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2월16일 [(백) 설]
[수도회] 깨어 기다리며 친교를 이루는 기쁨의 날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민수 6,22-27
○ 제2독서 야고 4,13ㄴ-15
† 복음 루카 12,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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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우리는 설을 맞아 조상들을 기억하며, 그 은덕에 감사드리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로써 조상들은 후손들의 마음 안에 다시 살아나며, 온
집안을 한 식구로 묶는 구심점이 되지요. 고인들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 추억만을 회상하는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과거 사건이 지닌
의미를 오늘의 삶 안에서 되살려 내는 것이지요.
이처럼 조상을 기억하는 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가 됩니다. 더욱이 우리가 고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할 때 우리
후손들도 우리를 위해 정성껏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이럴 때 ‘내가
드린 기도’가 언젠가는 ‘나를 위한 기도’가 되어, 나에게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또한, 설을 맞아 특별히 가족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흩어진
형제자매들을 만나려고 고향으로 가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우리는
어렵고 힘들 때 고향을 생각하고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고향과
어머니는 우리의 근원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힘들고 지친 우리의
삶은 고향의 넉넉한 품 안에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우리 생명의 근원인
하느님의 품입니다. 오늘 설을 맞아 우리 삶의 근원과 최종 목적지에
대해 묵상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고인들을 위해 정성껏 기도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다가
언젠가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매일 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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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8년 나해 2월16일 금요일 설
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6,22-27
제2독서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4,13-15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40
동방의 임금이 인간에 대해서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가장 지혜롭다는 현자를 불러서 인간에 대해 알려주는 500권의 책을
가져오라고 명했습니다. 현자는 500권의 책을 가지고 왔지요. 그러나
막상 이 500권의 책을 차분하게 읽으려고 하니 나랏일이 너무 바빠서
읽을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현자를 불러서 이 500권을
요약해서 가져오라고 시켰습니다.
20년 후, 현자는 인간에 대한 500권의 책을 요약해서 50권으로
만들어서 가져왔습니다. 임금은 이제 나이가 들어서 책을 보는데
어려움을 느끼니 더 줄여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로부터 또 20년의
시간이 지나서, 백발이 된 현자는 딱 1권의 책으로 줄여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죽음을 바로 앞둔 임금은 정신이 혼미해서 이 책마저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죽어가는 소리로 인간에
대해서 더 줄일 수 없느냐고 물었지요. 이에 현자는 다음과 같은 한
줄로 요약해서 곧바로 가져왔다고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인간이 뭐 별 것 있겠습니까? 모두가 태어나서 고생하다가 죽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없는 세계에서의 삶이
중요합니다. 즉,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삶이
중요하기에, 이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준비를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갑곶성지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초봉헌대가 부서진 것을
보고서 CCTV를 확인해보니 도둑이 한밤중에 찾아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물쇠 한 개가 손상된 것 외에는 그 어떤 피해도
없었습니다. 중요한 곳은 보안업체를 통해서 방범시설을 해놓았고,
초봉헌대 역시 부술 수 없도록 새롭게 교체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도둑은 아무런 소득 없이 빈털터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요.
도둑을 대비해서 미리 준비를 하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살아 있을 때 잘 준비해서
죽음 이후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영광을 차지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오늘은 민족의 큰 명절인 설날입니다. 특별히 조상님을 기억하면서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면서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냅니다. 조상님을 통해 자신의 미래 삶을 떠올릴 수 있으며, 가족과
함께 하는 사랑의 시간이 먼 미래를 위한 준비가 되면 어떨까 싶습니다.
단순히 하루 편안하게 쉬는 날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잘 준비하면서 지금이라는 현재를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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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인간 생활의 최후의 진리이며 최후의 본질이다(슈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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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중요할까?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아메리카 대륙 개발 은행은 후원단과
함께 볼리비아 띠띠까까 호수 근처의 인디언 마을을 방문합니다. 그
마을에 수력발전소를 세우기 위한 사전조사차였지요. 그런데 조사를
마치고 보니 준비해 간 경비 중 꽤 큰 액수가 남은 것입니다. 후원단은
마을 원로들을 만나서 남은 경비로 마을에 당장 시급하고 절실한
무언가를 해주고 싶으니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인디언 원로들은
마을 회의를 연 뒤 그곳에서 결정된 사항을 후원단에게 전했습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새로운 악기입니다.”
