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4일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2-14 07:20:30    조회 : 427회    댓글: 0

☆ 2018년 나해 2월14일 [(자) 재의 수요일]

[수도회] 자비의 집으로 초대하시는 주님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요엘 2,12-18
○ 제2독서 2코린 5,20─6,2
† 복음 마태 6,1-6.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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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면서

2018년 나해 2월14일 재의 수요일

제1독서
<너희는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 요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12-18

제2독서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5,20─6,2

복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16-18

제가 어렸을 때의 화장실은 주로 실내가 아니라 실외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지금처럼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라, 심한 냄새가 나는
재래식 화장실이었지요. 냄새야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늘 문제였습니다. 어두운 밤, 화장실의 30촉 백열등
불빛 아래에서 일을 보다보면, 밑에서 갑자기 무엇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거든요. 화장실에 관련된 귀신 이야기가 왜 밤에 화장실 갈
때만 생각나던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어둔 밤에 혼자 화장실 가는 것은 큰 곤욕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형에게 종종 부탁해서 함께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혼자
다녀와!”라고 말하면서 거절할 때도 있었지만, 착한 제 형은
무서워하는 저를 위해 화장실을 같이 자주 가주었지요.

누구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심리학자 가겐은
눈앞에 들어 올린 자기 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어두운
방안에 남녀 몇 명을 두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게 조용히 대화만 몇 마디 나누는
것이 전부였지만, 30분이 지나자 서로 접촉을 하고 얼싸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두려움을 혼자 이기기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누군가 함께 있다는 접촉을 통한 확신은 안정을 취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함께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 세상 안에서 두려움이나 절망을
단 한 번도 체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미래가 보이지 않아 앞이
캄캄해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으로 고통 속에서
두려움과 절망을 체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굶주림으로 좌절하는
사람 역시 적지 않습니다. 그밖에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두려움과
절망을 느낍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절망은 늘 고독과 함께
한다.”라고 말했나 봅니다.

