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5월16일 [(백)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제1독서
"나는 하느님께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굳건히
세우시고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그것을 나누어 주실 수 있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0,28-38
복음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ㄷ-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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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부활 제7주간 수요일
2018년 나해 5월16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지난주에는 사제연수가 있었습니다. 사회현상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들었습니다. 세상은 인권, 공동선, 보편적 재화의 나눔,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을 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돈, 노동,
땅에 대한 인식입니다.
돈은 거래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돈은 단순히 거래의
수단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각종 금융 상품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은 하나의 시장이 되고 있습니다. 돈이 수단을 넘어서
목적이 되고 있습니다. 모 증권사에서 잘못 입력된 실수로 몇 백조의
돈이 하루에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노동은 인간의 존엄을 드러내는 행동이었습니다. 노동을 통해서
가족을 돌보고, 노동을 통해서 이웃을 돕고, 노동을 통해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노동은 하나의 시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노동은 재화를 생산하는 수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노동은 퇴출되고 있습니다.
땅은 우리가 거주하는 보금자리였습니다. 땅은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땅도 시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시장이 형성되었고, 사람들은 땅을 마련하기 위해서 땀을
흘려야 합니다. 시장이 된 땅은 부유한 사람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평생 일을 해도 머물 수 있는 땅을 마련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교회는 돈, 노동, 땅이 시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존엄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그 방법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 양 떼를
해칠 것임을 나는 압니다.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고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였습니다.” 돈, 노동, 땅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시편 8장을 묵상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님! 제 자신을 알고 , 당신을 알고 싶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당신 뿐 당신만을 향한 사랑으로 일하렵니다. 당신이
커지도록 저를 낮추렵니다. 오직 당신만을 생각하며 살렵니다. 저
자신을 버리고 당신만을 따르렵니다. 당신 보호를 받고자 당신께
피신하오니 당신 친히 뽑으신 이들 사이에 저도 있게 하소서. 저
자신을 두려워하며 당신을 경외합니다. 저를 불신하고 오직 당신만을
믿으며 순명합니다. 제겐 오로지 당신뿐 제 자신에 애착하지 않고
당신 향한 사랑으로 가난해지렵니다. 주님, 사랑하오니 당신 눈길을
제게서 돌리지 마시고 당신을 뵙고 영원히 즐기게 하소서, 아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갈등과 아픔을
만나게 됩니다. 산을 넘으면 또 산이 나오듯이 우리는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기쁨도 찾아오고,
슬픔도 찾아오고, 즐거움과 분노도 찾아옵니다. 모든 갈등과 아픔을
벗어나서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고통과 아픔을 이겨 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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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5월16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요한17,11-19)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세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데 천국을 살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게 말하는 것같이 쉬운지 아십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신부님은
자꾸 하늘을 보라고 하시는데 하늘을 보니 제가 땅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땅에 있으니 땅의 처지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지 어찌합니까! 그래도 하느님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주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진리 안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곧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사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곧
진리이십니다. 길이신 예수님을 따라 걸으면 진리인 말씀을 발견하고
깨닫게 되며 결국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면 세상이 그를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빛으로 나아가는 길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요한1,5). 그러므로 두려워
마십시오. 지금 당장 힘에 겹더라도 반드시 빛의 진가는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요한3,21).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2,4). 그리고 육화를 통하여 인간이 되신 진리인
(요한14,6)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정받는 사람으로, 부끄러울 것 없이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일꾼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2티모2,15). 사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1요한2,3-4).
우리가 비록 땅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진리를 거슬러 살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험해지면 험해질수록,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믿는 이들이 진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은
남의 탓이 아니라 내가 빛나는 삶을 살지 못한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속하지 않으신 주님의 뒤를 이어 세상에 있으면서도
이미 천상을 사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어둠을 탓합니다.
믿는 이들이 제대로 살지 못한다고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모순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나만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못 마땅한 것이 보이면 보일수록 더 많이
사랑하고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련의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와 깊은 일치를 이루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온전히 순명하셨습니다. 그 그리스도의
거룩함으로 인해 제자들이 거룩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의
일치 안에서 거룩함을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혹 죄에 떨어졌다면
주님의 거룩함에 온전히 맡겨드려 다시 거룩함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복음의 기도는 ‘하나가 되게 하소서.’ ‘악에서 지켜
주소서.’ ‘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로 요약 됩니다. 그 기도가 풍성하게
열매 맺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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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나는 달릴 곳을 다 달렸습니다!
2018년 나해 5월16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나는 달릴 곳을 다 달렸습니다!
저희 살레시오회는 창립자 돈보스코의 의도에 따라 철저하게도
선교지향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살레시안들은
그야말로 ‘만방에 나아가서’ 현존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134개국에서 파견되어 사목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저희 한국 관구도, 사제나 수도자뿐만 아니라 평신도들도 해외
선교사로 파견하고 있습니다. 파견하기 전 소박하지만 선교사 파견
예식도 거행합니다. 가족들과 지인들도 초대해서 파견 미사를
거행하고, 선교사 메달도 수여합니다. 물설고 낯선 땅에서 겪게 될
고초가 크겠지만, 다들 행복한 얼굴입니다.
한국 교회가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큰
기여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라, 참으로 고맙고 대견스럽니다. 한국
출신 선교사들의 해외 파견은,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먼 길을 달려와
청춘과 목숨을 바친 수많은 외방 선교사들에게, 참으로 큰 기쁨이요
보람일 것입니다.
