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온난화 탓 소리없는 재앙 '폭염'...일상이 된다.
[중앙일보] 입력 2017.07.09 15:48 수정 2017.07.09 16:04
강찬수 기자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모 식당에서 조경 작업을 하던 고 모 씨가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갑자기 경련을 일으켰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다음날 사망했다. 고 씨는 열사병에 의한 온열 질환자로 판명됐다. 올해 전국 온열 질환자 중 첫 번째 사망자다.
온난화로 작년 같은 극심한 폭염 반복 조짐
KEI "2050년엔 폭염 노출 인구 58%로 크게 늘어"
8월 하루 이상 폭염, 국토 30%서 70%로 증가
국내 인구 중 2800만 '심각한 폭염' 노출 예상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와 노인 조기사망도 증가
더위 쉼터, 폭염 조기경보 등 국가적 대책 필요
서울에서도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6일 낮 최고기온이 34.6도를 기록했고, 강원도 춘천(북춘천)은 34.9도까지 치솟았다.
아직 장마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전국 곳곳에서 폭염(낮 최고기온 33도 이상)이 발생하고 있다. 22년 만에 제일 극심했던 지난해 폭염의 힘겨운 기억이 되살아날 정도다
.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지난해와 같은 폭염이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고, 폭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도 급증할 것이란 경고가 나왔다.
9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심창섭 박사팀 연구에 따르면 '8월 중 하루 이상 폭염 발생' 지역이 현재 국토의 30% 수준에서, 한 세대 뒤인 2050년엔 두 배가 넘는 70%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서해안과 영남지역에서는 7~8월 폭염이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최악의 폭염이 여름 한반도의 일상이 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폭염 발생이 빈번해지고 건강 피해도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사진은 폭염으로 인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대구 달서대로.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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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폭염 발생이 빈번해지고 건강 피해도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사진은 폭염으로 인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대구 달서대로. [중앙포토]
.지난해 8월 3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폭염주의보 기준을 웃도는 34.2도를 기록했다. 이후 폭염은 11일 동안 이어졌다. 7~8월 전체 서울의 폭염일수는 24일로, 지난 1994년 30일을 기록한 이래 22년 만에 가장 길었다. 폭염은 전국적으로도 기승을 부렸다. 열사병 등 온열 질환자가 전국에서 2125명이 발생해 이 중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자료: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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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 연구팀은 미국 국립대기연구소 기후모델에 기후변화 시나리오(RCP4.5)를 적용, ‘심각한 폭염’에 노출되는 인구를 추산했다. 2050년까지 인구 구조의 변화도 감안했다. RCP4.5 시나리오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어느 정도 추진하는 것을 가정한 시나리오다.
[자료: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 현재는 전국 평년치(1981~2010년)인 11일을 넘어서는 '심각한 폭염'에 노출되는 인구가 1250만명(25%)이다. 심 박사팀에 따르면 이런 인구가 2050년대엔 2800만명(58%)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의 2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특히 노약자에게 폭염은 '소리 없이 다가오는 재앙'이다. 고령화가 진행되면 '심각한 폭염'에 노출되는 고령 인구도 함께 늘게 된다. 현재는 심각한 폭염에 노출되는 인구 중 65세 이상이 140만명이다. 2050년에는 7배가 넘는 1040만명(전체 인구의 22%)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지난 5일 대구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다. 대구 수성구청이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운영하는 수성패밀리파크에서 시민들이 쿨링포그 아래 모여 더위를 피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5일 대구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다. 대구 수성구청이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운영하는 수성패밀리파크에서 시민들이 쿨링포그 아래 모여 더위를 피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심창섭 박사는 “기후변화 시나리오 가운데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격히 증가하는 비관적 시나리오를 적용할 경우, 훨씬 더 많은 인구가 심각한 폭염에 노출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민안전을 위해 장기적인 폭염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폭염은 2014년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발표한 ‘2020년 한반도 폭염재앙 시나리오’가 6년 앞당겨 현실화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당시 재난안전연구원은 “2020년 이후 연간 30일 이상 폭염이 발생, 한 해 1만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폭염이 없을 때보다 훨씬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유사한 연구는 또 있다. 지난 2015년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조용성 교수팀은 지구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폭염으로 인해 2015~2050년 사이 35년 동안 전국 7대 도시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조기 사망자 수가 최소 14만3000명에서 최대 22만2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조기사망은 심혈관·뇌혈관 질환 등을 앓는 사람이 폭염으로 인해 수명이 단축되는 것을 말한다.
. 전문가들은 폭염에 대비한 국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성균관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정해관 교수는 “폭염에 노출되면 혈관이 늘어나고 혈압이 떨어지면서 혈액순환기능이 약한 노인들이 심근경색이나 협심증, 허혈성 뇌졸중 같은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폭염 발생 자체를 줄일 수는 없으니 대신 전국적인 응급의료체계를 갖추고, 만성질환자에 대한 평상시 관리를 강화하고,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해야 한다"며 "무더위 쉼터 확충 등 쪽방촌의 저소득층 노인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난달 27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폭염연구센터 연구원들이 기상 자료 등을 분석하며 토론하고 있다. UNIST 폭염연구센터는 폭염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기관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폭염연구센터 연구원들이 기상 자료 등을 분석하며 토론하고 있다. UNIST 폭염연구센터는 폭염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기관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연합뉴스]
.UNIST(울산과학기술원) 이명인 폭염연구센터장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폭염은 전 지구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자체별로 폭염 피해 유형을 분석해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센터장은 “폭염예보 선행 시간을 하루만 앞당겨도 온열환자 발생가능성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는 만큼 ‘조기 예보시스템’이나 ‘조기경보체계’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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