그렇다면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계속해서 안아 주고 손을 잡으면서 함께 하지
못합니다. 아마 한 두 번이 지나고 나면 울고 있는 내 근처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우리를 안아주고
울어주십니다. 그래서 2,000년 전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재의 수요일을 시작해서 교회는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면서 특별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하기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하신 주님의 사랑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역시 함께
하려는 노력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실천이 나의 이웃을 향해서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사순시기를 보냈으면 합니다. 이를
통해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으며, 이 안에서 큰 희망과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 ~~~~~ ~~~~~
지구상의 모든 음악 중 하늘 저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음악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의 고동 소리다(헨리 워드 비처). 

~~~~~ ~~~~~ ~~~~~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부정적 생각만 하는 비관론자가 오래 살까요? 아니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낙관론자가 오래 살까요?

아마 낙관론자가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런데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심리학과 하워드 S.프리드먼 교수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어렸을 때부터 긍정적 사고를 하고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수명이 짧은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긍정적
사고가 때로는 지나치게 작용해서 과감한 모험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반면에 비관론자는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어떤 위험한 행동을 수반하는 모험을 하지 않게 됩니다.

아무튼 이 연구를 통해 비관론자가 더 오래 산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 결과의 말미에는 세상의 대부분 위대한 변화는
낙관론자가 이루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할까요?

오래 사는 것을 선택할까요? 아니면 위대한 변화를 이루는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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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자비의 집으로 초대하시는 주님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8년 나해 2월14일 재의 수요일, 마태 6,1-6.16-18
“이제라도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요엘 2,12)

자비의 집으로 초대하시는 주님

오늘 거행하는 '재의 예식'은 회개와 참회, 다가올 죽음에 대한
묵상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재’는 인생의 무상함과 나약함을 깨닫고
자기 본모습을 찾으라는 표지입니다. 우리는 재의 의식에서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창세 3,19) 하는
권고를 듣습니다. 이제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며, 하느님 자비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겠습니다.

오늘 머리에 얹는 재는 현세 삶의 종착점인 죽음을 일깨워 줌으로써,
하느님께 돌아가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일깨워줍니다. 재는 허무와
절망, 근심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현세 삶의 덧없음을 알아차려,
자비요 선 자체이신 주님께 되돌아가라고 재촉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고, 만드신 모든 것을 미워하지
않으시며,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죄를 덮어주시고 용서하십니다
(입당송).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십니다(요엘 2,13). 주님께서는
죄인들의 죽음을 바라지 않으시고 오직 회개하기를 바라시지요.

따라서 우리는 사순기기에 주님을 향하여 발걸음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 시기에 주님께 내 안의 어둠을 밝혀달라고 청해야겠습니다. 선이신
주님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주님의
좋음의 땅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무관심과 냉정으로 굳어진 심장에
사랑과 회개의 모닥불을 다시 지펴야겠지요.

주님 자비의 집으로 돌아가려면 무엇보다도 진실해야 합니다. 요엘
예언자의 권고대로 ‘옷이 아닌 마음을 찢는’(2,13) ‘진정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진실한 마음이 없는 회개나 형식적인
예식을 역겨워 하십니다. 우리는 죄악과 유혹에 자주 걸려넘어지는
‘사랑의 무능력자’입니다. 따라서 흉내만 내는 일시적 회개가 아니라,
거듭나려는 치열한 몸부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절'인 우리는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이루어진
화해를 계속 발생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2코린 6,1). 그분의 뜻을
실행하는 의로운 사람들이 되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과 일치하고 이웃과 사랑의 연대를 이루도록,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드러나지 않게 실천해야겠지요.

주님께서는 우리가 겸손하게 단식하고, 순수한 지향으로 기도하며,
사랑으로 자선하기를 바라십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단식과 기도와
자선을 실행할 때, 사랑의 불꽃이 타올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겠지요. 자신과 이웃과 세상의 아픔에 함께 함으로써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사랑의 투신이 필요할 때입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며, 우리 모두 주님의 한없는 자비를 기억하고 주님께
돌아가도록 힘씁시다. 독선과 교만의 탈을 벗고 주님께 가까이
다가갑시다. 삐뚤어진 마음을 찢으며, 하느님과 화해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해야겠습니다. 삶의 우선순위와 중심을 회복하고, 돈의
망령 대신 주님께 집중합시다. "매우 은혜로운 이때"(2코린 6,2)에,
무관심과 냉정함과 집착의 다리를 건너, 주님 자비의 집으로 들어가는
오늘이길 희망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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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2018년 나해 2월14일 재의 수요일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또 다시 재의 수요일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는 지난 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사용했던 종려 나무 가지를 태워 얻은 재를 머리에
얹습니다. 재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타고 남은 것, 아무 것도 아닌 것,
무가치한 것, 허무한 것, 보잘 것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를 머리에 얹을 때 우리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쳐야겠습니다.

“본래 저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습니다. 먼지요, 티끌,
무(無)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토록 보잘 것 없는 제게 큰 은총을
베푸셔서 생명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오늘 지금 저는 여기 서 있지만,
주님의 흘러넘치는 자비가 아니라면, 단 한 순간도 스스로 설 수 없는
미약한 존재입니다. 과거도 저는 흙이었지만, 지금도 흙과 다름 없는
존재요, 언젠가 반드시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신심깊은 유다인들은 속죄 행위를 요란스럽게 실시했습니다. 일단
식음전폐, 다시 말해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씻지도
않았습니다. 일도 손에서 놓았습니다. 평상복을 벗고 거친 삼베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속죄의 재물로 짐승을 잡았습니다.

엄청난 양의 재를 만들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들이 부었습니다. 그것도
양에 안 차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하고 옷까지 찢었습니다. 더 웃기는
것은 잘못은 인간들이 저질러놓고, 아무런 죄도 없는 가축들까지도
속죄행위에 강제로 동참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요란스럽고 과장된 속죄
행위 대신 다른 방법을 쓰라고 가르치십니다.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너그럽고 자비로우신 분, 분노와
역정에 더디신 분, 주 너의 하느님에게로 돌아오너라.”
(요엘 예언서 2장 12~13절) 결국 주님께로의 유턴, 다시 말해서 회개할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아울러 주님께서는 우리가 새롭게 맞이한 이 사순 시기, 어떤 모습으로
자선을 베풀고, 기도하고, 단식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주 명쾌하게
세 가지 지침을 내려주고 계십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마태오 복음 6장 3절)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오 복음 6장 6절)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마태오 복음 6장 17~18절)

예수님께서 주신 세 가지 지침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하느님 앞에 애써 꾸미려 하지도 말고, 굳이
