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4월29일 [(백) 부활 제5주일 (이민의 날)]
제1독서
<어떻게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26-31
제2독서
<믿고 사랑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3,18-24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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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포도나무 비유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4월29일 부활 제5주일: 나해: 포도나무 비유
오늘 복음의 내용은 포도나무와 그 가지에 대한 내용이다. 복음의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는 잘 알려져 있는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평범한 내용 같지만 그것은 훨씬 더 풍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제1독서: 사도 9,26-31: 교회는 주를 두려워하며 그 수효가 차츰
늘어났다
사도 바오로는 회개한지 3년이 된 후(갈라 1,18-24 참조). 예루살렘
공동체에 함께 하려고 하였으나 어려움을 당했다. 박해자였기 때문에
두려워하였던 것이다(26절). 그러나 바르나바가 바오로를 소개하고
주 예수님을 체험한 이야기를 하여 해결이 되었다(28절). 저자인
루카는 초기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다.
즉 교회는 "주님께 대한 두려움"과 "성령의 격려"로 성장된다.
교회는 같은 목적을 위해서 다양성 안에서 단일성을 추구하는
조화있는 성장의 개념이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보다도, 주님께 대한
성실성, 즉 주님께 대한 두려움과 성화하시는 성령의 힘, 즉 성령의
격려로써 가능하다. 포도나무의 비유는 역시 이것을 말한다.
바오로 사도가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고 복음을 전했지만 예루살렘
교회에 공식적으로 가입하려고 한 것은(1고린 9,1), 성령의 특은이
교회 밖에서나 교회를 거슬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주어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모든 카리스마를 다 해도 그
그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위대한 바오로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제2독서: 1요한 3,18-24: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이에 대한 삶의 모습은 '말로써가 아니고 행동과 진실에 의한
상호신뢰와 참된 사랑으로' 하게 되면(18절), 하느님께서는 '성령과
믿음으로 가득 차서'(사도 11,24) 교회의 선익을 위하여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인식하고 분별할 능력이 있는 바르나바와 같은 사람을 항
항상 보내주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가지도 자기 탓이든, 타인의
잘못이든 간에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복음: 요한 15,1-8: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최후의 만찬 때에 하신 것 같다. 예수께서는
당신 피를 통해 새로운 계약을 세우시며(마태 26,27-29) "나는 참
포도나무"(1절)라고 선포하신다. 이제 주님의 포도밭은 이미
그리스도이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다.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나타나는데, 첫째는 포도밭의 상징을 통해 표현된 사랑과 충실성의
완전한 충만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 성취된다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홀로 '참 포도나무'가 되신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지들'인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생명을
살도록 그들을 당신의 생명에 살도록 그들을 당신에게 결합시키신다
(4-6절). 포도가지들의 "공동체적" 운명은 우리 모두가 풍요한 결실을
맺기 위해 원 그루터기의 무진장한 생명력에 참여함으로써 가능하다.
주님의 말씀의 "머물러라."라는 말이다. 이는 포도나무와 가지 사이에
같은 생명의 기운이 감돌고 있듯이 똑같은 생명에 감싸여 있음을
느끼는 데서 생겨나는 일치, 수렴, 용해, 우정 등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머물러라."는 말은 일방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호적인
의미이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머무심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성체에 대해 말씀하셨듯이 같은 생명을
함께 실현시킴을 의미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그리고
이것은 예수께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요한 14,20).
이제 그 가지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을 만큼 "열려져" 있어야 하고, 둘째로 "열려진" 것 뿐 아니라
"결실"을 맺어야 한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8절). 즉 믿음과
사랑의 결실을 맺을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경우에 말과 머리로만 그리스도께 일치하고
있었는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이는 우선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비극은 우리의 불충함에서 기인됨을 알아야 한다. 이
"포도밭"이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버려두시지는
않는다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말라버린 가지는 잘라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6절). 그리고 또 말씀하신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2절).
