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5월6일 [(백) 부활 제6주일 (생명 주일)]
제1독서
<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렸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0,25-26.34-35.44-48
제2독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0
복음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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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형제애를 통한 일치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5월66일 부활 제6주일 : 형제애를 통한 일치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나타나야
하는 형제적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신약성서의 가장 깊은
관심을 나타내는 그 근거를 요한에 의한 서간에서 제시하고 있다.
제1독서: 사도 10,25-26.34-35.44-48: 성령의 은혜가
이방인들에게까지...
하느님의 성령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오는 데 있어서 어떤
차별을 두시지 않는다는 것을 제시해 주신다(44-46절).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게선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34-35절).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대우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도 사람을 차별대우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랑이다. 비록 살인자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제2독서: 1요한 4,7-10: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리고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았으므로
사랑의 모상이다. 이 사랑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니, 우리가
사랑한다면 우리는 삼위일체적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하느님께로부터 태어나게 된다(7절). 바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1,4)
사랑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랑을 표현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본 모습이다. 이 사랑의 계명은 주님의 "명령"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인의 "지침"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생활을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즉, 사랑이신(8절)
하느님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
복음: 요한 15,9-17: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오늘의 복음은 지난 주일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즉 그리스도께 대한 결속과 공동체적 차원에서
그리스도께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에 대해 당신의
깊은 뜻을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9절).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10절) 우리가
사랑의 관계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분 안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없이는 은총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비록 떠나시지만 사랑으로 가지와 포도나무처럼 그들과 함께 계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며, 그분과
튼튼히 연결되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11절)라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기쁨이란 우리가 그분의 기쁨이라는 것이고 그 기쁨이 충만해 진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가 그분과 친교를 나눈다는 의미이다. 우리 안에
있는 그분의 기쁨은 은총이며, 그것이 또한 우리의 기쁨이기도 하다.
이 기쁨은 우리 신앙인들 모두가 언제나 간직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기쁨은 하느님 안에서만 가질 수 있다. 그 기쁨을 갖기 위해서는
사랑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사랑을 하면서 가질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계속 나 자신과 싸워야 한다. 나를 이길 때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2절) 이것이
당신의 계명이라고 하신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이라고 하였다. 악마는 믿지만(야고 2,19 참조)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믿음과 희망이 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이 계명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모든 계명도
지키게 될 것이다. 이 사랑의 계명 안에 모든 계명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계명은 “깨끗한 마음과 바른 양심과 진실한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1티모 1,5)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고 원칙을
말씀하셨다. 이 원칙에 따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라는
말씀은 바로 ‘서로를 위해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신 분이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더 서로를 위하여
죽어야 하겠는가!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13절)
주님께서는 친구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당신의 원수들을 위해서도
목숨을 내놓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로마 5,6)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로마 5,10)고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친구들이 아니라, 원수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은 위대한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러니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8) 라고 한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4절) 주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그분과의 친교 관계에 있다는
말이다. 친구만이 친교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되는
것도, 원수가 되는 것도 모두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종에서 친구가 되게 해
주셨고 마지막으로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단계적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기에 우리의
삶이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그분과 아름다운
친교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15절)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율법 때문에 종이 되었지만,
당신의 말씀으로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당신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겠다고 하셨는데,
이제 제자들은 ‘하느님의 친구’가 되었다. 이것은 당신이 하느님의
‘말씀’이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말씀’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따랐던 ‘말씀’이며, 그가 “하느님의 벗”(야고 2,23)으로 불렸던
것이다. 지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지혜가
사랑에 도달하면, 그 지혜는 우리를 하느님의 친구로, 종이 아니라
자녀로 만든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16ㄱ절)
이 말씀은 우리가 가서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은총을 받도록 정하셨다. 그분은 우리가 기꺼이 나아가
우리의 행실로 열매를 맺도록 가르치셨던 것이다. 우리는 선하게
되도록 사악했던 우리가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느님과의 친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택되었다는 것은
이런 친교가 그 이유이다. 우리가 당신을 따르기 때문에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따름으로써 우리가
영광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열매를 맺는 삶이다. 우리의 행실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우리의 열매가 남아 있다면 우리는 확실히 남아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가지가 온 세상에
뻗어 나가게 함으로써 열매를 맺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나아가야 한다. 어떤 것을 행하고자 할 때는 이미 마음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 열매로 잘 모르고 헤매는 사람들을 인도하여 그들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고, 열매를 맺는 이가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때에 지극히 바람직한 기도를 바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17절)
사랑은 우리가 맺어야 하는 열매이다. 우리가 열매를 맺도록, 즉
우리가 서로 사랑하도록 그분께서 우리를 지명하셨다. 그것은 가지가
나무와 떨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듯이, 우리가 그분과 떨어져서는
맺을 수 없는 열매이다. 이 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이 두 사랑의 계명이 우리의 열매이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라고 하였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여 새 계명을 지키는 우리가 되도록 은총을
청하자.