감추려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라는 것입니다. 결국
위선자가 아니라 안과 밖, 말씀과 삶, 기도와 활동이 일치되는 진실된
신앙인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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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재의 수요일

2018년 나해 2월14일 재의 수요일 마태 6,1-6.16-18

오늘부터 우리는 40일 동안 주님의 수난과 고통을 묵상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주님의 수난과 고통은 바로 죄를 지어서 하느님과 멀어진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크신 자비를
감사드리며, 주님의 수난과 고통의 길에 동참하도록 다짐하는 것입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성무일도 찬미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왜 사순시기를 지내는지, 하느님의 자비하심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핸드폰을 충전합니다. 그래야 세상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우리 자신을
영적으로 충전하면 좋겠습니다. 사순시기를 충실하게 지내는 사람은
주님 부활의 기쁨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의 태양이신 예수그리스도여
마음의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찬란한 덕행의빛 찾아오도록
이땅에 새아침을 열어주소서. 

은총의 사순시기 열어주시고
마음에 참회정신 박아주시며
자비로 죄인들을 참으셨으니
이제는 당신께로 돌려주소서. 

아무리 우리죄가 크다하여도
당신의 자비하심 더욱크오니
모두가 당신구원 얻기위하여
극기를 행하도록 도와주소서. 

마침내 당신날이 다가오리니
그날에 모든것이 꽃피오리다
당신의 은총으로 그날을맞아
즐거이 축하하며 기뻐하리다 

자비론 삼위일체 하느님이여
만물이 당신기려 흠숭하오며
우리도 용서받아 새사람되어
기쁨의 새노래를 부르나이다. 아멘.” 

23년 전 사순시기에 저는 한 가지 제안을 받았습니다. 본당의 청년이
사순시기에 금연을 하면 사순시기 동안 껌과 은단을 준비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금연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뒤로도 금연하였고, 23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제가 금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청년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4가지를 실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희생입니다. 희생의 방식은 다양할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도 희생입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도 희생입니다. 양보하는
것도 희생입니다. 신앙은 희생이라는 밭에서 피는 꽃입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길’을 할 것을 권고합니다.
본당에서도 사순시기 금요일에는 십자가의 길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본당에서 마련한 사순특강에 참여하는 것도 기도입니다.

셋째는 단식입니다. 단식을 하는 의미는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보다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단식을 통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자선입니다. 본당에서는 사순저금통을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교구는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나눔으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선을 베풀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2018년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나의 허물과 잘못을
정화시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희생, 기도, 단식, 자선을 통해서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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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사순절의 의미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2월14일 재의 수요일

복음: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다. 성서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리키는 숫자이다. 하느님께서는 노아 홍수
때 40주야 동안 폭우가 내리게 하여 심판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400년을 종살이하였으며,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에
40주야를 단식과 기도로 지냈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 40년이나 걸렸다. 

예수께서도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40주야를 광야에서 기도와
단식으로 준비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시작되는 사순절도 오늘부터
시작하여 부활 때까지 주일을 제하고 세어보면 40일이 된다. 교회가
이렇게 사순절을 제정한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순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으로 차지하신 영광스러운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그분의 영광에 우리도 참여하기 위하여 그분의
수난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인간의
죄, 그 죄에 대한 보속을 하며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회개와
보속의 시기이다. 이럼으로써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사랑 받는 자녀들이 되어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교회는 오늘 “재의 예절”을 거행한다. 이 재의 의미는 회개와
보속, 죽음과 겸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머리에 재를
받는 것은 우리 죄로 인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및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보속 하겠다는 약속의 표시이다. 그리고
이 재의 예절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죽음을 미리 묵상하게 한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의 현세적인 삶의 종착점인 죽음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이기적인 생활과 그럼으로써 하느님을 멀리 떠난 듯한
삶에서 회개와 나를 필요로 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에로
돌아서게 하는데 있다. 

죽음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를 알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재는 한 줌의 흙이다. 우리가
죽어 땅에 묻히면 한 줌의 흙이 된다. 그 자리에는 아무런 형체도,
권세도 명예도 볼 수 없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재를 교만과 명예의
자리인 머리에 얹음으로써 인생무상과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겸손하라고, 자신의 본 모습을 찾으라고 하는 것이다. 겸손하지 못하면
회개와 보속의 실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선을 행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면서 자선과 기도, 단식에 관한 세 가지 본보기를 알려주신다.
자신의 덕을 내보임으로써 사람들의 칭찬을 얻으려 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넘치게 기도하면서 자기의 신심을 자랑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2절) 내가 하는 일을 떠벌리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의 찬사를 얻으려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은 신심
깊은 마음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절한 행동은 그 자체가
나팔이다. 그러기에 숨겨야 할 것은 그런 행동이나 장소보다도
베풀려는 뜻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3절) 이 말씀 역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인데, 할 수 있으면 우리가 선을 베풀
때, 베푸는 손조차도 그 사실을 모르게 하라는 말씀이다. 또한 이
말씀은 오른손은 의인과 의로운 행위를 뜻하고 왼손은 죄인과 죄가
되는 행동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일이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루어지려면, 의인인 오른손은 왼손이 하는 일을 몰라야 한다. 즉
우리가 충실하고 신심 깊게 행하기 위해서는 죄안들 앞에서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6절) 우리의 기도는 인간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어디에나 계시며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들으시고 마음의 비밀을 이미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분께 기도하면 우리는 큰
상을 받을 것이다.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6절) 하시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서 상을 받으려 하는 자들은
하느님께로부터 또 다른 상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16절)
교회도 또한 이 시기에 극기와 절제를 통하여 이웃에게 선을 베풀어
그리스도를 닮고, 어느 때보다 기도를 많이 하여 은총을 받고자 마음을
모으는 때이며,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우리도 누리기 위해
속죄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 사순시기를 통하여 우리가 더 하느님의
자녀로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면서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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