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1일 감사와 사랑으로 거듭나야 한다.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4-11 06:22:18    조회 : 382회    댓글: 0

☆ 2018년 나해 4월11일 [(백)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 제1독서 사도 5,17-26
† 복음 요한 3,16-21

**********
◈ [수원]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심판이란?/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4월11일 수요일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17-26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21

심판이란?

복음: 요한 3,16-21: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6절) 시작도 끝도 없이 불사하시고 무한하신 지존께서 아무것도
아닌 이들을 사랑하셨다. 이들은 죄를 지으며 감사할 줄 모르고 줄곧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는데 그들을 사랑하셨다. 이들을 위해
그분은 다름 아닌 당신의 ‘외아들’을 내 주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내놓으셨으며 귀중한 피를 흘리셨다. 그분이 헐벗고
나그네 되었을 때도 우리는 못 본체 했고, 무엇 하나 포기하려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드님을
보내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 오신다. 첫 번째 오심은 이미 지났고
지금 계속되고 있으며, 두 번째는 장차 이루어질 것이다. 이 첫 번째
오심은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두 번째 오심은 심판하기 위해서이다.
그분은 두 번째 오시기 전까지는 심판하시는 대신에 용서를 베푸시며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로마 3,23)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런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18절) 이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심판 받을 필요가
없고, 믿지 않는 자들은 불신 그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심판은 이미 나의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판받을 사람들은 하느님께 충실한 자들과 불충한 자들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즉 교회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유혹에 이끌려 잘못을
저지르고, 기도를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어둠을 사랑하는 자들이 받을 심판은 이러하다. 그들은 어둠을 떠나
빛으로 달려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다. 빛이 자신에게
오는데도 빛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어둠 속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장님이 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자신이 눈이
먼 것을 빛을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구원이나 멸망은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이다. 그들이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20절) 사람들은 진리가
자신들을 비출 때에는 사랑하지만 진리가 자신을 꾸짖을 때는 진리를
미워한다. 그들은 사기를 당하기는 싫어하지만 속이는 기술을 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악행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빛을 미워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언제나 악행에 머물러 있기를 선택하는 자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나약한 자들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악행에
빠진 채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21절)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하는 선행이다. 선은 어둠을
사랑하지 않는다. 선은 드러나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을 기뻐한다.
이제 우리는 빛으로 나아와서 우리가 하는 일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빛으로 나아온
것이다. 우리가 선행을 하고, 단식하고 베풂으로써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올바른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살아가야
하겠다. 여기서 올바른 믿음이 자라게 되고 그분의 은총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감사드리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구하자.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 [수도회]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4월11일 수.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하느님은 정녕 사랑의 참된 빛이십니다.
참된 빛은 언제나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합니다.
사랑의 실천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사랑의 빛은 심판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합니다.
생명의 빛은 바로 하느님 안에서 구원을 드러냅니다.

생명의 빛은 우리의 역사 안에서 믿음으로 더욱 구체화됩니다.
믿음의 삶이 빛의 삶입니다.
심판의 삶이 어둠의 삶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악에서 선으로 미움에서 용서로
나아가게 하는 분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 때문입니다.

빛 안에서 빛과 함께 빛을 바라보는 우리들이길 기도드립니다.
빛을 미워하고 빛을 심판했던 어둠의 지난 시간을
빛 앞에 진심으로 뉘우치며 제 어둠과 제 악을 빛 앞에 내어드립니다.
내어드리니 모든 것이 빛 안에서 빛으로 드러납니다.

빛의 삶은 사랑을 실천하는 진리의 삶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사랑하는
생명의 날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빛으로 나갑시다.
이것이 하느님의 간절한 뜻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 [청주] 감사와 사랑으로 거듭나야한다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4월11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요한 3,16-21) 

감사와 사랑으로 거듭나야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요한3,16). 어떤 성경학자는 이 말씀을 두고 “성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바로 이 말씀을 읽는 것으로 시작하라. 성경을 통달했다면
다시 이 말씀으로 돌아오라.”고 권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어느 특정한 사람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두를 향한 사랑입니다. 갈 길을 잃고
방황하며 살아가는 죄인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9,13).고
선언하셨습니다. 죄인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시기에 우리의
한계와 못남을 인정하고 허물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사랑받는 죄인입니다. 비록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그분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사랑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런 방법으로’,‘이런 식으로’란 의미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한 구원방법을 가리킵니다"(송봉모).
광야에서 하느님께 반항한 대가로 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이 구리 뱀을 쳐다봄으로써 다시 살 수 있었던 것처럼, 하느님께
반항하여 죄의 노예가 되어 죽어가던 인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다시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이런 식으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의 방식을 생각할 수 있고,
‘너무나’하면 하느님의 사랑의 정도를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를 무조건 살리고자 하시는 사랑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의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그분의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신 나머지’라는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우리를
위한 아가페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사랑은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바로 그 사랑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거슬러 죄를 지었어도 이미 용서하시고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시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자식은
부모를 땅에 묻는다'고 합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이 없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외아들을 내주시어’는 하느님께서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에
내 주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5,8). 외아들을 주셨다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보면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외아들을 내 주시어’모두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고 살아갑니다. 이
사랑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도 감사와 사랑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합니다.

성경은 분명,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하고 말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인류에게
생명을 주고 구원을 줍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다면 살 길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원히 살게 하려고 사는 방법을 알려줬는데도 그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4-5에 보면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빛을 깨닫지 못하고 또
거절하는 것은 어둠의 지배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어둠의 지배
아래 있다는 것은 곧 악의 지배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의
지배 아래 있다는 것 자체가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으로 된 것이
심판입니다. 하늘로부터 또 이웃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또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면 그 보다
무서운 심판이 어디 있겠습니까? 심판하는 자는 하느님이나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라 빛을 거부하는 자신입니다. 심판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에서부터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둠을 벗어버리고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가야합니다.

세상에 어둠이 짙을수록 더 큰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늘의 별들처럼 빛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결코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어떠한 처지나 상황
안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 [기타] 팝콘 브레인/오늘의 능력말씀

2018년 나해 4월11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팝콘 브레인

오늘은 “팝콘 브레인”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 말씀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통제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식탁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식사하는 아이들을
흔히 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빌게이츠는 식탁에서는 아예 사용조차
할 수 없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스마트폰에 노출될 경우 뇌발달은 물론
뇌기능에 치명적 손상을 가져오고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팝콘이 터지듯 크고 강렬한
자극에만 뇌가 반응하는 현상으로 미국 워싱턴 대학교 데이빗 레비
교수가 만든 용어입니다. 그러다보니 좌우 뇌기능이 불균형을 이루어
여러 가지 불안장애등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마트 폰이 편리하고 참 생활 속에 좋은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불안과 두려움을 치유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피곤하고 불안한 우리의 삶을 스마트폰에 의존하지 말고
사랑 많으신 예수님과의 영적교제를 통해서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성도가 되십시오.

할렐루야!

- 부평 사랑 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