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지옥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지난 20일 제78차 유엔총회 고위급 주간 ‘기후목표 정상회의’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현재의 기후위기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거듭된 경고에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발언 강도가 점점 격화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관련한 암울한 뉴스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4일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2023 기후과학 합동 보고서(United In Science)’에 따르면,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했었는데 그 이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더욱 난감한 것은 구테흐스 사무총장 말대로 이런 모든 변화가 앞으로 다가올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징후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덧붙여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구온난화 시대’가 가고 ‘지구열대화 시대’로 진입했다고 경고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극한 기상 현상은 이러한 우려가 과장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올해만 보더라도 지난 11일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 열대성 폭풍으로 댐이 붕괴되며 대홍수가 덮쳐 사망자만 2만명 넘게 발생했다. 지난 9일에는 모로코 중부 지역에서 규모 6.8 강진으로 2000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다.
산불 피해도 도처에서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지난 8월 미국 하와이주 산불로 97명 이상이 사망하고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는 1918년 미네소타 산불 이후 미국 역사상 100여년 만에 최대 인명·재산 피해를 낸 재난으로 기록됐다. 특히 19세기 초 하와이 왕국의 수도였던 라하이나 도심과 주변 역사지구는 이번 산불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산불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이유는 극심한 가뭄과 시속 100~130㎞ 강풍에 불씨가 계속 되살아난 결과로 추정된다.
지난 2월로 거슬러 가보면, 튀르키예·시리아에서 규모 7.8 대지진이 일어나 양국 합산 무려 4만8900명 이상 사망하고 큰 재산 피해를 봤다. 우리는 지금 지구 환경 파괴가 고스란히 인간의 고통으로 옮겨가는 그 관계성을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다.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에 한 일화가 있다. 붓다의 재가 제자였던 유마거사(維摩居士)가 병을 얻어 앓아눕게 되자 문수사리(文殊師利)가 문병 가서 물었다.
“거사님, 이 병은 무엇 때문에 생겼으며, 또 얼마나 오래되었고,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겠습니까?”
거사는 “어리석음(痴)과 탐심(有愛)으로부터 나의 병은 생겼습니다. 모든 중생이 병들어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약 모든 중생의 병이 사라진다면 그때 나의 병도 사라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깨달은 안목에서는 누구든 무엇이든 고통을 겪는다면 그것은 그 개체에게만 국한된 고통이 아니라 모두의 고통이 된다는 견해를 갖는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의존하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연기(緣起)’라고도 설명한다. 단순히 인과응보를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 이전에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면서 존재하고 그것은 비단 인간 사이만이 아니라 인간 외에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과거 인간 중심적 사유만으로는 인간과 자연 사이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사유 방식에 관한 문제이다.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고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함으로써 자연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만약 인간의 탐욕이 사라져서 지구 환경 오염이 사라진다면, 그때 비로소 그에 따른 인간들의 고통도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