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겠다” 미세먼지 사흘째…우울감 호소하는 시민들
이재덕·김찬호·김지혜 기자 duk@kyunghyang.com
입력 : 2018.03.26 22:34:01 수정 : 2018.03.27 00:
<b>재난 영화인 줄…</b> 전국적으로 ‘초미세먼지’가 모두 나쁨 수준을 보인 26일 마스크를 쓴 시민이 서울 세종로 사거리를 지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재난 영화인 줄… 전국적으로 ‘초미세먼지’가 모두 나쁨 수준을 보인 26일 마스크를 쓴 시민이 서울 세종로 사거리를 지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
26일 경기 수원시에 사는 이모씨(35)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에 세 살배기 아이를 보내기 위해 아침부터 ‘전쟁’을 벌였다. 자욱하게 낀 미세먼지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겨우 씌웠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이씨는 미세먼지가 유모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겠다며 아이가 탄 유모차에 커버를 씌우고 지퍼를 올린 뒤 어린이집까지 내달렸다.
이씨는 “아침부터 안개에 미세먼지까지 겹친 것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며 “이런 날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지 않은데 직장에 가야 하니 방법이 없었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이민이라도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고 말했다.
한반도가 미세먼지에 갇혔다. 주말 내내 기승부리던 미세먼지가 이날도 전국을 뒤덮었다. 수도권과 호남, 경남 지역에는 이날 초미세먼지 주의보까지 발효됐다. 최악의 미세먼지가 사흘째 이어지자 시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우울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직장인 김다솜씨(29)는 “미세먼지 때문에 눈꺼풀이 부어오르는 안검염에 걸렸다”면서 “아픈 몸으로 하루종일 모니터를 보고 일해야 해 미세먼지가 여간 원망스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직장인 권모씨(28)도 매일 서울 당산동에서 여의도까지 40분을 걸어서 출근하지만 이날만큼은 미세먼지 탓에 지하철을 이용했다. 그는 “미세먼지 문제가 불거진 지도 꽤 됐는데 정부는 중국 탓만 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세먼지 탓에 가족 모두가 주말 내내 봄나들이를 취소하고 집에 있었다는 김세윤씨(41)는 “완전히 ‘셀프감금’ ”이라며 “봄이 왔는데도 영화 속에서나 보던 회색도시 같은 모습에 잿빛 하늘만 보고 있으려니 우울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b>숨이 ‘턱’…오늘도 초미세먼지 주의보</b>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서울 88㎍/㎥, 부산 57㎍/㎥, 광주 67㎍/㎥, 대전 58㎍/㎥, 경기 68㎍/㎥ 등으로 전국 대부분 지역이 ‘나쁨’(51~100㎍/㎥) 수준을 보인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본 하늘이 미세먼지로 인해 뿌옇게 흐려 있다. 미세먼지는 28일 오전까지 이어지다 서서히 걷힐 것으로 보인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숨이 ‘턱’…오늘도 초미세먼지 주의보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서울 88㎍/㎥, 부산 57㎍/㎥, 광주 67㎍/㎥, 대전 58㎍/㎥, 경기 68㎍/㎥ 등으로 전국 대부분 지역이 ‘나쁨’(51~100㎍/㎥) 수준을 보인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본 하늘이 미세먼지로 인해 뿌옇게 흐려 있다. 미세먼지는 28일 오전까지 이어지다 서서히 걷힐 것으로 보인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
택배기사 등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미세먼지에 노출된 채 일할 수밖에 없다’며 하소연했다. 서울 관악구의 한 공사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김모씨는 “벽돌을 지고 건물을 올라가려면 숨쉬기조차 힘든데 마스크를 쓰고 어떻게 일을 하겠냐”며 “미세먼지가 오늘처럼 심해도 누구 하나 마스크 쓰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분진과 미세먼지를 가라앉히기 위해 물을 뿌렸지만 별 소용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마스크 없이 택배상자를 나르던 택배기사도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고객이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 왜 얼굴을 가리고 서 있냐며 항의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내 건강이 걱정되긴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택배 일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한 미화 노동자도 “구청에서 마스크를 지급하긴 했지만 일하다 보면 숨도 차고 불편하다. 일거리도 많은데 (마스크 없이) 서둘러 일하는 게 차라리 편하다”며 “물 많이 마시는 것이 유일한 대응책”이라고 했다.
방진 마스크, 미세먼지 제거 화장품 등 미세먼지 관련 상품들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날 서울 강남의 한 화장품 가게에는 ‘미세먼지 피부 트러블용’으로 크림, 클렌징 등의 제품을 소개하고 있었다. 근무 중 잠시 가게에 들렀다는 곽모씨(31)는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얼굴에 발진이 많이 생겼다”면서 “점원이 ‘미세먼지 세트’라며 소개해 준 화장품 몇 가지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버스나 지하철 등에선 최근 미세먼지가 옷에 달라붙는 것을 막아준다는 ‘방진 재킷’ 판매 광고도 부쩍 늘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262234015&code=940100#csidx5e8e4ecb17312ab8018dea0905f5ed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