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5월30일 [(녹) 연중 제8주간 수요일]
제1독서
"여러분은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해방되었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1,18-25
복음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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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연중 제8주간 수요일
2018년 나해 5월30일 연중 제8주간 수요일
교구청 마당에는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있습니다. 제 방은
5층이기 때문에 나무와 마당을 볼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아름답게 춤을 춥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이 춤을 추는 것인지, 나뭇잎이 춤을 추니 바람이 부는
것인가! 분명 바람이 불기에 나뭇잎은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뭇잎이 없다면 바람이 불어도 춤추는 나뭇잎을 볼 수 없습니다.
겨울에는 더 많은 바람이 불지만 춤추는 나뭇잎을 볼 수 없습니다.
모두 낙엽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건강검진을 받는 날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제가 몸을 어떻게
돌보았는지 숙제 검사를 받는 것 같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지만 건강검진은 언제나 긴장과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음주를 자주 하는 것도
걱정입니다. 건강검진은 2가지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건강문제를 미리 점검하는 것입니다. 미리 발견하면 치료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숙제가 있으면 공부를 하듯이, 건강검진이
있으므로 건강을 위해서 자신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올해도 숙제
검사를 잘 받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인들은 몸의 건강도 잘 돌보아야 하지만 영혼의 건강도 잘
돌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영적으로 메말라 있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메마름을 채워주려는 노력을 게을리했습니다. 한국교회의
건강검진을 했던 책을 읽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외형적으로 성장을
하였지만,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크게 네 가지라고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교회 성장에만 몰두하여, 하느님의 뜻과 진리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일은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재정의
3.88%만 불우이웃 돕기와 사회에 대한 봉사에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둘째는 교회가 총체적인 인간과 세계의 해방을 위한 하느님 나라
운동을 해야 하는데, 영적인 구원을 위한 기관과 조직으로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율법과 제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기복적이며 내세 지향적인 신앙으로 인해 개인의 영혼 구원에
치중하면서 세상에서의 책임과 공동체적인 의무를 소홀히 하는
점입니다. 사회적인 모순과 구조적인 악에 대해서 교회는 공동선을
추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넷째는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분으로 경배 될 뿐, 우리도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야 하는 삶의 모델로는 이해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건강을 위한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립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가 되려는 사람은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습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합니다.
세상의 기준인 성공, 명예, 권력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 삶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고 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혼이
순수해져야 한다고 합니다. 주 예수를 믿는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새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결실과 영광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니면 그곳이 길이 되는 것입니다. 길이 있어서 사람들이
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희생의 길, 봉사의 길, 사랑의 길, 나눔의 길을
가다 보면 저 멀리서 하느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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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죽기까지 낮추시어
2018년 나해 5월30일 연중 제8주간 수요일
<죽기까지 낮추시어>
복음: 마르코10,32-45
멜랑콜리아(Melancholia: 2011)는 우울증에 관한 영화입니다. 감독
자체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하니 우울증에 대해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다고들 합니다.
여기서 우울증은 지구를 향해오는 행성 멜랑콜리아(행성 이름 자체가
‘우울증’입니다)로 표현됩니다. 당연히 그것에 부딪히면 파멸하고
마는 지구는 우울증을 앓는 우리 자신을 상징합니다.
저스틴이라고 하는 여자는 우울증을 숨기고 결혼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우울증 때문에 모든 것을 망치고 맙니다. 사람도 두렵고
새로운 결혼생활도 두렵고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도 두렵습니다.
결국 결혼한 날 이혼합니다.
그래서 클레어라고 하는 언니 집에 얹혀살게 됩니다. 클레어는
아들과 남편이 있는 보통 가정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뉴스가 나오자 각자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과학적
사고를 지닌 남편은 자신의 계산대로라면 절대 충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클레어는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꼬마 아들은 죽음을
직시하며 담대합니다. 클레어는 이미 우울증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피할 수도 없음을 압니다.
