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3월29일 [(백) 주님 만찬 성목요일]
[수도회] 친교와 섬김으로 거행하는 사랑의 만찬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탈출 12,1-8.11-14
○ 제2독서 1코린 11,23-26
† 복음 요한 13,1-15
**********
◈ [인천] 주님께서 먼저 몸을 굽히셨습니다.
2018년 나해 3월29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제1독서
<파스카 만찬에 관한 규칙>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12,1-8.11-14
제2독서
<여러분은 먹고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1,23-26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15
제가 아는 어떤 신부님은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신학생 때부터 오랫동안 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할 수 있지요. 이 분은 늘 소극적이었고 그래서 앞에 나서는
모습을 보인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께서 계시는 본당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와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아주 의외의 모습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글쎄 신자들의 일에 대해 아주 적극적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신자들 재교육을 위해 외부강사를 계속해서 초빙을
해서 신자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계셨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이 신부님 본인은 교육 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자들을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고 이를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왜 본인이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계속해서 이런 교육의 장을 만드시는 것일까요?
바로 신자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힘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인은 별 관심이 없어도 신자들을 위해서 그러한 자리를
계속 만드시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의 증거를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에서 행하는 발 씻김 예식을 통해서
다시금 느낄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누가 배반을 할지를 또 누가 자신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말할지를 또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제자들이 자기 살길을 찾아서 도망칠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호산나”라고 외치면서 열렬하게 환호했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고함을 지를 것도 아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침을 뱉고 뺨을 칠 것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발을
씻어 주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서로 발을 씻어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먼저 형제 앞에 몸을
굽혀야 합니다. 당연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몸을 굽히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상대방이 내 앞에 몸을 굽히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내가 몸을 굽히는 것을 피합니다.
주님께서 몸을 먼저 굽히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본을 따라야 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 역시 형제 앞에 몸을 굽혀야
합니다. 즉,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다가서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인정받고 대접받으려는 마음을 접고 대신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본을 쫓아서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습이고, 주님의 사랑이 끝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
문명의 진정한 의미는 욕망을 늘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면서도 자발적인 방식으로 욕구를 줄여 나가는 데 있다(간디).
~~~~~~~~~~
인내를 나의 것으로 만들려면?
성공을 이야기하는 책들을 보면 남다른 재주와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어떠한 순간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내를 말합니다. 즉, 인내를 통해서 성공했다는
것이지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지요. 재능과 능력이 있어도 이렇게
포기하는 습관 때문에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인내가 없는 사람은 스스로 능력이 없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교육만으로는 안 됩니다. 용기가 있는 것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참을성을 갖고 사는 인내만이 삶을 변화시킵니다.
미국의 사업가 강철왕 카네기 역시 승부를 가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참고 있으면 반드시
기회가 생긴다.’는 명언을 남겼지요. 그런데 이 인내를 나의 것으로
만들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 중요한 ‘인내’를 나의 것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 [수도회] 친교와 섬김으로 거행하는 사랑의 만찬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8년 나해 3월29일 주님 만찬 성 목요일 요한 13,1-15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친교와 섬김으로 거행하는 사랑의 만찬
교회는 성삼일 전례를 통하여 주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거룩하고 장엄하게 기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감하시며, 사랑하는 제자들과 고별만찬을 드십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한 13,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주시며 이르십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4) 빵과 포도주를 나누고,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주님의 죽으심을 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목숨 바쳐
전부를 건네주신 그 사랑을 기억하여 실천하라는 말씀이지요.
성만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친교요, 그리스도인들 서로의
친교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그리스도인들까리
하나되는 것이 성만찬입니다. 성만찬은 예수님께서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라 하신, 주고 나누는 행위를 뜻합니다. 우리의 일상도
그렇게 많은 이들과 삶을 공유하고 나누는 성만찬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나아가 성만찬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예수님의
사명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신 다음,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13,4-5). 예수님의 대야에는 사랑의
물이 담겨 있었으나, 빌라도의 대야에는 비겁함과 무책임의 물이
채워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종의 자세를 갖추시고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어주심으로써,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께서 자신을 낮추시어, 친히 인간의 발을 씻어주셨듯이, 우리도
대접받을 생각을 버리고 다른 이들을 극진히 섬겨야겠습니다. 섬김은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따라서 더 잘 섬기도록 더 큰 사랑을
지니도록 힘써야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써 당신을
내어주십니다. 그렇게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는 사랑으로, 우리 영혼의
어둠에 빛을 밝혀주십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발씻김을
거절합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이르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13,8)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사랑에 맡길 줄 알아야,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이어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13,14)고
분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낮추어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것이 바로 성만찬례와 제자직의 본질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밥으로 내어주는 사랑으로 주님의 죽음을
선포해야겠지요.
