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돋보기] 기후위기와 어리석은 피조물
이학주 요한 크리소스토모(신문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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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6 발행 [15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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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진짜 미친 것 같다.” “어떡하지….”
취재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자 우려와 탄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앞에서 굵은 빗줄기가 기관총을 쏘아대듯 맹렬한 기세로 쏟아지고 있었다. 망연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 눈에 두려움이 비쳤다. 조금만 기다리면 비가 잦아들지 않을까. 일기예보를 보려 인터넷에 들어갔는데 충격적인 물난리 소식 일색이었다. 마을이 잠기고, 일가족이 목숨을 잃은 참담한 수해 현장을 보니 가슴이 무거웠다. 문득 어릴 적 놀이터에서 본 개미가 떠올랐다. 철없는 꼬마의 물벼락에 집이 무너져 혼비백산한 개미떼. 그들이 느꼈던 공포와 무력감을 지금 우리가 똑같이 느끼는 건 아닐까. 가공할 위력의 폭우 앞에 인간이 개미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와 개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개미는 억울한 피해자다. 상위 차원에 존재하는 거인에게 영문도 모른 채 봉변을 당했을 뿐이다. 그러나 인류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장마와 폭염, 산불, 메뚜기떼까지, 최근 전 세계를 전율케 한 재난들을 떠올려 보자. 전부 기후위기가 원인이다. 지구촌을 마비시킨 코로나19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 종의 몰락을 가속하는 모든 위험을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이는 제 욕심에 눈이 멀어 공동의 집을 짓밟은 대가다. 인류가 하느님의 숱한 경고를 무시하고 자멸을 택한 어리석은 피조물로 남을까 두렵다.
하지만 이 같은 비상사태에도 우리 정부는 무사태평이다. 전국 226개 지방자치단체가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한 지가 언젠데 아직 요지부동이다. 최근 발표한 ‘그린 뉴딜’ 계획도 문제다. ‘생존’이 아닌 ‘성장’에 방점을 찍었다. 그리고 알맹이 없는 말 잔치를 벌였다. 발표 직후 인터넷에는 ‘그린 뉴딜 수혜주식’를 찾고 알리는 글만 넘쳐났다. 부디 잊지 말자. 운명의 시곗바늘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