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0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 참석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효율과 높은 제조업 비중에도 불구하고 BAU 대비 37% 감축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국제 탄소시장 구축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면서 “한국은 배출권 거래제 운영경험을 바탕으로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가 활발히 참여하는 탄소시장이 열릴 수 있도록 국제논의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했다. 이어 “누구나 신재생설비, 에너지저장장치, 전기차 등을 통해 생산하고 저장한 전력을 자유롭게 팔 수 있도록 ‘전력프로슈머’ 시장을 개설하고, 단계적으로 제로 에너지 빌딩을 의무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르부르제 공항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녹색당은 박 대통령 발언을 두고 ‘보여주기용’이라고 비판했다. 녹색당은 논평을 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후변화’란 총회장 연설을 빛내줄 소재일 뿐이다”라며 “자신이 한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고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 ‘온실가스 37% 감축’의 의미
녹색당은 “세계 경제 10위권 국가가 BAU 기준을 사용한다는 것부터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BAU(Business as ususal)는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가정 하에 예상되는 배출량 추정치를 말한다. 한국은 2030년 배출 전망치를 기준으로 삼았다. 한국이 제시한 “BAU 대비 37% 감축”이란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때, 2030년까지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온실가스보다 37%를 덜 배출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유엔에 제출한 INDC(자발적 설정 감축목표)에서 사용하는 감축목표 설정 방식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기준년도 방식으로 절대량을 줄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BAU(전망치) 방식이다. 예외적으로 중국은 탄소집약도(배출량/GDP)을 사용하기도 한다. 선진국들은 절대량을 줄이는 기준년도 방식을 사용하고, 개발도상국들이 BAU 방식을 사용한다.

가령, 스위스는 1990년도를 기준으로 50%를 2030년까지 감축하겠다고 했다. 유럽연합은 1990년 기준 40% 2030년까지, 미국은 2005년 기준 26~28%를 2025년까지, 일본은 2013년 기준 26%를 2030년까지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BAU 방식은 절대량 방식에 비해 목표가 불확실하며 절대량으로 따지면 효과가 적다는 것이다. 녹생당은 “BAU는 추정치이기 때문에 계산하는 방식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며, 손쉽게 부풀려질 수 있다”며 “만약 BAU를 부풀린다면 아무래도 강한 감축 비율를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실질적 감축량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의 ‘BAU 대비 37% 감축’을 선진국들이 많이 사용한 2005년 기준 절대량 감축으로 환산하면, 5.6%를 감축하는 것에 불과하다.
2014년에 제시된 2020년 BAU와 2015년에 제시된 BAU의 수치는 다르다. 2014년도는 776백만t이었으나 2015년에는 782t으로 0.82% 증가됐다.

세계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세계 각국이 제출한 자발적 감축 목표를 취합해 2030년의 1인당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분석했다. 이를 보면, 한국은 9.4이산화탄소t/인으로, 러시아(12.0), 미국(10.9)에 이이서 세계 3위를 차지할 전망이다. 녹색당은 “한국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기후변화를 막는데 온실가스를 과감히 감축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외면하고 있다”고 전했다.
■ 배출권 거래시장은 사실상 폐업 상태?
박 대통령이 “한국은 배출권 거래제 운영경험을 바탕으로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가 활발히 참여하는 탄소시장이 열릴 수 있도록 국제논의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 녹색당은 “한국의 배출권 시장은 사실상 폐업 상태”라고 했다.
한국에서 배출권 거래 시장은 올 1월에 시작됐다. 개장 1주일 동안 거래가 이뤄지다 중단됐다. 이후 10월에 들어서야 다시 거래가 나타났다. 환경부는 배출권 거래제를 시작하면서 올해 5억4000만t을 할당해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한국거래소에 의하면 10월8일 현재 96만1000t이 거래됐다. 이는 2015년 할당량 기준 0.17%, 2015~2017년 1차 기간 할당량을 기준으로 0.057%에 해당한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 개장 기업 500여개가 참여하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이 지난 1월12일 문을 열어 부산 한국거래소 전광판에 거래 시작가 7860원이 표시돼 있다. | 연합뉴스
녹색당은 “현재와 같이 거래가 이루어지 않는다면, 한국의 배출권 거래제는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 에너지 프로슈머…국내 실태는
박 대통령은 에너지 프로슈머 시장을 육성하겠다고 했다. 에너지 프로슈머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개인이 생산자로도 참여하는 것을 일컫는다. 에너지 생산자는 거대 발전소를 건설·운영하는 기업들에 국한됐지만, 소규모 분산형 발전이 가능한 재생에너지가 확산되면서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들도 전력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태양광 발전을 하는 사업자와 협동조합이 늘고 있다.
문제는 대표적인 에너지 프로슈머인 소규모 태양광발전사업자와 에너지 협동조합이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원 횡성군 횡성읍 모평리 에너지 자립마을의 한 주택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 │횡성군 제공
태양광 사업자들은 한전에 전기를 팔거나, 신재생에너지를 의무적으로 생산해야 하는 발전회사들에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판매해 수익을 얻는다.
그런데 한전에 전기를 팔때 책정되는 단가(SMP·계통한계가격)가 떨어지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석탄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를 대거 건설·운영하면서, 전력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Kwh당 142.72원에서 1년 사이 81.35원으로 떨어졌다. REC 가격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2011년 하반기에 약 22만원에서 2015년 상반기 7만원대로 내렸다.
소규모 태양광발전사업자들은 지난 11월 전국태양광발전사업자연합회를 결성하고, 정부 정책을 바로잡을 것을 촉구했다. 에너지협동조합들도 지난 6월에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제도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녹색당은 이 같은 실태에 비춰 “대체 에너지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도록 하겠다는 정책은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라며 “비행기 타고 파리로 날아가면 한국의 현실은 모두 잊고 가상의 나라 이야기를 늘어놔도 되는가”라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