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이슈] 마을이 기후변화 대응의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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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커뮤니케이션실 연구원
‘저희 세대가 망쳤습니다.’ 지난 달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안토니오 구테헤스 UN 사무총장은 한 강연 프로그램에 나와 고백했다. 1990년대 불었던 세계화의 바람은 전 세계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선진국과 개도국, 도시와 농촌, 심지어 사람과 사람 간의 빈부격차가 만연한 상황에 이르렀다. 염치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부탁을 건넸다.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해달라고.
환경 다큐멘터리에 단골로 등장하는 북극곰을 봤을 때 우리가 느끼는 부채감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기후변화로 고통 받는 상징적인 동물로서 북극곰은 제작자가 의도한 클리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덕분에 우리는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사로잡힌다. 다행스럽게도 해결의 실마리는 바로 우리 주변에 있었다.
영국 토드모던 마을 곳곳에 조성된 텃밭
영국 맨체스터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토드모던 마을의 ‘놀라운 먹거리’ 프로젝트는 평범한 사람들이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요청으로 지자체는 마을 내 유휴 부지를 정원과 텃밭으로 조성할 수 있도록 허락하면서 놀라운 변화는 시작되었다. 거리 곳곳에 정원과 텃밭을 조성하여 누구나 손쉽게 작물을 기르고 재배하면서 필요한 먹거리를 마을 내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이웃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나며 공동체 유대관계도 회복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식량의 60~75%가 자본에 치중한 거대 기업농이 아닌 소규모 영농에서 생산된다는 것,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운송 수단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다는 것, 이 두 가지만 고려하더라도 그 의미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토트네스 마을의 지역 화폐 ‘토트네스 파운드’
또 다른 곳은 전환운동으로 유명한 영국의 토트네스 마을이다.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서쪽으로 4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은 약 2,500가구에 8,500여명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1986년부터 약 10년간 영국 전역을 휩쓴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마을 주민들은 공동체 생활양식을 바꾸기 위한 특별한 결심을 했다. 지역 화폐인 ‘토트네스 화폐’ 발행이 바로 그것이다. 2007년부터 발행되었을 당시 획기적이라는 평을 받은 ‘토트네스 화폐’는 지역 경제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역 화폐를 사용함으로써 경제 일부를 지역 경제로 전환하고, 이에 따라 환율 변동이나 경제 불황과 같은 외부 영향 요인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자생적인 환경을 조성될 수 있었다. 마을 경제가 회복됨에 따라 먹거리, 생필품 등을 공급하기 위한 장거리 운송도 불필요해졌으니, 이산화탄소도 덜 배출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다.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현재 200여 곳의 상점에서 이 화폐를 사용하고 있으며, 다른 마을에도 성공적인 사례로 소개되었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UN 사무총장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모두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두 마을은 ‘누구나 나설 수 있다’고 답했다. 여태까지 우리 개개인은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고민하기만 했을 뿐, 문제의 책임을 지고 실질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망설이고 두려움을 느껴왔다. 특히 인간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농업과 경제 분야에서 생활양식을 바꾸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두 곳의 마을은 지역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서 주민들의 작은 노력이 모인다면, 기후변화 대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지 않았는가.
공교롭게도 이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내일:Demain>은 1만 여명이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덕분에 영화로 제작되어, 파리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특별상영될 수 있었다. 한 명 한 명이 재작년 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이 되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지금 이 순간에도 행동하기를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 해당 게시물 내용은 기후변화센터의 공식 입장의 아닌, 작성자 개인의 의견임을 알려드립니다.
※ 위 글은 품마을신문 3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