복음산책 시리즈, 예수 시리즈와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을 위한 The Lord Calls My Name, Wounds and Forgiveness등이 있다.

 

 

나눔의 글

 

 

하느님의 뜻은 인간과 세상을 돌보시는 것이지,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지, 병들고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23)

 

하느님의 시선은 죄에 있지 않고 넘어진 인간의 일어섬에 있다고 송신부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어떤 비극적 처지에서도 인간을 구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시며, 그러기에 하느님이 구현하시는 정의는 새롭습니다. 하느님은 용서의 마음으로 죄지은 자를 꾸짖으시고 벌을 주기도 하시지만, 그것은 응징이 아니라 교훈적인 벌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가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미 우리를 용서하시면서 우리가 어서 통회하도록 꾸짖고, 위협하고, 고발할 뿐이다.”(82)

 

주님이 용서하신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용서 앞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서 스스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느님께 반항하는 가운데 우리 자신이 바뀌어 갑니다. 우리 자신이 바뀌면 나중에는 정말로 우리가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을지 보장할 수 없습니다.”(60)

 

그러기에 영적 합리화를 하지 말고 정직하게 말씀드리며 희망을 갖고 울부짖으면 주님이 귀 기울여 들으시고 어루만져 주는 평화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며 송신부님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고해성사는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에 대한 이성적 깨달음(解悟)을 내면적 깨달음(得悟)으로 만드는 길이다. 고해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용서를 체험한다는 것은 가장 하느님 자녀답고 그리스도인다운 체험이다.”(87)

 

오늘날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성사로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올바른 성찰과 통회 없이 형식적으로 고해성사를 보기 때문이며, 하느님의 자비 앞에 선다는 마음보다 하느님의 심판 앞에 선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고 진단하십니다. 또한 회심하는 인간은 자기 죄와 허물에 지나치게 주목하기보다는 하느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용서에 더 주목하며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112)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양심 성찰을 하는 이유와 성찰 방법을 자상하게 소개하여 우리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십니다.저는 송신부님 애독자(자칭)인데 글씨 크기가 시원스럽게 커지고 내용도 보충하신 개정판이라서 시력이 안 좋은 저는 한결 읽기가 수월했습니다. 정성껏 요약한 글을 나눔의 글에 올립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묵시 21,5)

 

 

 

1

회심의 영성과 탄원 기도

 

 

돌아가리라, 집으로 돌아가리라.

밭과 동산이 잡초에 묻혀있을 터인데

내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내 혼을 육신의 종으로 부려왔다지만

언제까지 슬퍼하고 시름하고 있으랴?

지난 일 아무리 나무라도

고칠 수 없을지니

이제 오는 일들만은 힘을 다 바쳐

잘 할 수 있으리라.

빗나간 길 걸어갔으나 멀리는 안 갔어라.

어제의 길은 글렀으나

이제 가는 길은 바르도다.

묻노라 길손아!

앞길 얼마나 남았느냐?

멀리에 사립문 보이니 반가워 설레며

발걸음 달려가네.

-도연명 <귀거래사歸去來詞> 중에서

 

 

살아 있는 생명체는 무릇 때가 되면 자기 존재의 뿌리로 돌아간다. 마치 나뭇잎이 떨어지면 흙으로 되돌아가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우리 존재의 마지막 포용자이신 하느님께 돌아가리라. 그것은 존재의 근거자이신 하느님께 귀의歸依하는 것이요,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께로 귀명歸命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 안에 생명의 원천이 없기에 늘 죄를 짓고 넘어진다. 하지만 아침이면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다시 힘있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돌아갈 곳이 있고,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하느님께 돌아가는 인간, 곧 회심하는 인간을 성경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특히 시편 130편을 두고 생각해 보겠다. 굳이 시편 130편을 택한 까닭은 이 시편이 참회 예절에 자주 사용될 뿐만 아니라 이 시편만큼 죄의 곤경에서 일어나고자 울부짖는 인간의 모습과 하느님 자비에 대한 절대적 의탁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이 없기 때문이다.

 

야훼여, 깊이에서부터 당신을 부르오니

주여, 나의 소리를 들어주소서.

자비를 청하는 나의 울부짖음을

귀 기울여 들으소서.

 

야훼여, 당신께서 죄를 살피신다면

주여, 그 누가 감당할 수 있으리까?

그러나 당신 안에는 용서가 있으므로

우리는 당신을 경외 하나이다.

 

나는 희망하나니, 내 영혼은 희망하나니

나는 당신의 말씀을 기다리나이다.

내 생명은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더 주님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이스라엘이여, 하느님께 희망을 두어라.

그분께는 충실한 사랑이 있고

넘치는 구속이 있기에

그분이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하시리라.”(시편 130,1-8 필자 역)

 

시편 130편은 통곡의 시편이다. 죄의 나락에 떨어져 울부짖으면서 다시 일어나려고 애쓰는 한 인간의 절규다. 이 시의 주인공은 지은 죄 때문에 마음 아파 울부짖고 있지만, 그의 기도 초점은 자기 죄가 아니다. 그는 자기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상술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 있는 한 주님 앞에서 끊임없이 죄를 지을 것임을 그는 알고 있다. 그러니 어찌 지은 죄에다 초점을 맞추랴.

 

정말 중요한 것은 넘어질 때마다 절망하지 아니하고 일어나서 생명의 하느님께 울부짖으며 돌아가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살며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 당신께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돌아와서 다시 구원과 복음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죄 없는 자들이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들이다. 죄인은 죄인이지만 용서받은 죄인이요, 앞으로도 계속 용서받을 죄인이다.

 

이제 성경 본문 한 구절 한 구절을 묵상하면서 회심의 영성을 우리 안에 내면화하도록 하자.

 

야훼여, 깊이에서부터 당신을 부르오니

주여, 나의 소리를 들어주소서

자비를 청하는 나의 울부짖음을

귀 기울여 들으소서(1-2)

 

시편 69,2-3을 보면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목까지 물이 들어찼습니다. 깊은 수렁 속에 빠져 발 디딜 데가 없습니다라고 울부짖고 있다. 같은 시편 15절을 보면 진창에서 저를 구출하소서, 제가 빠져들지 않도록, 제 원수들에게서, 물속 깊은 데에서 제가 구출되기 하소서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시편 69편에서 말하는 심연은 원수들에게 둘러싸여서 죽을 위험에 놓여있는 주인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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