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는 침몰하고 있는가?

작성자 : admin    작성일시 : 작성일2014-09-04 19:38:54    조회 : 533회    댓글: 0

타임지 기자와 옵저버지 기자의 뜨거운 설전

“마이애미는 침몰하고 있는가?”

기후변화센터 커뮤니케이션팀 팀장 한빛나라

 

지난 7월, 미국 마이애미의 해수면 상승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영국의 저명 언론사 소속 기자 두 명이 치열한 진실공방을 벌여 많은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내용은 이렇다. 영국의 옵저버지(영국의 유력 일간지 ’The Guardian’을 발간하는 Guardian Media Group 계열사) 소속 과학전문 기자 로빈 맥키(Robin Mckie)가 7월 11일자 신문에 ‘침몰하는 마이애미, 뒷짐만 지고 있는 정부’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다. 로빈 맥키 기자는 ‘마이애미와 그 인근 지역이 구약성서에나 나올 법한 재난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플로리다 국제대학교 지질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마이애미의 경우 해수면이 4피트만 상승해도 마이애미 해변과 키비스케인, 버지니아키의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해수면이 6피트 상승하면 바다와 인접한 마이애미 지역과 플로리다키는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어서 해수면 상승이 마이애미 남쪽으로 24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터키포인트 핵발전소에 미칠 영향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비교하며, ‘세계적인 도시 마이애미가 수 십년 안에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는 심각한 경고로 기사를 마무리한다.

 

이러한 기사가 나가고 3일 뒤, 미국 타임지의 마이애미 지역 담당 선임기자 마이클 그룬왈드(Michael Grunwald)는 ‘지구온난화는 진행 중이나 기후 히스테리(Climate Hysteria)는 아무 도움도 안돼’라는 기사로 맞불을 놓는다. 마이클 그룬왈드 기자는 ‘어느 볕 좋은 날 만조기에 이웃집에 물이 좀 찬다고해서 가디언지(옵저버지 기사를 언급)의 기사가 정당화되지는 못한다’며, 로빈 맥키 기자의 기사가 쓸데없는 소문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는 이어 ‘기후 포르노(climate porn :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의 현재와 미래를 극단적으로 설명하는 표현)’에 찬물을 끼얹게 되어 유감이라며, 로빈 맥키의 기사는 전형적인 ‘옐로우 기후 저널리즘(yellow climate journalism)’이라는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마이클 그룬왈드 기자는 ‘우리가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고 정부가 행동해야 하는 이유는 지구온난화가 마이애미를 비롯한 아름다운 지구에 잠재적인 재난이기 때문’이라며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면서도, ‘하지만 지금 당장 재난이 일어난 척 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한다.

 

마이애미를 둘러싸고 벌어진 두 기자의 설전은 많은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트위터, 블로그, 웹사이트에 수 십 건의 관련글이 올라왔고, 이 둘의 설전을 보도한 미국의 과학전문잡지 ‘디스커버(Discover)’ 기사에는 60여 건의 댓글이 달렸다.

 

디스커버지의 케이스 클로어(Keith Kloor) 기자는 로빈 맥키 기자를 ‘과장되고 호들갑스럽다’고 표현하며 마이클 그룬왈드 기자의 손을 들어줬고, The Rude Pundit 라는 블로거는 로빈 맥키 기자가 난리를 떤 것은 사실이지만 해수면이 목까지 차오르기 전에 맥키같은 호들갑스런 기후변화 전문 기자가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Weatherdem’s weblog를 운영하는 블로거는 ‘맥키의 기사는 마이애미에서 공들이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 사업에 맥빠지게 제동을 거는 것’이라고 비난했고, 한 트위터리안은 ‘마이애미와 섬나라 국가들은 시간적 차이만 있을 뿐 존재적 위협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라며 마이클 그룬왈드 기자의 비난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두 기자의 설전이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그것도 정치적인 연관성이 없는 기사가 이 정도로 이슈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기후변화 이슈에 대한 미국과 영국 사회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장마, 태풍 등 일상 생활과 밀접한 주제를 다루지 않는 기후변화 관련 기사는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그나마 장기적인 기후변화의 영향을 언급하는 기사는 더 이상 신문지상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둘째는 두 기자의 진실공방은 ‘기후변화는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논쟁이라는 점이다.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당장 마이애미가 침몰하고 있느냐 아니냐에 대한,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의 정도에 대한 의견의 차이인 것이다.

 

이번 공방의 핵심은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한 경고가 어느 정도까지 진실로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점인 것 같다. 기후변화 회의론이 존재한다면, 그 반대에 기후변화 히스테리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의 크기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그 경고가 히스테리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도 어려운 것 같다.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대처해도 늦다‘는 목소리와 울리히 벡 교수와 같이 ‘해방적 파국’의 개념으로서 기후변화를 고찰하자는 주장이 혼재하면서, 다양한 담론이 양산되고 있다. 하지만 만약 대처해도 이미 늦은 것이라면 대처할 필요 조차 없는 셈이니, 비관적인 종말론의 함정에 빠지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이제 더이상 과학의 문제가 아니며, 바야흐로 그 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 인간성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