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문화가 만날 때
이은진 기후변화센터 기후변화콘텐츠랩 소장
지난 8월30일, 창덕궁 옆 담쟁이 건물로 유명한 옛 ‘공간’ 사옥, 지금은 국내 최고의 현대미술관으로 변신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미술과 기후변화가 만날 때>로, 기후변화센터와 아라리오뮤지엄이 공동기획한 행사이다. 브라질 열대우림을 담은 영상작품 감상과 다니엘 스티그만 작가 해설, 그리고 최재철 기후변화대사의 파리협정 특강으로 이뤄진 국내 최초의 콜라보레이션 행사는 많은 언론의 관심과 더불어, 기후변화 인식 확산의 새로운 형식으로 호평을 받았다.
작년 COP21에서 채택된 ‘파리 협정’은 20여년에 걸친 정부 간 협상에서 나온 최선의 결과물로서, 인류가 직면한 최대 과제인 기후변화를 저지하기 위해 전 세계가 동시적이고 자발적으로 대응해나가기로 한 약속이다. 이 약속이 실행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정부, 산업, 학계, 사회, 시민 전체의 인식 확산과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9년 전부터 최고위과정 기후변화리더십 아카데미를 운영해온 기후변화센터는 이러한 경험과 노하우를 확장시켜, 전 국민에게 기후변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저탄소’방식을 연구한 결과, 효율적인 플랫폼으로 문화기관들과의 협업을 시도하게 되었다.
문화적인 즐거움을 위해 자발적으로 미술관, 공연장에 오는 관객에게 문화 향유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과거와 같이 계몽적인 방식으로 기후변화를 알리기에는 현재 우리 라이프스타일이 너무 많이 변화했다. 인터넷, 스마트폰, SNS, 이제는 VR까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사회에서 기후소양(Climate Literacy)도 진화된 방식으로 확산되어야할 것이다. 기후변화를 직접 주제로 한 교육적 방식 이외에도, 문화적 흥미를 끌만한 다른 콘텐츠(미술이나 공연, 연주 등)와 결합되어 전달된다면 더욱 파급력이 클 것이다.
기후변화센터는 지난 8월23일 아라리오뮤지엄과 협약을 체결하고 향후 1년간 협력하기로 했다. 센터와 뮤지엄은 서로의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공유해 기후변화 인식 확산에 기여한다는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의 ‘협업’을 시작한 것이다. 박물관 등에서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전시나, 협력사업으로 일시적인 기부나 이벤트는 종종 있지만, 오로지 현대미술을 다루는 뮤지엄에서 기후변화 NGO와 손잡고 연간 협업으로 시민 인식 확산에 나서는 사례는 매우 드문 경우이다.
이번 센터와 뮤지엄의 협업은 더 많은 시민들에게 다가서기 위해서 시민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방문하는 공간에 기후변화 콘텐츠를 탑재하는 플랫폼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뮤지엄 어플리케이션에 기후변화센터 웹사이트나 사업이 배너로 게시되고, 아트샵에는 기후변화센터 개도국 지원사업 ‘클린스토브’ 관련 상품과 설명이 비치된다. 또한 공간소극장을 활용한 다양한 기후변화 강연/상영/토크쇼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렇게해서 관객은 작품 관람을 위해 온 뮤지엄에서 자연스럽게 기후변화와 만나게 되는 것으로, 의무나 책무로서가 아니라, 강요되지 않은 환경에서 가장 자발적인 공감이 이뤄진다고 믿는다. 물론 뮤지엄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행사에 참여한 시민이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문화적 확장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협업에서 주목할 것은 아라리오뮤지엄이 입장료의 2%를 기후변화대응기금으로 센터에 기부하는 것으로, 뮤지엄은 파리협정의 핵심 숫자인 2(지구평균온도 상승폭을 2도씨 이하로 제한하는 목표)를 널리 알리기 위해 흔쾌히 기부하기로 했다. 관객은 자신의 미술관 입장료가 기후변화를 위해서 쓰이는 것을 알게 될 때 보람을 느끼고, 지구온도 상승폭을 2도씨 이하로 제한해야함을 알게 되고 기후변화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부 역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할 수 있는 의미있고 실질적인 액션인 것이다.
작년 파리 COP21과 병행하여, 기후협상의 중요성을 알리고 성공을 염원하는 ArtCOP21이 파리와 세계 주요도시에서 대대적으로 열렸다. 일례로, 한 예술가의 창작으로 파리 에펠탑은 기후변화 협상의 성공을 염원하는 세계인들의 봉화대 역할을 했다. 파리 협정은 밤낮없이 치열한 협상의 장에서 얻어진 결과인 동시에, 이렇게 문화예술을 통한 예술가와 세계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지지로 얻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기후변화재단을 만들어 여러 관련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다양한 미술전시, 옥션파티 등 자신의 명성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금을 조성하고 무엇보다 오스카상 수상 소감에서 본 것처럼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기후변화 대응을 호소하고 있다. 프랑스의 COAL, 유럽의 이매진2020네트워크 등도 문화예술을 통해 기후변화 이슈와 대응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제는 문화적 방법으로 시민들에게 기후변화 대응을 알려 기후변화 소양을 함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사실 기후변화를 위기 아닌 기회로 활용해야할 산업 전반에도 지갑을 열 호의적 소비자군을 마련해주는 순기능을 한다. 기후변화 인식확산으로 문화와 경제의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테슬라의 폭발적 인기를 들여다보면(국내에선 아직 버츄얼한 인기이긴 하지만), 전기자동차의 고성능, 친환경성, 가격정책 위에 디자인과 트렌드라는 문화적 고부가가치를 덧입힘으로써 촉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후변화를 위한 대응에 있어서도 기능과 정책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이미 도달한 문화적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기후변화센터는 이번 아라리오뮤지엄과의 협력을 시작으로 시민이 즐겨 찾는 문화공간이 효과적인 기후변화 대응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문화공간 협력 프로젝트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더 많은 문화기관, 기업들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이 협력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시민들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해나갈 때 행복한 저탄소 사회로 진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특별전 <텍스트가 조각난 곳>(2016.8.30~2017.2.26, 서울 종로구 율곡로 83)의 전시작가 3명은 세계적 명성의 현대미술가들로, 모두 2015년 파리 기후변화 협상의 성공을 위해 작품을 전시했던, 기후소양 가득한 작가들이다. 관람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