-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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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부활 제6주일
2018년 나해 5월6일 부활 제6주일 (생명 주일)요한 15,9-17
우리는 부활시기의 정점에 와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6주간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부할 제1주일의 주제는 ‘갈망’입니다.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돌아가신 그분의 몸이라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적성
성당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자매님이 서울에서 적성성당으로
미사참례를 하러 오셨습니다. 새벽에 집을 나와서 버스를 3번
갈아타고 오셨습니다. 저의 강론을 듣고 싶어 하셨지만, 자매님은
이미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갈망은 의무감보다 강합니다.
갈망은 시련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우리들을 구원하고자하는 갈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 제2주일의 주제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토마야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참으로 복되다.”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났습니다. 곧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만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만남의 중심에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치유의 기적을 보여 주실 때 ‘믿음’을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부활 제3주일의 주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성경 말씀을 풀이해 주셨습니다. 저는 서품성구로 시편
126장 5절의 말씀을 정했습니다. “눈물로 씨 뿌리는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얻으리라.” 사제생활 27년을 하면서 이 말씀을 늘
마음에 두려고 합니다. 중용 23장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부활 제4주일이 주제는 ‘착한목자’입니다. 착한목자는 양들의 음성을
알아듣고, 양들도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성직자, 수도자들은 착한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합니다. 착한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합니다.
착한목자는 양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합니다. 착한목자는
진실해야 합니다. 교회가 활력을 잃어간다면,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착한목자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착한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착한목자인 부모는 자녀들에게 기도의 모범, 신앙의 모범,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부활 제5주일의 주제는 ‘포도나무와 가지’입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어야만 성장하고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인 삶의 장소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과의 친교가 없으면 잘려나간 가지처럼
말라버리고, 버려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살기 편한 집은 있지만
따뜻한 정이 흐르는 가정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편리한 시설과
아름다운 성당 건물은 있지만 기도와 사랑이 넘치는 성당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 하느님과의 친교는 구체적인 우리의 행동과 사랑을
통해서 드러나야 합니다. 이것은 또한 질서와 자유의 조화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를 통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부활 제6주일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의 사랑은 죄인까지도 품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고통과 수난을 감수하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끝까지 믿어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죽기까지 열정을 다하는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은 어쩌면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해 줄 수 있는 사랑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 잠시 인사를 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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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돈보스코, 보시는 것처럼 저는 지금 행복이 가득한 곳에
서 있습니다!
2018년 나해 5월6일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돈보스코, 보시는 것처럼 저는 지금 행복이 가득한 곳에 서 있습니다!
즉위 5주년을 맞이하신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세번째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ultate)를
반포하셨습니다. 복음의 기쁨, 사랑의 기쁨에 이어 세번째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전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신 ‘성덕(聖德)에로의 초대장’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성덕’과 관련한 제2차바티칸공의회의 핵심 정신인
‘보편적 성화’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강조하셨습니다.
