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회의론을 이기는 인식의 프레임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15-05-01 21:36:08    조회 : 439회    댓글: 0

제목 [이달의 이슈] 기후변화 회의론을 이기는 인식의 프레임(frame)
 

기후변화 회의론을 이기는 인식의 프레임(frame)

기획조정실 한빛나라 박사

미국의 저명한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당시 집권 여당인 공화당의 부자 세금 감면 정책이 미국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정책의 명칭에서 찾았다. 공화당이 “세금 감면”이 아닌 "세금 구제“(tax relief)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선’의 프레임을 선점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규정함으로써 인간의 인식체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예일대학교의 Dan M. Kahan 심리학과 교수가 미국정치·사회과학회보(Annals of the American Academy of Political and Social Science)에 발표한 논문이 기후변화 관계자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Dan M. Kahan 교수는 지구공학적 정보가 어떻게 문화적 인지(cultural cognition)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먼저 문화적 인지 논의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이 선호하는 가치체계에 부합하도록 선택적으로 정보를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카이사르의 명언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가령, 개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기본적으로 개인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의 자율적 기능에 반하는 규제를 거부하며, 환경주의는 사회엘리트의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구환경 위기에 대한 주장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평등주의적이고 공동체주의적 성향을 지닌 사람은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기업에 대한 불신이 높고, 지구환경을 위한 정부의 개입과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식이다. 문화적 인지론은 우리 사고의 편향성을 뒷받침한다.

  

Dan M. Kahan 교수는 3천 명의 실험참가자들을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이들에게 기후변화와 관련한 연구결과를 읽고 평가하게 했다. 실험참가자들에게 제공된 기후변화 관련 연구결과는 “공기 중 이산화탄소가 사라지는 속도가 예전보다 더욱 느려져, 국가들이 탄소배출에 대해 어떤 강력한 규제를 가하더라도 우리는 기후변화가 야기하는 심각한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 그룹 1 : 연구진이 준비한 기후변화 관련 연구결과를 읽기 전에, 연구와 무관한 기사(교통신호체계를 주제로 개최된 시의회 회의)를 읽었다.

▲ 그룹 2 : 연구결과를 읽기 전에, 저명한 과학자들이 전세계 국가들이 더 엄격하게 탄소배출을 규제할 것을 촉구하는 기사를 읽었다.

▲ 그룹 3 : 연구결과를 읽기 전에, 저명한 연구기관이 지구공학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읽었다.

  

그렇다면 먼저 읽은 기사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기후변화 관련 연구결과에 대한 그룹별 평가는 어떻게 다르게 나타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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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으로 따지면, 기후변화 관련 연구결과의 타당성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그룹 2, 3에 제공된 기사가 그룹 1에 제공된 기사보다 더 관련된 정보를 주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심리적 측면에서는 이들 기사가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밝혀졌다.

  

그룹 1, 2의 실험에서는 개인의 성향(개인주의적이고 보수적 성향이냐 평등주의적이고 공동체주의적인 성향이냐)이 기후변화을 평가하는데 현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가설이 증명되었다. 특히 그룹 2의 경우에는 자유시장에 반하는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기사내용이 기후변화 관련 연구내용과 연결되면서, 개인의 성향에 따른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 차이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그룹 3의 반응은 달랐다. 그룹 3에서는 개인주의적 성향의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경향이 확연히 완화되었고, 오히려 다른 그룹보다 기후변화의 위험을 가장 염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 문제해결에 대한 지구공학적 접근은, 인간이 환경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개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가치체계와 적절히 부합하면서 예상외의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기후변화 인식에서 지구공학이라는 개념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극단으로 양분화되는 경향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다시 정리하면, 분명 개인주의적 성향은 기후변화를 실제 위협으로 받아들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개인주의자가 추구하는 가치체계 안에서 기후변화 이슈를 “프레이밍” 할 경우, 양극화되는 경향은 감소한다. 같은 맥락에서 지구공학 뿐 아니라, 탄소배출이 적은 원자력의 사용을 증가시킨다든지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한다는 식의 산업적 접근도 개인주의자들이 지구온난화를 실제 당면한 위기로 인식할 가능성을 높일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Dan M. Kahan 교수의 연구는, 결국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기후변화와 관련된 정보가 부족하거나 미흡해서가 아니란 점을 보여준다.

기후변화 회의론, 즉 기후변화 인식의 문제는 일면 프레임의 문제이다.

수많은 과학적 증거와 실증적 연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사회·문화·정치적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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