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협정 탈퇴는 무지하고, 자기파괴적인 조치”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
입력 : 2017.06.06 21:33:02 수정 : 2017.06.06 21:34:56
ㆍ트럼프에 분노한 인사들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 조지프 스티글리츠 전 세계은행 부총재, 존 케리 전 미 국무장관(왼쪽부터)
11세기 잉글랜드와 스칸디나비아의 왕 크누트가 신하들 앞에서 파도를 향해 명령했다. “멈춰라.” 파도가 말을 들을 리가 없다. 왕은 파도에 휩쓸려 소금물을 먹고 나서야 오만함을 반성했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올린 칼럼에서 크누트왕과 파도 이야기를 소개하며 “어리석고 오만한 왕은 기후변화를 부인하면 석탄과 석유, 가스 산업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썼다. 그는 “트럼프는 판타지 세상에 살고 있다”면서 “하지만 트럼프는 파도를 멈출 수 없고, 높아지는 해수면을 낮출 수도 없다”고 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무지를 과시하면서 행복해한다. 삭스는 트럼프가 바로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를 제외한 세계는 최근 3년 동안 지구가 사상 최고 온도를 갈아치우고 있다는 것, 바닷물은 극적으로 더워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삭스는 트럼프의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에 흔들리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과 유럽, 그리고 중동 산유국들조차도 재생가능에너지로 무게추를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2일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에서 “유럽과 아시아는 녹색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크게 앞지를 것이며 미국은 트럼프 아래에서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티글리츠는 트럼프의 미국을 ‘불량국가(rogue state)’라 불렀다. 미국 정부가 북한이나 이란, 이라크 등 과거 적대국가를 가리켜 쓰던 표현이다. 스티글리츠는 “불량국가 미국이 지구를 파괴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면서 각국이 미국산 제품에 탄소세를 물려야 한다는 방안까지 내놨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파리협정 탈퇴에 반발해 트럼프 대통령 자문단에서 사퇴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기후변화협약 탈퇴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협한다”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페이스북에 “파리협정 탈퇴는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적었다.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은 2일 CNN 인터뷰에서 “파리협정 탈퇴는 내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본 것 중 가장 부정적이고, 멍청하며, 위험하고 자기파괴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이틀 뒤에는 NBC 방송에 출연해 “트럼프가 파리협정 재협상을 요구하는 건 O J 심슨이 진범을 찾겠다고 나서는 꼴”이라고 말했다. 부인 살해 혐의로 기소된 심슨은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대다수 미국인들은 여전히 그가 진범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트럼프를 지지하는 보수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기후변화를 부정한다. 퓨리서치 여론조사에서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88%는 신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인간 활동이 기후변화를 일으킨다고 믿는 사람은 28%에 불과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