남편은 결국 그 행성이 정확히 지구에 충돌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약을 먹고 자살합니다.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결국 죽음 앞에서
맞게 되는 두려움입니다. 죽음 앞에서 자신 있을 과학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클레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계속
불안해합니다. 도망쳐보지만 갈 데가 없음을 알고 다시 돌아옵니다.
오직 저스틴과 클레어의 아들만이 행성이 지구에 부딪히는 순간까지
눈을 감고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아마 이 영화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어차피 우리 모두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데 그 우울함이 곧 죽음이라는 공포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너무 두려워 먼저 죽어버리는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우울증도 있고, 그냥 담대하게 그
우울함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말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받아들여야 할 것, 우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진정한 우울증일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죽음 앞에서 담대할 수 있을까요? 담대할 수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명확히 알게 됩니다. 아니 명확히 알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 담대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며 당신께서는
거기에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져 사형선고를 당하고
다른 민족들에게 조롱당하고 침 뱉음 당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될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이런 죽음이 예수님에게만 해당하는 것인 줄 알고 야고보와 요한은
당신께서 영광에 싸여 오실 때에 한 사람은 당신 우편에 한 사람은
당신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받으시게 될
십자가의 세례를 그들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결국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당신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누구나 따라야
한다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죽이지 않고서는
누구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와 부활은
하늘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세례’와 같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곳에
살기 위해서는 그 곳에 알맞은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죽음은 새로 태어남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늘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살아가는
것도 꼭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높아지느냐는 당신이 결정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미
결정 돼 있으니 그것은 신경 쓸 바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다만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유념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겸손’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곧 자아의 죽음을
의미하는데 자아가 곧 교만이기에 우리는 모두 교만을 매달아 겸손한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기 위한 여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국 인생의 의미나 목표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인데, 누구나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지만 그 십자가의 길이란 하늘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마음으로 가서는 안 되고 이 세상에서부터 가장
낮은 자, 비천한 자로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십자가에 자신을 매달아 죽임이 곧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길로 가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겸손해져야 누군가가 또 내 겸손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나도 그 겸손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 십자가 없는 겸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 분”(필리 2,8)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이미
우리가 겸손해지려고 하면서부터 시작되고 완전히 우리 자아가 죽을
때 완성됩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어차피 맞아야 할 죽음을 향해
가며 우리가 해야 하는 유일한 일입니다. 죽음 앞에서 우울하거나
두렵지 않기 위해서는 죽음이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새로 태어나는
세례와 같으며 겸손의 길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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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그 놀라운 삶의 전환
2018년 나해 5월30일 연중 제8주간 수요일
그 놀라운 삶의 전환
교회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사목교서인 베드로 사도의 첫째 서간을
묵상할 때 마다 참으로 큰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총
7페이지 밖에 안되는 짧은 편지이지만, 이 편지를 통해 우리는
초대교회의 공동체 정신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초대 교회의 본질적인 신학적 핵심 사상을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첫째 서간의 말미에서 베드로 사도는 솔직하게
밝힙니다. “나는 성실한 형제로 여기는 실바누스의 손을 빌려
여러분에게 간략히 이 글을 썼습니다.”(베드로 1서 5장 12절)
수제자로 불림 받기 직전까지 어업에 종사했던 베드로였기에,
가방끈이 짧았던 관계로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그럴듯한 편지를
직접 쓸수가 없었겠지요. 그래서 가방끈이 긴 실바누스의 손을 빌려
편지를 쓴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5장 12절) 비록 협조자의 도움을 받아 쓴 편지지만
편지 안에는 게파(Kephas), 베드로 사도의 영성과 정신, 그의 덕행과
인품이 생생이 살아숨쉬고 있으며,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처음 불림 받았을 때의
나약하고 부족한 모습 대신, 이제는 진정한 수제자이자 초대교회
수장으로서의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이 베드로 사도의 서간 전체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서간 안에는 바닥체험을 통해 성숙된 베드로 사도의 완전하고 항구한
신앙이 엿보입니다.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완벽한 일치,
십자가에 대한 지극한 사랑, 초대교회 양떼를 향한 최고 사목자로서의
따뜻한 부성애, 장상으로서의 책임의식 등이 서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 사도의 서한은 초대 교회 신자들뿐만 아니라 박해
시대 교우들,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고
있습니다.