“성인(聖人)의 길은 주교나 사제, 수도자의 전유물이 절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처지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삶을 살도록 초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건조하고 평범한
신앙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성인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성덕이란 예수 그리스도 삶의 신비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주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특히 소외된 이들에 대한 친밀성, 그분의 가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는 것이 성덕입니다.”
따지고 보니 주님께서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시는 평신도들께 아주
적극적인 초대장을 보내고 계십니다. 성인이 되는 길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각자 몸담고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각자에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서, 각자 고유한 벙법으로 성덕의 길을 걸어가시는
것입니다.
주방에서 일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은 최선을 다해 요리하는 것이
성인이 되는 길입니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도마질을 하는
것입니다. 배우고 익힌 방법에 따라 정성껏 지지고 볶는 것입니다.
고객들이 흡족해하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리의 달인’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다 조금 더 보탠다면, 요리할 때 억지로, 짜증내며 하는 것이
아니라 환하고 기쁜 얼굴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만드는 요리에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요리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요리하고 계신다면 그는 이미 살아있는
성인입니다.
1855년 6월 24일 돈보스코가 마흔살 되던 해 영명축일 때의 입니다.
오라토리오 아이들은 성극이나 성가, 합창이나 시낭송 등, 정성껏
축제를 준비하여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자신을 향한 아이들의
지극한 사랑에 크게 감동을 받은 돈보스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자 받고 싶은 선물을 쪽지에 적어 내게 주세요. 뭐가 됐든 여러분의
기대에 실망을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어요.”
이 대목에서 돈보스코의 양떼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영명 축일에 이것 저것 선물이나 금일봉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오라토리오의 수많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선물을 해준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을 크게
돌아보게 하는군요.
수많은 종이 쪽지들을 들고 당신 사무실로 돌아온 돈보스코는 하나
하나 쪽지를 열어봤습니다. 어떤 아이는 작은 성모상을 신청했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운동화를 적었습니다. 짓궂은 한 아이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초콜릿 100킬로 그램’
수많은 쪽지들 가운데 유난히 돈보스코의 눈길을 끄는 쪽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도미니코 사비오(1842~1857)가 쓴 것이었습니다.
“성인(聖人)이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깜짝 놀라면서, 다른 한편으로 크게 감동받은 돈보스코는 도미니코
사비오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비오! 성인이 되는 비결을 네게 선물하고 싶구나. 자,
여기 있다. 첫째 명랑하게 지내는 것이다. 둘째, 네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일, 공부와 기도의 의무에 충실한 것이다. 셋째, 친구들에게
선을 베풀거라. 설령 네게 희생이 따르더라도 항상 네 친구들을
도우렴. 이 세가지만 잘 지켜도 충분히 성인이 될 수 있단다.”
천사표였던 도미니코 사비오는 돈보스코가 선물로 주신 세가지
성화의 비결을 마음 속 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오라토리오 안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매일
매일 충실히, 지속적으로, 일상적으로...
그 결과 도미니코 사비오는 오래 지나지 않아 꿈에 그리던 성인의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15세 되던
1857년 3월 9일 병사(病死)한 그는, 1954년 6월 12일 비오 12세
교황님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한번은 세상을 떠난 도미니코 사비오가 돈보스코의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보스코, 보시는 것처럼 저는 지금 행복이
가득한 곳에 서 있습니다.”
이어 도미니코 사비오는 돈보스코에게 장미, 바이올렛, 백합, 용담꽃,
밀이삭이 어우러진 풍성한 꽃다발을 한 아름 건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꽃다발을 신부님의 아들들에게 보여주세요. 장미는 사랑을,
바이올렛은 겸손을, 용담꽃은 회개를, 백합은 순결을, 밀이삭은
성체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답니다. 돈보스코, 그럼 안녕히!”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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