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성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상임대표가 지난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양재성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상임대표가 지난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녹색 순례자-생태목회자, 환경운동가의 35년 영적순례일지’(이야기).

양재성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상임대표가 최근 펴낸 에세이집이다. 지난 35년 저자가 교회와 세상을 무대로 펼쳐온 녹색운동의 발자취와 종교와 환경 등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

1990년 1월 경남 함양의 함양제일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한 그는 이듬해 교회에 환경부를 만들었고 3년 뒤에는 함양군 내 교회 20여 곳을 묶어 함양군기독교환경운동연대를 조직했다. 지리산 풀뿌리 시민 연대운동의 모태 격인 ‘지리산열린연대’(현 지리산생명연대) 창립도 이끌었다. 1999년 이 단체 설립 때 도법 스님이 상임대표, 그가 사무국장을 맡았다. 지리산열린연대는 지리산댐 건설 반대 등 지리산 살리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 2000년에는 국책 사업이었던 지리산댐 건설 백지화 결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그는 2005년부터 9년 동안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이하 기환연) 사무총장을 지냈고 2019년에는 상임대표를 맡아 6년째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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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양 대표를 만났다. 신학대 시절부터 시를 좋아했다는 그는 이번에 자작시와 시 단상을 모은 책 ‘마침내 우린 봄이 되고 있다’(비채나)도 펴냈다. 그는 2016년부터 지인들에게 매일 시 단상을 에스앤에스를 통해 보내고 있는데 그간 배달한 시만 3천수 이상이다.

‘녹색 순례자’ 표지.
‘녹색 순례자’ 표지.

기환연의 뿌리는 1982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환경운동 단체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초대 이사장 함세웅 신부)이다. 환경운동연합 등 민간 환경단체들보다 10여 년 전에 태어났다. 현재 약 250개 교회가 가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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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에서 기환연 위상은 예전보다 매우 높아졌어요. 설립 초기만 해도 여러 기독교 사회단체 중 하나로 취급받았지만 지금은 핵심 단체가 되었죠. 제가 사무총장에 취임할 때도 기환연 목회자에 대해 ‘운동권 아니냐’는 시선이 있었지만 지금은 적어도 교계의 지도자급 인사들은 환경 문제를 시대적 과제로 받아들입니다.” 그는 성서나 신앙 측면에서 봐도 기독교인이 환경 운동을 거부하기 힘들다고 했다. “하느님이 창조주라는 것을 고백하는 게 기독교 신앙인데요. 그렇다면 하느님이 창조한 세계를 잘 보존하고 지키는 게 기독교인의 의무이죠.” 그는 사무총장 시절 ‘녹색교회 세우기’ 캠페인을 펼쳐 교회 120곳을 건축이나 에너지 사용, 기도나 설교, 교회 조직과 재활용 등에서 생태를 먼저 생각하는 녹색교회로 세우기도 했다.

요즘 기환연이 초점을 맞추는 활동에 관해 묻자 그는 “기후위기에 교회가 어떻게 능동적으로 답을 할 것인지 각 교단과 소통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찾는 일”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기장, 감리교, 예장통합, 성공회, 복음교단 등 여러 교단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가 2040년까지 탄소 중립을 완성한다는 선언을 했는데요. 기환연과 감리교 생태목회연구소에서 구체적인 실천 로드맵을 교단 환경조직과 함께 만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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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단 소속인 그는 2년 전 생태목회연구소를 만들어 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감리교단이 오는 4월과 10월 예정된 지역별 연회와 총회를 각각 ‘녹색 연회’와 ‘녹색 총회’로 치르고 2025년과 2026년 2년 동안 ‘녹색감리교회 세우기’ 캠페인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연구소는 녹색감리교회 세우기 실행 사업으로 전국 6400개 감리교회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고 몽골에 온실가스 흡수원인 나무를 심자고 제안한 상태입니다.”

1982년 설립 국내 첫 환경운동단체 
사무총장 9년 지내고 6년째 상임대표
목회 초기인 91년 교회에 환경부 설치
94년 함양군기독교환경운동연대 발족
지리산 지키기 연대조직 결성도 앞장
“예수님 평생 했던 일이 환경 운동”