아울러 친교와 섬김의 성만찬례를 합당히 거행하도록
회개해야겠습니다. 서로 사랑으로 일치하고 섬기지 않은 채 드리는
성만찬은 오히려 주님을 모욕하는 연극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눔을 실천하지 않고 가난한 이들을 무시하는 태도로 성만찬례를
드려선 안 되는 까닭입니다. 지속적임 회개로 일상 안에서 친교와
섬김의 성만찬을 거행하는 우리이길 희망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 [서울] 주님 만찬 성목요일
2018년 나해 3월29일 주님 만찬 성 목요일
9번의 사순특강을 잘 마쳤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신 교우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는
조금 일찍 가서 본당의 미사에 참례를 하였습니다. 미사를 주례하는
것도 감사할 일이지만, 미사에 참례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신부님들의
강론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신부님께서 축성하신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도 좋았습니다. 강의를 하였지만, 제게도 묵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양동 성당에서는 외국인 신부님의 강론을
들었습니다. 잠원동 성당에서는 강의 후에 본당 신부님께서 신자
분들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연희동 성당에서는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강론을 들었습니다. 신당동 성당에서는 악의 세력과
성수의 의미에 대한 강론을 들었습니다. 중계 양업 성당에서는
신부님께서 신자 분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동창 신부님이
있던 신림 성모 성당에서는 강의 후에 모처럼 우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반포 성당에서는 보좌 신부님의 활기찬 모습을
보았습니다. 묵동 성당에서는 성지(聖枝)와 십자가에 대한 강론을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여러 성당을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신부님들의 좋은 강론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한국교회가 건강검진을 받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수도자와
사제성소가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사회가 급속하게 고령화
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도 고령화 되고 있다고 합니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에게 교회의 벽이 너무 높다고 합니다. 가난한
지역보다는 부유한 지역의 신자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대지를
마련하고, 건축을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는 신자들도 늘어나지만 교회를 떠나는 신자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본적인 신앙생활의 기준인 주일미사 참례 비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모두들 바쁘게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식사할 시간도 없는데 함께 기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파스카의 성삼일은 교회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처방전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1년 중에 가장 거룩하고
뜻 깊은 성삼일의 첫날을 시작합니다. 전 세계의 가톨릭교회는 오늘
‘주님의 만찬 미사’를 봉헌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드셨는데, 그것이 바로 최후의
만찬입니다. 이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빵을 들어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해 내어줄 내 몸이다.” 또한 포도주가 든
잔을 들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신 다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해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의 원형이고 미사의
시작입니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은 바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잊지
않았고, 예수님의 이 말씀을 따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진정한 이유를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통해서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어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아기에게 하는 일이요, 종이 주인에게 하는 일이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희생과 봉사입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신다는 것은 남을 지배하고
억누르고, 권위를 내세우고 잘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기꺼이 봉사하고 사랑하라는 주님의 뜻을
따른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만찬미사입니다. 모든 이를
품어주셨고,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을 주셨으며, 스스로 수난과
고통을 감수하셨던 예수님이십니다. 끝까지 믿어주며 하느님께 대한
열정과 확신으로 고난의 길을 묵묵히 가셨던 주님이십니다. 그런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희생을 우리도 배워야 하겠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의 그 사랑을 배우며, 우리들 또한
이웃의 아픔과 슬픔을 씻어주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내어주신 몸과 피를 받아들이듯이, 우리들 또한 우리의
이웃들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말씀이 살아 있다면,
우리들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눌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이미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 [기타] 질그릇과 보배/오늘의 능력말씀
2018년 나해 3월29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질그릇과 보배
오늘은 “질그릇과 보배”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 말씀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아무리 화려한 보석상자가 있어도 그 안에 보석이 없다면
그 상자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만약 그 화려한 보석상자에 휴지가
들어 있다면 그 상자는 휴지통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볼품없고 투박한 질그릇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100캐럿
다이아몬드가 담겨 있다면 그 질그릇이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어지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도 겉보기에는 잘난 것도 없고 강하고 귀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보배 되신 예수님,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거기 계시기에 우리는 정말 보배로운 존재 중에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잘 것 없는 내 모습의 거울은 깨버리고 존귀하고
보배로우신 예수님의 거울만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질그릇인 내 모습에 연연하지 말고 보배 되신 예수님을 빛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인천교구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 [수원] 최후의 만찬|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3월29일 성주간 목요일: 최후의 만찬
교회는 ‘주님 만찬 미사’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셨다. 이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그들에 대한
크나큰 사랑을 드러내셨다. 제자들과 그 후계자들은 예수님의 당부에
따라 이 만찬을 미사로 재현한다.
