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에게 날리는 ‘기후위기 경고장’
그린 엑소더스/이진형 지음/기독교환경운동연대 엮음/삼원사
입력 : 2020-12-04 03:01

“이 책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10년입니다.”
‘그린 엑소더스’의 저자가 직접 밝힌 책의 수명이다. 작가라면 자기 책이 오래도록 널리 읽히길 바라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저자는 아예 “이 책은 책장에 꽂아두고 오래 살펴보는 참고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책이 다루는 기후변화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고 급박하게 전개되는 까닭이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기환연) 사무총장인 저자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이 의미 있는 수치로 줄어들지 않으면,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지 않으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어하는 일은 요원한 일이 된다”며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재차 경고한다.
왜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제어해야 한다고 강조할까. 이 수치가 인류와 지구 생태계의 파멸을 막기 위한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는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2도 더 오를 때 지구 생태계에 생길 일이 예측돼 있다. 북극 빙하는 완전히 손실되고 산호초가 전멸해 해양 생태계가 큰 타격을 입는다. 자연재해가 빈발하면서 수억 명의 기후 난민도 생긴다. 2019년 현재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1도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이 추세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세가 더 급격해질 것이라 예상한다.

책에는 기후위기의 징조와 그 결과의 참혹함을 조목조목 설명한 각종 수치와 자료들이 가득하다. 저자가 시종일관 강한 어조로 ‘기후위기 경고장’을 날리는 건 우리 사회가 기후위기 대책 마련에 좀처럼 애쓰지 않아서다. 하나님에게 창조세계를 지킬 청지기 의무를 부여받은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아직도 커다란 산업문명의 신전에서 생명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며 마태복음에 등장한 ‘부자 청년’ 이야기를 꺼낸다.(마 19:16~22)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자, 예수는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답한다. 근심하며 떠나는 부자 청년의 뒷모습에서 저자는 현대 그리스도인의 속내를 읽는다. “부자 청년이 재산을 나눠야 한다는 이야기에 근심한 것처럼, 우리는 그동안 누려온 화석연료의 풍요를 포기하지 못해 고민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는 이 순간에도 지구 생태계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성경 사건을 생태적 시각으로 바라본 것도 흥미롭다. 저자는 아브라함이 고향 우르를 떠난 이유를 ‘기후 변화’로 든다. 성서고고학자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난 시점은 기원전 2100년쯤이다. 우르가 있던 메소포타미아 유프라테스 유역은 기후가 온난하고 강수량이 많아 수메르 문명이 꽃폈다. 하지만 아브라함 당대에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고 가뭄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농경 도시인 우르에 위기가 닥친다. 이즈음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아브라함은 과감히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한다. 사실상 도시에서 오지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아직은 화려하고 안전해 보일지라도 사실상 풍요의 기반이 사라진 도시 우르에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찬란한 문명도 기후위기로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화석연료의 도시일지 모릅니다.”
기후위기를 “먼 미래의 일이자 정부와 기업이 나설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그리스도인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속 제사장과 레위인에 빗댄 것도 참신하다.
기환연은 책 출간을 기점으로 기후위기 대응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교회가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해 사회의 길잡이 역할을 하자”고 제안한다. 한국교회가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 정부와 정당, 기업과 시민이 기후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정신적 디딤돌’이 되자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껏 당연하게 여겼던 풍요로운 일상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회피만 하기엔,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7680&code=23111312&sid1=m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