후원단은 뜻밖의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판단하기에는 마을에 가장 절실한 것은 당장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전기나 하수도, 통신 시설 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로들은 고개를 저으면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누구나 악기를 연주합니다. 주일에는 미사 후에
성당 마당에 모여 음악회를 열고 연주가 끝나면 공동체 문제도
의논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악기가 오래돼서 망가져 갑니다. 음악이
없으면 우리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나요?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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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깨어 기다리며 친교를 이루는 기쁨의 날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8년 나해 2월16일 재의 예식 다음 금. 설날,
민수 6,22-27; 야고 4,13ㄴ-15; 루카 12,35-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루카 12,40)
깨어 기다리며 친교를 이루는 기쁨의 날
음력 정월 초하룻날에, 우리는 한데 모여 조상을 기억하고, 서로를
축복하며 감사와 친교를 나눕니다. 아울러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이 축제의 주인이신 주님이 누구이신지 생각해야겠습니다. "아침에
돋아나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버릴 풀과 같음"(시편 90)을
기억하며, 늘 깨어 준비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힘써야겠지요.
오늘의 말씀들은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생각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은 축복의 원천이요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선하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고 지켜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와 평화를 베푸십니다. 하찮은 인간은 당신 자신 전부를
건네시는 주님의 충만한 축복 속에 살아갑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아무도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 4,14) 따라서 현세 이익을 추구하려들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을 성실히 실행하도록
할 것입니다.
주님의 축복 안에 머물려면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까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종처럼 주인이 언제 돌아오든 맞이할 준비를 하고 깨어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분의 선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분에 대한 기다림은 '사랑에 대한 갈망'입니다. 우리가
깨어 주님의 자비와 선을 기다릴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 삶을 '영원한 기쁨의 축제'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행복은 생각지 않은 때에 찾아듭니다. 주님은 그렇게 예기치 않은
순간에 내 영혼의 문을 두드리실 것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기쁨의
축제에 참여하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오시는 분이
내 삶의 주인이시며, 선과 은혜와 평회를 들고 오심을 알아차리고
그분께 집중하는 것이지요. 그저 허송세월하는 게 아니라 빛의
자녀다운 삶의 준비를 하며 기다려야 하겠지요.
믿음과 희망 속에 오시는 주님을 인내롭게 기다릴 때 주어지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선과 사랑을 갈망하며 기다리는 이들의 시중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축복이 있을까요?
설 명절을 맞아 우리가 행복하도록 자비와 은혜와 평화를 베풀어주러
오시는 주님을 깨어 맞이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님에 대한 갈망을
키워가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깊은 친교를 이루고, 주님의 뜻을
실행함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겠지요. 세상 유혹과 시련,
불의와 절망에 맞서며 모두가 주님의 기쁨 안에 머무는 참 축제의
날이었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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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설
2018년 나해 2월16일 금요일 루카 12,35-40
민족의 명절인 설날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올해 설날은 제게도 의미가 남다른 날입니다. 사랑하는
조카들이 모두 직장을 얻었습니다. 젊은이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형님은 20년 만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했습니다.
형님의 집에서 축성을 하고, 기도를 하면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말없이 가정을 지켜준 형수님께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어머니도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시는 어머니에게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저에게 넘치도록 축복을 주셨습니다.
예전에 황희 정승이 젊었을 때 길을 가다가 논에서 일을 하는 농부를
보고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저 논에 지금 누런 소와 검은 소가
있는데 어느 소가 더 일을 잘 합니까! 그러자 그 농부는 황희 정승을
소들이 보지 못하는 숲속으로 데리고 가서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실은 누런 소가 일을 더 잘하긴 합니다. 하지만 검은 소가
들으면 속이 상할 것 같아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황희 정승은 그 때 그 농부의 이야길 듣고 평생 지키고자 다짐한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할 때는
신중하게 하고 될 수 있으면 남의 이야기를 특히 남의 허물과 탓을
이야길 할 때는 더욱 조심하고 신중하게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황희 정승은 그와 같은 삶의 자세를 가졌기에 오랜 동안 정승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스승이
되었다고 합니다. 새해에는 남의 탓과 남의 허물을 이야기하기 전에
좀 더 신중할 수 있도록 될 수 있으면 남의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자신의 신앙생활을 더욱 성실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이 다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새해에 하느님께 바라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고3 예비 신학생과 일반 예비 신학생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모두 신학교에 입학했으면 좋겠습니다. 출산휴가 중인 직원이 건강한
모습으로 복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이 성소국으로 오신
신부님들이 기쁜 마음으로 주어진 일을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신부님들이 원하는 그림이 잘 그려지길 바랍니다.
모처럼 마련된 남과 북의 만남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작은
것들부터 시작해서 큰 결실이 맺어지면 좋겠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면 좋겠습니다. 남한의 철도가 북한과
연결되면 좋겠습니다. 기차를 타고 유럽 여행을 가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북한에도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면 좋겠습니다. 남한의
기술과 북한의 인력이 합쳐지면 남과 북 모두에게 좋은 결실이 주어질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면 좋겠습니다.
그 이유를 알았다면 최선을 다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은
마치 연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알아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능력과 재능을 다할 것이고,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명예와 권력, 부와 성공도 기꺼이 버릴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아픈 것도, 가난한 것도, 죽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설날입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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