‘35년 녹색운동’ 담은 에세이집 펴내 
2016년부터 시 3천 수 ‘SNS 배달’도

그는 올해로 4년 차 농부이기도 하다. 목회에 나서기 전인 1989년 1년 동안 부친과 함께 농사를 짓기도 한 그는 2021년부터 전북 장수에서 땅을 임대해 ‘평일 농부’로 살고 있다. 지난해는 1500평이 넘는 땅에 두릅과 생강을 각각 500평씩 심고 양파와 마늘, 감자 등도 고루 재배했다. “작년에 생강 수확으로 400만원 소득을 올렸고 올해는 두릅도 소득이 날 것 같습니다.” 왜 농사일까? “35년 목회를 하는 중에도 농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농사는 내가 온전히 주체가 되어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아 보였죠. 목사는 아무래도 교단에 매여 있는 터라 (원치 않은) 강제적인 일도 해야 하거든요. 기후위기로 식량과 에너지 문제가 심각한 것도 영향이 커요.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하는 삶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는데 아무래도 답은 농촌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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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에 대한 관심은 대학 2학년 때 당시 공해문제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고 최완택 목사와 인연을 맺은 게 영향을 미쳤단다. “최 목사님 등과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평생 했던 생명을 살리고 치유하는 일이 바로 환경운동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렀죠. 모든 생명이 제 숨을 평화롭게 쉬는 세상이 바로 예수님이 꿈꾼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는 고교 시절까지 천주교도 이단으로 여기는 보수적인 교회를 다녔지만 목회자가 된 뒤로는 다른 종교 성직자들과 누구보다 잘 어울렸다. 어떻게 신앙관이 바뀌었는지 궁금해하자 그는 신학대 시절을 떠올렸다. “신학대에 들어가 보니 신부님이 라틴어를 가르치더군요. 큰 충격이었어요. 그 뒤로 목사에 따라 신앙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근본주의나 자유주의, 해방신학 등 여러 신앙을 접해 보았죠. 그러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되었고요.”

양 대표가 직접 키운 생강을 종이 봉투에 담고 있다. 양재성 대표 제공
양 대표가 직접 키운 생강을 종이 봉투에 담고 있다. 양재성 대표 제공

그는 감리교단에서 개혁적 목소리를 내는 목회자 500여 명이 참여한 ‘새물결’ 회원이자, ‘예수를 실제 살자’는 뜻으로 2008년 결성한 진보적 기독교시민단체 ‘예수살기’ 총무를 2014년부터 6년간 맡았다. 그는 새물결 활동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감리교단을 보면 1990년대 들어 초대형 교회 목사들이 교권을 차지하면서 신앙적 정체성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교회가 보여주는 지나친 물량주의나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기독교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자는 마음에서 참여했어요.” 그가 말하는 ‘본연의 자리’란 가난과 생태의 영성이다. “예수님처럼 돌봄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는 게 가난의 영성입니다. 생태 영성은 하느님이 창조한 이 세계 안에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신성과 능력이 있음을 믿고 창조 세계를 지키고 돌보는 것이죠.”

어떻게 교회는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진실과 성심을 이야기했다. “기독교 신앙의 본바탕은 진실과 성심입니다. 진실하게 사는 게 기독교인의 일이죠.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투명하지도 정직하지도 정의롭지도 않고 심지어 지혜롭지도 않아요. 교회는 재산을 공개해도 아무 문제가 없도록 투명해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 고통받는 이웃 등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고 손을 잡는다면 신뢰 회복의 디딤돌이 될 겁니다. 기독교는 환대의 복음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하느님처럼 대접하는 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죠.”

신학대 1학년 때 “모든 예언자는 시인이었다”는 구약학자인 민영진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시를 읽기 시작했다는 그는 “신도나 목회자들이 모두 시를 읽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왜냐고 하자 그는 “함축된 언어인 시는 인간과 인간 너머 세계를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데모나 집회를 나갈 때도 꼭 시집을 가지고 다녔어요. 시대의 아픔과 고통, 희망, 비전을 노래한 시를 읽고 거기서 힘을 얻어 암울한 시대를 버티고 살아온 것 같아요.” 누구의 시를 좋아하는지 물었다. “박노해 시를 참 좋아했어요. 기독교 언어로 가장 잘 구성된 시를 쓰는 분은 이해인 수녀입니다. 고 고정희 시인은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 환희, 희망을 시에 농축시켰는데요. 신앙과 문학의 언어를 같이 쓴 영성적 시인이죠.”

그는 책에 지금 농부로 사는 땅에 ‘생태영성교육센터’를 세우고 싶은 꿈을 밝혔다. “농사 체험을 하며 숲 명상 등을 통해 생태영성도 배우고 기독교영성 공부도 하는 곳이죠.” 그는 “지금은 신앙의 결이 너무 얕다”며 말을 이었다. “여기에 하루 이틀 머물며 자연의 순환 질서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기독교의 영성적 가르침을 통해 기독교의 진리를 깊이 체험하고 사회와 교회로 돌아가 진짜 기독교인으로 살면 좋겠어요. 그 힘으로 사회적 변혁을 이끌고 더 나은 세계를 구성할 수 있을 겁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