끔찍한 박해가 계속되던 시절, 내일을 기약할 길 없던 정치적
대변혁의 시기, 조선이나 중국, 일본 등 극동 아시아 선교사로
파견된다는 것은, 당시 주님을 위해 순교하겠다는 명백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0대 젊은 선교사들은 비장하면서도 해맑은
얼굴로 장상들앞으로 선교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파견 미사 직전
선교사들은 유언서를 작성했습니다. 파견미사가 끝나면 동료들, 부모
친지들과 일일이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지상에서 나누는
마지막 인사라는 것을 잘 알기에 ‘살아서 다시 만나자!’는 말은 꺼내지
않았습니다.
오늘 날도 납치와 테러, 국지전이 끊이지 않는 지역의 살레시오
회원들은 연례피정이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때, 이런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형제여, 잘 가시오. 주님께서
허락하셔서 내년에 다시 만날 수 있으면 만나고, 그게 안된다면 저
위에서 만납시다.”
에페소 교회 원로들에게 양떼를 맡기며 떠나가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그들과 지상에서
나누는 마지막 만남이요 대화이기에, 한 마디 한 마디가
소중했습니다. 더 이상 얼굴 볼 일이 없기에 건네는 당부가 참으로
간곡하고 애절합니다.
“내가 삼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며 늘 깨어 있으십시오.”(사도행전 20장 31절)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사도행전 20장 33~35절)
신신당부에 또 신신당부를 하고 난 바오로 사도는 이윽고 무릎을
꿇고 에페소 교회 원로들과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모두 한참을 흐느껴 울었습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이별임을
직감했기에, 너무나 안타까워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달릴 곳을 다 달린 바오로 사도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춘다는
의미로 제자들은 그를 배 안까지 배웅하였습니다.
초세기 교회 이방인의 사도로서 복음 선포의 최일선에 서서 혼신의
힘을 다했던 바오로 사도, 달릴 곳을 다 달린 바오로 사도의 당당한
고백이 참으로 멋집니다. 너무 부럽습니다. 복음 선포에 있어,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해내지 못한 큰 기적을 성취했으면서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남의 재물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나는
내게 필요한 것을 내 두 손으로 장만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선포하면서도 천막을 계속
짰습니다. 천막을 잠시 내려놓고 여러 초대교회 공동체에 서한을
썼습니다. 이렇게 그는 투잡 쓰리잡, 포잡에다, 복음선포로 하루 해가
짧았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완벽한 조건 속에서, 너무나 풍족한 가운데서도
복음 선포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 입만 열었다하면 폭포수처럼
흘러나오는 불평불만 투성이인 오늘 우리의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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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삶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5월16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삶
복음: 요한 17,11-19: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11절)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지켜주셨던 이들을 이제 아버지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지켜주시기를
기도하신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께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베드로의
믿음도 지켜졌다. 움츠러들었었지만 곧바로 회개가 뒤따랐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청하신다. 하나라는
말은 ‘어떤 조화를 이룬 상태’를 말한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조화로운 상태, 일치된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제자들이 주님의
사랑 안에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지켜오셨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께서 주신
것을 하나도 잃지 않을 것(요한 6,39 참조)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7)라고 하셨다. 그들이 잃는 자가 되는 것은 그분이 버리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떠나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선택의 결과이다.
그래서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12절) 하신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13절) 이 기쁨은 바로 일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다. 주님께서는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셨다. 그들이 참으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기쁨은
충만해지고 이것이 장차 올 세상의 평화와 복됨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차지하려면 이 현세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충실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세상은 제자들을
미워했다. 그것은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14절) 세상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
때문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2코린 4,18)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를 미워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이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게 산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이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15절) 하고
기도하신다. 아직은 세상에 있어야 하는 그들을 악에서 지켜달라고
하신다. 그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지만 세상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7절)라고 기도하신다. 세상에 속하지 않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은 그들이 더욱 성덕 안에서 자라게 하시려는 것이다. 더욱
거룩하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진리를 본받음으로써 덕을
갖추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 진리는 아버지의 말씀이며 그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18절) 예수께서 파견하신 이들은 사도들이다. 사도라는
말은 ‘파견된 이’를 뜻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죄 많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으로 보내시고, 그분의 아들은 당신께서 죄의
더러움으로부터 거룩하게 해 주신 이들을 파견하셨다. 사도들을
파견하신 것은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이며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그 아버지의 말씀은 바로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19절) 제자들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는 말씀은 아버지께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친다는
말씀이다. 모든 제물은 거룩하다고 한다. 특별히 거룩한 이들은
하느님을 위해 따로 떼어진 이들이다. 그러기에 “이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라는 의미도 그들도 제물로 바친다는
의미이다. 제자들의 머리가 그렇게 된다면 지체들도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로마 12,1)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신이 거룩하게 되도록 언제나 깨어있어야
한다. 우리는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질 것이다. 진리는 한
처음부터 계시던 하느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육 안에서 하느님에 의해 거룩해지는 동시에 당신의 신성으로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우리가 그분 안에서 더욱
거룩해지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도록 하자.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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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나의 띵곡 : 오늘의 능력말씀
2018년 나해 5월16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나의 띵곡
오늘은 “나의 띵곡”이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 말씀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띵곡’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명곡’의 ‘명’에 모양이 비슷한 ‘띵’ 글자를 붙여서 ‘이름난 곡’,
‘뛰어난 곡’의 의미를 가진 명곡과 같은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이 단어는 온라인상에서 많이 쓰고 있으며
‘인생 띵곡’, ‘갓(god)띵곡’ 등과 같이 쓰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만의 ‘띵곡’은 무엇입니까?
며칠 전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저마다 노래실력을 한껏 뽐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랜 추억의 노래들을 마치 가수가 된 양 멋들어지게 부르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 인생의 띵곡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지음 받은 존재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인생 띵곡은 바로 “하나님 찬양”이어야 합니다.
해뜨는 데에서부터 해지는 데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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