복음: 요한 13,1-15: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예수님은 당신에게 닥칠 수난을 당신의 뜻에 따라 당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신다. 그래서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고 하시며
당신 수난의 시간과 당신에게 일어날 일을 정확히 알고 계셨다.
예수님께서 ‘건너가심’은 세상에 계실 때, 하느님의 고귀함을 벗고
겸손한 모습을 취하셨으며, 우리에게 맞추어 당신을 낮추신 하느님의
말씀께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말씀이다. 즉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필리 2,7) 우리와 함께 계시던 분이 당신의 충만함
(참조: 콜로 1,19; 에페 1,23)으로 돌아가신다는 의미이다.
제자들을 곧 떠나야 할 때가 오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더욱 큰 사랑을
보여주신다. 그분은 그 일로 그들의 사랑이 더욱 커지고 거기에서
위로를 받아 그들이 장차 닥칠 끔찍한 일들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제자들을 ‘당신의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1절) 여기서 ‘끝까지’는 ‘그리스도다움’을 뜻한다. 그분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제자들을 사랑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니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3) 하시지 않았는가?
이 사랑은 만찬 때, 악마가 이미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은 후에 표현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3절)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4절)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5절) 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 주셨으니 그분은 ‘모든 것’을 쥐고
계시는 분이시며, 이 ‘모든 것’ 안에는 원수들까지도 포함하며 당신을
팔아넘긴 유다도 포함한다. 그리고 ‘내주셨다’는 말은 이 내주심으로
믿는 이들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말씀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내주시고, 아들은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어 드리신다. 이렇게
나누는 사랑 안에서 아들은 하느님에게서 나와 하느님께로 돌아가시는
만물을 소유하시는 분이 되신다.
이분이 식사를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려고 식탁에서
일어나셨다. 말씀이신 분, 모든 것을 쥐고 계시는 분으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분이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시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으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려고 무릎을 굽히셨다.
예수님의 이 모든 일들은 그분의 겸손을 드러내고 있다.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손수 부으셨다. 어떤 좋은 일을
할 때는 겉으로만 보이는 행동만 할 것이 아니라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르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그
행위를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황송했다. 그래서 당황해 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7절) 하셔도 베드로는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8절)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8절)고
하셨다.
베드로가 나중에 알게 되는 신비는 그들의 발은 곧 기쁜 소식을 전할
발이므로 그 발을 씻고 당신 허리에 둘렀던 수건으로 닦음으로써
아름답게 만드신 것이다. 이제 그들은 “나는 길이요”(요한 14,6)라고
하신 분께로 갈 수 있게 되었고, 또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깨끗한 발로
사람들에게 갈 수 있도록 아름답게, 제자들을 정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비를 아직은 깨닫지 못하지만 나중에 그것을 알고
나면 그 신비를 깨닫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 말씀을 듣고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주십시오.”(9절) 하자 예수께서는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10절)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유다의 발도
씻어주셨다. 예수님은 그를 다른 제자들처럼 영예롭게 대하시며 그에
대해서도 특별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유다는 발을 씻어주시는
그 사랑을 십자가의 못으로 갚아드리고 만다. 그러나 주님은 지혜로운
손으로 겸손을 행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12절)고 하신다. 그리고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14절) 예수님은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주인으로서 종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면서 동시에 나 자신의
더러움도 씻는 것이다. 형제의 발 앞에 몸을 숙일 때, 겸손해지며 더욱
확고해 진다. 이 겸손으로 교만해지려는 마음이 완전히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15절) 예수께서 먼저 당신의 모습이 사랑하고
봉사하는 모습이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자세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간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을 이웃으로부터
멀리할 때가 아니라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더 가까이 할
때인 것이다.
이제 성체성사를 세우신 이 거룩한 밤에 이 제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천상식탁에 앉을 때까지 당신의 말씀과 생명으로 우리 모두를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