여기서 주님의 "포도밭"에 대한 "심판"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버리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가지를 쳐준다. 첫 번째 경우는 단죄하는 의미로
그리스도와의 일치에서 멀어져 멸망하는 것이고, 두 번째 경우는
비록 시련과 고통은 따르지만 사랑의 심판이다. 그것을 통하여 더욱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어떻게 일치를
이루고 그 생명에 함께 하고 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알 수 있는 것은 그 열매가 어떤 것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즉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진정으로 형제를 사랑하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으려면,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때 가능하다. 오늘 이 독서와
복음의 내용이 우리의 삶 속에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그래서 초기
교회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러러보아진 것 같이 사랑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고 그래서 기쁜 하루가 되도록 주님께
기도하자.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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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부활 제5주일 (이민의 날)
2018년 나해 4월29일 부활 제5주일(이민의 날) 요한 15,1-8
예전에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장점은 질서이며,
개신교회의 장점은 자유이다.” 가톨릭교회는 잘 짜여진 교계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은 전 세계 교회의 구심점이 됩니다. 교구장은
각 나라 교구의 구심점이 됩니다. 사제는 본당 공동체의 구심점이
됩니다. 이 구심점의 원천은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성체성사’입니다.
교황님은 주교님들을 임명하고, 파견할 수 있습니다. 주교님들은
사제들을 임명하고 파견할 수 있습니다. 사제들은 본당의 봉사자들을
임명하고 파견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커다란 조직은
없습니다. 이렇게 오랜 전통을 지닌 조직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의 장점을 ‘질서’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개신교회는 가톨릭교회에서 나왔습니다.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조직은 힘이 있지만
각 지역 교회의 현안을 신속하게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각 지역의
문화와 풍습 그리고 전통과 역사를 감안하기 어렵습니다.
가톨릭교회에 있었던 박해와 순교는 때로 이런 문화적인 차이에서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개신교회는 이런 가톨릭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 지역교회의 독립과 자유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개신교회는 말씀 중심이며, 역동성이 있습니다. 개신교회는
자유로움은 있지만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조직과 제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성과와 능력이 우선되기도 합니다. 대형교회는 모든
면에서 풍요롭지만 작은 교회들은 운영이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보면 질서와 자유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골격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런 골격이
없다면 움직일 수 없고, 몸을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우리의 몸은
신경과 혈관을 통해서 자유롭게 소통하고 있습니다. 신경은 빛의
속도로 정보를 공유합니다. 혈관은 몸의 지체에 영양분을 주고,
노폐물은 배출하는 일을 합니다. 골격만 있다면 우리의 몸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경과 혈관만 있다면 우리의 몸은 움직일
수 없으며 다른 동물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서울대교구는 1992년에 ‘2000년대 복음화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이 운동은 26년이 지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다양한
모습을 진단하였고, 소공동체를 통한 복음화를 모색하였습니다.
교회는 제도로서 존재하며, 교회는 봉사자들이 함께 하며, 교회는
단체들이 모여 있으며, 교회는 소공동체들이 함께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복음화의 4가지 요소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말씀, 실천,
지역, 교회와의 연대’가 복음화의 4가지 요소였습니다. 제가 바라볼
때, 2000년대 복음화 운동의 핵심은 가톨릭교회의 장점인 질서와
개신교회의 장점인 자유를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작년에는 25년을 지내면서 2000년대 복음화 운동에
대한 평가와 성찰이 있었습니다. 소공동체를 통한 교회의 모습이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어야만 성장하고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인 삶의 장소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과의 친교가
없으면 잘려나간 가지처럼 말라버리고, 버려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녀 여러분,
우리는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살기 편한 집은 있지만 따뜻한 정이 흐르는 가정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편리한 시설과 아름다운 성당 건물은 있지만 기도와
사랑이 넘치는 성당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 하느님과의 친교는
구체적인 우리의 행동과 사랑을 통해서 드러나야 합니다. 이것은
또한 질서와 자유의 조화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제1독서에서 하느님과의 친교를 이루는 사도들이 성령의 이끄심으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를 통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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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너는 나의 봄이다!
