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농민 사울 루치아노 릴루야
부유한 나라의 대기업과 소송전…기후불평등 일깨우다
페루 농민 사울 루치아노 릴루야(가운데)가 11월13일 독일 함 고등법원이 RWE의 일부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뒤 법원을 나오며 박수치고 있다. 함 | 로이터연합뉴스
페루 농민 사울 루치아노 릴루야(가운데)가 11월13일 독일 함 고등법원이 RWE의 일부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뒤 법원을 나오며 박수치고 있다. 함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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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부유한 나라의 책임이 크지만 고통은 가난한 나라가 더 크게 겪는다. 이와 같은 ‘기후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부유한 나라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기후정의’ 개념이다. 올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했지만 세계의 기후정의는 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독일 에너지기업 RWE가 내뿜은 온실가스로 안데스산맥 빙하가 녹아 고향마을이 침수될 위기라며 손해배상을 요구한 페루 농민의 소송을 독일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독일 함 고등법원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페루 농민 사울 루치아노 릴루야의 이와 같은 주장에 근거가 충분하다며 증거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 릴루야가 사는 우라야스 마을과 RWE 본사가 있는 독일 에센은 1만㎞ 넘게 떨어져 있다. 그래서 의미가 특별하다. 부유한 나라 혹은 거대기업이 초래한 기후변화의 범위는 전 지구적이며 물리적 거리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논리를 확장하면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 전체가 물에 잠길 위기에 빠진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나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홍수와 물 부족으로 신음하는 나라 사람들도 국가나 거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릴루야의 변호사는 “증거조사 개시 단계에 들어간 것만으로 이미 사법 역사를 쓴 것”이라고 자평했다. 릴루야도 “나뿐 아니라 전 세계 기후변화 위험에 처한 모든 곳의 사람들에게 큰 성공”이라고 기뻐했다.
기후난민을 위한 특별비자 발급을 논의하겠다는 뉴질랜드의 발표도 기후정의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재신더 아던 총리는 지난 10월 CNN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제임스 쇼 기후장관은 “해수면 상승으로 태평양에서 피난한 이들을 위해 실험적이고 인도적인 비자가 있을 수 있다”면서 기후난민 인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뉴질랜드에서 기후난민 논의는 2011년 남태평양 섬나라 키리바시 출신 이와네 테이티오타(37)가 기후변화 희생자임을 자처하며 난민으로 인정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면서 본격화했다.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테이티오타는 2015년 결국 추방됐다.
릴루야의 소송도 뉴질랜드의 기후난민 논의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만큼은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중국 베이징·톈진·허베이성 인권변호사 위원성
“시민 마스크 비용 대라” 지방 정부에 스모그 책임 묻다
중국 베이징·톈진 등 지방정부를 상대로 스모그 관리에 대한 책임을 묻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위원성 변호사. 홍콩명보
중국 베이징·톈진 등 지방정부를 상대로 스모그 관리에 대한 책임을 묻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위원성 변호사. 홍콩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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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위원성(余文生·50) 변호사는 ‘스모그 투사’를 자처하고 나서 국내외 주목을 끌었다. 동료 변호사 4명과 각각 베이징시, 톈진시, 허베이성 스좌장(石家莊) 정부를 상대로 스모그 관리에 소홀한 책임을 묻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올림픽 블루’(2008),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블루’(2014) 등 주요 국가행사를 앞두고 ‘푸른 하늘’ 만들기에 나섰던 사례를 들며 “정부가 스모그 해결을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중국 정부가 4억6000만명의 해당 지역 중국인들을 스모그 지옥으로 내몰았다며 마스크 비용 65위안(약 1만원)과 정신적 피해보상금 9999위안(약 164만원)을 지급하고 공식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정부 비판이 엄격히 통제된 중국에서 이 같은 소송을 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스모그 문제에 대해 당국의 책임 있는 사과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중국의 시민 의식을 일깨웠다.
그러나 1년이 다 돼가도록 해당 재판은 열리지 않고 있다. 중국 법원은 소장을 접수하지 않고 있고, 어떤 이유인지와 언제 접수할 것인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위 변호사는 당시 천지닝(陳吉寧) 환경부 부장에게 스모그 개선의 희망을 걸고 있다고 했다. 천지닝은 대기환경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로 칭화대 총장까지 지냈다. 천지닝은 현재 베이징 시장에 올랐지만 스모그 개선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허베이성 정부는 ‘대기오염방지행동계획’에 맞춰 소형 석탄보일러를 가스보일러로 바꾸는 정책을 실시했지만 급작스러운 시행으로 액화천연가스(LNG) 부족 등 부작용만 나타났다.
위 변호사의 투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는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이 열린 10월18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파면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개 서신을 발표했다 당국에 체포됐다. 그는 서신에서 “시 주석 집권 5년간 1인 지배체제 강화, 인권 악화, 법치 후퇴 등으로 중국은 역사적 후퇴를 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yama@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252221005&code=970100#csidx54ffabdfa51cb87817d286b4fa90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