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4월25일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5,5ㄴ-14
복음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5-20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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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4월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오늘은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이다. 마르코 복음서를 저술한
마르코(+ 74년경)는 바르나바의 사촌이며,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이다. 마르코는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수행하여 제1차
전교여행을 함께 하였지만, 밤필리아에서 바오로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마르코는 사도 베드로가 “내가 아들로 여기는 마르코”
라고 할 정도로 베드로의 사랑 받는 제자였다.
마르코는 60-70년에 복음서를 집필하였고, 그것은 주로 베드로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여 쓰여졌다. 지금은 베니스의 수호자이며,
베니스의 마르코 대성당에 유해가 안장되어있다고 한다. 마르코
복음사가를 표시할 때 사자로 표현하는 것은 복음의 시작이 광야에서
외치는 요한이 나타나는데 그 소리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사자후
같다고 하여 사자로 표시하고 있다.
복음: 마르 16,15-20: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15절)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세상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무지렁이였고
말재주도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만민에게 가르치도록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을 파견하셨다는 것을 하느님의 권능으로 온
인류에게 증언하였다. 사도들이 이렇게 파견된 것은 하느님의
뜻이었으며 세상의 모든 이들이 자기의 창조주를 알아 뵙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복음 선포는 모든 나라와 도시에 있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다. 그분의 섭리는 온 우주를 통틀어 펼쳐지고 있다. “너희는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16절) 신앙은 신경을 통하여 교육된다. 신경은 최대한
요약된 형태로 외우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믿어야 할 바를 간략하게
규정해 놓은 것이다. 우리 신자들은 그에 대한 설명을 들음으로써
성숙해지고, 겸손과 사랑의 튼튼한 토대 위에서 이해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에 합당하게 감사드려야 한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17-18절) 당시 사도들을 통하여 행했던 일이 오늘에도
영적인 형태로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다. 사제들은 구마은총으로
안수함으로써 악령이 머물지 못하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인은 자신의 삶으로 온 힘을 다하여
창조주의 영광과 권능을 선포하는데 이것이 새로운 언어를 말하는
것이다.
훌륭한 권고로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악의 불을 끈다면, 그것은 뱀을
없애는 일이며, 악하게 유혹하는 말을 듣고도 악에 끌려 다니지
않는다면, 독을 마시고도 해를 입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표징은
영적이고 우리를 생명으로 이끌어 주기에 더욱 큰 것이다. 이러한
은사들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도록 사도들이 먼저 받았고,
그 다음에게는 믿는 이들에게 주어졌다. 이 은사들은 그것을 행하는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믿지 않는 이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표징으로 그들이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19절) 부활절에는 주님의 부활이 우리 기쁨의
이유였지만, 이제는 그분의 승천 때문에 기뻐한다. 보잘것없는 우리
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높이 현양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복을 누릴 수 있도록 부활하신 후
당신 제자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승천하셨다. 하느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가 완성되기까지 아버지 오른편에 계시기 위해 육체적 현존을
끝내셨다. 여기서 오른쪽은 장소적 개념이 아니다. 오른쪽이라는 것은
복됨의 의미이다. 인간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이 복됨 속에는
오른쪽만 존재한다. 이제는 하느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우리와 함께
계시는 참된 “임마누엘”이 되신다.
이제 제자들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떠났다. 그들은 복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었다.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기적들도
그분의 가르침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결국 기적을 행하시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복음을 전한다고 한다면,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복음 선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참된 도구가 되어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더욱
확실히 드러나는 삶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하자.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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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겸손의 옷을 입으십시오!/양승국 스테파노신부
2018년 나해 4월25일 성 마르꼬 사도 축일
겸손의 옷을 입으십시오!
지난 4월 13일 저희 살레시오회 관구관 대성당에서는 두 형제의
사제서품식 미사가 있었습니다. 영성체후 기도 끝에 진행된 간단한
축하의 자리에서 제게 한 마디 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오랜 세월의 양성 기간 끝에 거룩한 사제로 거듭난 두 형제의 얼굴을
바라보니, 참으로 기쁘고 가슴벅찼습니다. 동시에 다양한 느낌과
감정들이 제 머릿속에서 교차되었습니다.
고마움, 행복감, 대견스러움, 기대감, 등등. 그러나 반대로 이제
사목자로서 세상의 거친 들판 앞에서게 될 형제들을 생각하니, 걱정,
우려, 미안함, 연민의 정도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두 새
사제를 향한 저희 말투가 자신도 모르게 날이 서 있었습니다.
“부디 사제 서품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서품이 승진하는 것, 벼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마음에
꼭 담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회로 치면 이제 여러분은 사원
가운데서도 신입사원, 신입사원 가운데서도 수습사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제와 수도자로서 반드시 갖춰야될 가장 기본적인 덕인 겸손의 덕을
늘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서 겸손이
빠져나가고 나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있을 자리는 높은 자리, 고상한 자리가 아니라, 이 세상의
가장 낮은 밑바닥이요, 세상의 끝이라는 것도 잊지마십시오.
이제 사제가 되었으니, 그간 지긋지긋하게 해온 청소나 빨래,
설거지와는 작별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파릇파릇한 수습사원이니만큼, 더 자주 운동장에 나가고, 더 자주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그들과 동고동락하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뒷짐지고 운동장 밖에서 어슬렁거리지 마시고, 지금보다 더 깊숙히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 제일 열심히 뛰시기 바랍니다.