이 서한에서 돋보이는 강조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지극히 낙천적이고
낙관적인 인생관과 세계관입니다. 이 지상에서의 시련은 ‘잠시’ 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사의 덧없음, 그리고 주님과 그분
말씀의 영원성을 설명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한 마디 한 마디 말씀도 참
은혜롭습니다.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이 깨끗해져
진실한 형제애를 실천하게 되었으니,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베드로 1서 1장 22~23절)
한때, 기고만장, 좌충우돌, 허세당당하셨던 베드로 사도셨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년 지나지 않았는데, 급격한 인간적, 영적 성숙을
이루셨습니다. 그 놀라운 성장과 변화가 참으로 부럽습니다.
단 기간 안에 엄청난 성장과 변화를 성취하신 베드로 사도 앞에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십년전, 이십년전, 오십년전에 반복하던
극단적 미성숙의 삶을 오늘도 계속 반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둘도 없는 진리에 철저하게 순종함으로써 한
마리 어린 양처럼 깨끗해진 베드로 사도였기에, 이제는 사심없고
순수한 마음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뜨거운 사랑의 용광로 속으로 완전히 들어간
베드로 사도였기에, 이제 자신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그분의
형상으로 거듭났기에, 마침내 그는 순금보다 더 순결한 사도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베드로 사도의 신앙 여정 안에서 일어났던 그
놀라운 삶의 전환, 은혜로운 회심(悔心), 천금보다 값진 깨우침의
은총이 일어나길 간절히 청합니다.(양승국 스테파노 SDB)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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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르 10, 45)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5월30일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 45)
잠시 머물다 떠날 우리의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우리들에게
어디로 가야할지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끝내 목숨을 주신 분께로 돌아가야 할 우리의 삶입니다.
우유부단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도께서는
당신 목숨을 친히 바치십니다.
우리 목숨을 정화하시는 참된 목숨이 되십니다.
목숨을 바치시는 당신의 삶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바치는 목숨이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기심에 굴복당하지 않습니다.
소중한 인격들이 서로를 물고 뜯는 악순환을 멈추게
하시는 말씀이 목숨을 파고 듭니다.
섬기고 바쳐야 할 우리의 여정입니다.
참된 긍정은 참된 섬김에서 비롯됩니다.
목숨을 긍정하고 감사하는 길은 목숨을 바치는
사랑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돌아가게 하는 목숨이 있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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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웃음 만들기 : 오늘의 능력말씀
2018년 5월30일 수요일
웃음 만들기
오늘은 “웃음 만들기”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4절 말씀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웃음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웃음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웃게 만들어야 내가 웃을 수 있지”라고
말들을 하지요. 그래서 우리가 쉽게 웃지를 못합니다.
웃는 얼굴이 아니라 늘상 찌푸린 얼굴, 인상 쓰는 얼굴
그것으로 끝나는 것 아닙니까?
저도 예전에는 참 많이 웃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만히 있으면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웃는 연습을 시작했지요.
처음 웃는 연습을 하려고 하니까 얼마나 어색한지 내 자신이 보기에도
쑥스럽고 보기가 썩 좋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을 어떻게 바꿀까
생각을 하다가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려고 노력을
하고 계속 웃으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이러한 연습을 많이 하고 난 어느 날 내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표정이 달라진 것입니다. 입 꼬리가
달라졌습니다.
이제부터는 사진을 찍을 때도 개구리 뒷다리 하지 않습니다.
“창세기~”합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 속에서 개구리 뒷다리보다도
창세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쁨이 몰려오기 시작하였고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이 나의 모습
속에서 얼굴 속에서 나타나서 밝고 환한 미소천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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