2018년 나해 4월29일 부활 제5주일(이민의 날) 요한 15,1-8
너는 나의 봄이다!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예수님의 훈화 말씀을 경청하면서, 참 많은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복음 15장 5절)
자주 반성하게 됩니다. 예수님이라는 포도나무 원줄기에 붙어있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붙어있는가? 하는 반성을 합니다. 혹시라도
떨어져나갈까 안간힘을 다해 원줄기에 붙어있지만,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꼭
붙어있기는 하지만 일생에 도움도 안되는 가지로 여겨지지 않을까
두려움이 큽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구성원들을 만납니다. 소속은 분명
우리 소속이 맞는데, 우리 편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어디
소속이라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만, 그 공동체가
추구하는 정신이나 영성과는 전혀 별개의 삶을 살아갑니다. 무슨
불평불만이 그리 많은지, 입만 열면 자신이 속한 단체나 리더들을
향한 험담을 폭포수처럼 쏟아냅니다.
이런 분들은‘증거의 삶’이 아니라 ‘반대증거’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 ‘표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
표양’이 됩니다. ‘복음적 증거의 삶’이 아니라 ‘반복음적 증거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메스컴을 장식하는 사이비 교주들이 그렇습니다. 목소리 높여
성경을 가르친다고 외쳐대지만, 정작 성경을 욕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의 가치를 훼손하고 축소하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예수! 예수!
하지만 정작 예수님을 모욕하고 박해하고 있습니다.
저희같은 사제나 수도자들도 조심해야겠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반대증거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늘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돌아봐야겠습니다. 우리의 악표양으로 인해, 고압적인 태도로 인해,
제왕적 리더십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에게 반복음적 증거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외국에 나가 있을 때 마다 늘 드는 느낌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다들 한 나라, 한 민족, 한 핏줄 속에, 한 마음으로
평화롭고 화기애애하게 살아가는 데, 왜 하필 우리나라, 우리민족만
남북으로 갈라져 이토록 ‘쌩고생’을 하고 있는가? ‘하느님도 참
무심하시지?’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두 정상이 마치 아버지와
아들처럼, 큰 형님과 동생처럼, 스승과 제자처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고, 속 마음을 털어놓고, 미래를 함께 걱정하는 새로운 세상이 온
것입니다. 남북한 8천만 동포가 다들 기뻐하고, 온 세상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가나 꼭 초를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고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도 부족할텐데, ‘어처구니 없다!’며
‘위장평화 쇼’라며,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그들의 정신상태가 참으로 의심스럽습니다. 그들이
머릿속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합니다.
하나 되어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참으로 어이없고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무에 달려있지만 별 의미도 없고, 쓸모도 없고, 열매도 맺지 않은
가지와도 같은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언제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혹시라도 나는
별 도움이 안되는 의미없는 가지는 아닌지? 풍성한 열매를 맺지는
못할망정, 세상과 이웃의 걸림돌이 되고 악표양이 되는 존재는
아닌지?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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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5, 5)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4월29일 부활 제5주일.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5, 5)
머물러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머물러야 목마르지 않습니다.
머무름은 생명을 얻는 사랑의 참된 방식입니다.
우리의 삶이란 머무름에서 출발하여
머무름으로 마치는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를 빚어 만드신 분안에 머무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일은 우리가 하느님께 머무르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떠날 수 없는 우리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결코 자랄 수 없고 익어갈 수 없습니다.
머물러야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무엇을 위해
살아야할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머무름은 속도에서 벗어나 함께 나누는 사랑입니다.
사랑없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부활은 결국 머무름의 선물입니다.
먼저 머무름으로 돌아가는 은총가득한 주님의 날 되십시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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