수련 시기 때, 우리 모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씀들을
회상해보시기지 바랍니다.
‘바도이오 파초이오!’(Vado Io, Faccio Io) 힘든 사목지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가 가겠다고 외치기 바랍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제일 먼저 손을 들기
바랍니다.”
오늘 첫번째 독서인 베드로 1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겸손의 덕에 대해
강조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베드로 1서 5장 5절~6절)
베드로 사도, 예수님의 수제자로 살던 시절, 자신에게 있어 늘
부족했던 겸손의 덕이 늘 가슴에 사무쳤을 것입니다. 세번에 걸친
수제자 배반 사건 이후, 철저하게도 무너져 내린 이후, 눈가가 짓물
정도로 피눈물을 흘린 이후, 그는 비로서 참된 겸손의 덕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깨달았습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그토록 처절한 체험, 절절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외치시니, 그 가르침이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겸손의 옷을 입으십시오!”
“하느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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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 15)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4월25일 수.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15)
마르코 복음을 다시 펼쳐 읽습니다.
복음은 살아있는 진실된 만남입니다.
마르코 복음을 통해 몰랐던 예수님이 어느새
사랑하는 예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랑을 품지 않고서는 결코 쓰여질 수 없는
복음의 진실된 기록입니다.
마르코 복음 안에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구원의 길이 듬뿍 담겨있습니다.
구원의 걸음걸음을 기쁘게 내딛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삶이란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처럼 하느님을
만나기위한 여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코의 여행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받아들임의 여행이었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회개 없이 깨어날 수는 없습니다.
성 마르코 복음사가의 행간의 삶을 만나는
은총의 축일이 되길 기도 드립니다.
강과 호수를 건너고 굽이굽이 산을 넘었을
마르코의 열정을 다시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먼 길을 돈 만큼 더 깊이 예수님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가장 먼저 쓰여졌고
가장 짧고 간결하기에 그 의미는 깊고 깊습니다.
성 마르코 복음사가가 말하고 싶었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좌절과 희망 사이에 십자가의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선포하고 있습니까.
복음을 가장 먼저 선포하는 우리들이길 기도드립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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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 마르꼬 복음사가 축일
2018년 나해 4월25일 수. 성 마르꼬 사도 축일
지난 성소주일을 준비할 때입니다. 다른 것들은 계획을 세우고,
공문을 보내고, 회의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있었습니다. 날씨였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성소주일에는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행사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미사를 드리는 장소가 야외인데 실내로 바꾸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행사가 야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합니다. 다행히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예정대로 성소주일 행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일기예보의 정확성이 높아졌습니다. 일기예보는 이제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또 하나 우리의 삶과 가까워 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비게이션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길안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지도를 보면서 운전을 했습니다. 저는 공간 지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도를 보기도 어려웠고, 제대로 길을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면 처음 가는 길도 쉽게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단순히 길 안내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속 방지 카메라의 위치도 알려 줍니다. 길에 과속
방지턱이 있는 것도 알려줍니다. 막히는 길이 있으면 더 빠른 길로
안내를 해 줍니다. 요즘은 택시 운전을 하시는 분들도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는 것을 봅니다. 앞으로 과학이 더 발전하면 자율 주행차가
등장할 것도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르꼬 복음사가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기쁜 소식입니다. 교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기쁜 소식을
조금씩 다르게 이해하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 기쁜 소식은
예수님께서 전한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께는 세상의 나라와는
다른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고,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를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말씀과 표징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도 기쁜 소식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이 새로운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새로운
계명도 기쁜 소식이었고, 그분께서 하신 산상 설교도 기쁜 소식이었고,
그분께서 보여주신 표징들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사건들이었습니다. 죽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초대교회
공동체는 이제 새로운 차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진정한 기쁜 소식은 예수님은 죽었지만 부활하여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박해를 이겨낼 수 있게 하였고,
그 믿음이 순교를 영광으로 생각하게 하였고, 그 믿음이 땅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이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모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구원하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죄, 죽음, 악’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단식기도 후에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으셨지만 모두 물리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들 역시 ‘죄, 죽음, 악’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의 기쁨’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으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고, 하느님 오른 편에 계시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의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모두 십자가의
영성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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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뇌피셜 : 오늘의 능력말씀
2018년 나해 4월25일 수요일 성 마르꼬 사도 축일
뇌피셜
오늘은 “뇌피셜”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신명기 4장 2절 말씀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뇌피셜’이란 단어를 들어보셨습니까? 신체 부위의 하나인
‘뇌’와 공식적인이라는 의미를 지닌 영어단어 ‘오피셜(official)’을
합하여 만든 신조어입니다.
‘뇌피셜’의 뜻은 공식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닌 자신의 뇌에서 나온
개인적인 생각을 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을
확실한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을 비꼬는 경우에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간혹 성도들 중에도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생각을 마치
성경의 진리인 것처럼 말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에 맞추거나 왜곡
변조하여 하와와 같이 죄악에 빠져 구원의 길을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가감하지 마십시오!
복음의 말씀 그대로 온전하게 지킴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성도가 되십시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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