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1일 요나의 기적. 집단적 회개

작성자 : 안나    작성일시 : 작성일2018-02-21 06:22:32    조회 : 395회    댓글: 0

☆ 2018년 나해 2월21일 [(자)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수도회] 찾아야 할 표징과 표징이 되는 삶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요나 3,1-10
† 복음 루카 11,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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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요나 예언자의 표징

2018년 나해 2월21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니네베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섰다.>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10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어렸을 때, 저는 집에 있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그냥 밖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이 제일 좋았지요. 그래서 놀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고, 그때마다 부모님께 엄청나게 꾸중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해도 곧바로 늦게까지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는 신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시간만 되면 여행을 다녔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집중했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이 저의 본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 부산에 있습니다. 어제 저녁 부산에서 특강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부산까지 왔는데 부산 앞바다를 보지 않을 수 없겠다 싶어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그렇다면 밤새 놀았을까요? 아닙니다. 혼자
호텔 창문으로 바다를 바라보면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일과
월요일에는 지리산 밑의 산청이라는 곳에 있었는데, 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용히 호텔에서 글을 쓰기 위해 온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이 평온하면서 이러한
상태가 참으로 좋습니다.

놀지도 않고 또 돌아다니지도 않고 혼자 생각하면서 방 안에 틀어 박혀
있는 모습은 불과 2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변했을까요? 사실 내 자신에 대해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 자신도 모르는 또 다른 내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숨어 있는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저는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들 각자 안에 숨어 있는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기적들을 계속해서 보내고 계십니다. 문제는 내 자신이 그 숨어 있는
모습을 “없다”고 규정하면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푸념을 내뱉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 짜증이
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시지요.
요나의 말 한 마디에 회개하였다는 것이 바로 표징이라는 것이지요.
요나의 말을 통해서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주님께로 향하는 마음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모두 회개하였고 그 결과 멸망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요나보다 큰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제는 내
안에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특히 주님을 따르는
길에 있어서 숨어 있었던 많은 것들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때 매 순간 주님의 표징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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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더 노력할수록 운이 더 좋아진다는 걸 발견했다
(토마스 제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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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할 때.

18세기 영국 최고의 화가라고 불리는 토머스 게인즈버러
(Thomas Gainsborough, 1727 ~ 1788)는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려운 생활고로 인해 그는 귀부인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내가 이런 초상화나 그려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점점 삶이 지긋지긋해졌습니다. 초상화 대신 풍경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니 억지로 초상화만을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율배반적인 것이 그를 세상에 알린 것은 스스로가 그토록
지긋지긋해 했던 귀부인의 초상화라는 것입니다. 그가 좋아했던
풍경화로는 세상에 자신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진절머리 내는 일이 나를 세상에 알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포기하고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선 가장
놀라운 진실은 세상의 눈과 나의 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주님께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를 쓰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용하시는 것에 대해 ‘숨어 있는 또 다른 내가
나오는 기적이구나.’ 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절대로 삶을
지긋지긋하게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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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찾아야 할 표징과 표징이 되는 삶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8년 나해 2월21일 사순 제1주간 수, 요나 3,1-10; 루카 11,29-32

“이 악한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

찾아야 할 표징과 표징이 되는 삶

군중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시험하려고 그분께 놀라운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 탈출 때 일어났던 기적들과 같은 표징을
바랐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과 행적에 의심을 품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찾으려는 군중들에게 아무런 표징도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의 기쁜소식을 선포하시는 예수님
자신이 바로 표징 자체이기 때문입니다(11,30.32).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1,29)이라 하십니다. 그들이 받게 될 요나의 표징은
무엇일까요? 요나는 주님의 명에 따라 이교인들이 사는 적대국가의
큰 성읍 니네베로 가기를 주저합니다. 이교인들이 회개하는 일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아보였고, 설사 그들이 회개한다해도 못마땅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내며, 근심걱정과 불신과 체념의
보따리를 던져버리고, 뉘우쳐 주님의 뜻을 따릅니다. 그는 주님의 눈을
피해 달아나다 물에 빠져 죽게 된 선원들을 헌신적으로 구하고,
니네베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온 성읍이 참회하도록
이끕니다. 그 결과 주님께서는 니네베 사람들을 용서하십니다. 이것이
요나의 회개가 불러온 놀라운 표징입니다.

이러한 요나의 표징이 예수님에게서 실현됩니다. 요나가 뱃속에서
사흘을 보내다 회개하여 하느님의 뜻을 따랐듯이, 예수님께서도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일으켜지실 것입니다.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의
기쁨과 영원한 생명을 주실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보다 더
확실하고 더 큰 표징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어떤 표징을 찾고 있습니까? 혹시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고, 이미 와 계신 메시아이신 그분의 표징을 알아보지 못하고 믿지도
않았던, '악한 세대'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겠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데 머뭇거리고, 하느님이 아닌 세상의 힘에 기대어
탐욕과 교만 속에 살아간다면 '회개의 표징'만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야 할 표징은 회개의 표징 너머에 계시는 사랑이신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완고한 마음을 버리고, 이교인인 남방의
여왕이나 니네베 사람들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함으로써, 참
표징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안이함과 편리, 그리고
세상의 달콤한 유혹을 떨쳐버리고, 예수님과 동화되고 그분을
닮음으로써 이 시대의 살아있는 표징이 되도록 힘써야겠지요.

사랑과 진리의 표징이며 영원한 생명의 표징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이 있을까요? 우리 모두 확고한 믿음
위에서, 말씀의 영을 따라 해묵은 습관과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회개를
서둘러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참 표징이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삶으로 증거하여, 세상의 표징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도 나의 언행이 사랑과 생명의 표징, 선과 정의의 표징이 되었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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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집단적 회개
 
2018년 나해 2월21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루카 11,29-32

집단적 회개

기원 전 960년부터 350년간 아시리아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한
제국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아시리아는 동서로는 인도에서
시작해서 이집트까지, 남북으로는 아라비아에서 시작해서 러시아까지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요나가 찾아간 니네베는 당시 아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뉴욕이나 도쿄, 북경이나 런던 정도 되는
대도시였습니다. 웅장한 궁전과 사원들을 둘러싼 성벽은 그 위로 마차
3대가 동시에 달릴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넓었습니다. 성벽의 높이는
23미터였는데,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 앞에는 너비가 24미터인
방어용 연못까지 건설할 정도였습니다.

요나 예언서도 니네베라는 도시의 규모와 위용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요나 예언서 3장 3절)

예언자로 불림 받은 요나가 요리 조리 도망다니다가, 마침내 주님의
손아귀에 잡혀 최초로 파견된 도시가 바로 그 잘나가던 도시, 당시
최강대국의 수도 니네베였던 것입니다. 공포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면서 니네베 성안으로 들어가는 요나 예언자의 모습이 참 딱해
보입니다.

성 안으로 들어가 하룻길을 걸은 요나 예언자가 마침내 이렇게
외칩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요나 예언서 3장 4절)

니네베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요나 예언자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외쳐본 들 뭐하겠어? 귀여겨 듣지도 않을
니네베 사람들인데...그래도 주님께서 외치라 하시니, 일단 한번
외쳐나 봐야겠다. 안 그러면 주님께서 내게 또 어떤 끔찍한 조치를
취하실지 모르니...’

그런데 정말이지 뜻밖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요나
예언자의 말을 귀담아 들은 것입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했습니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자루옷을 입었습니다. 왕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습니다.

그런 니네베 사람들의 모습을 주님께서 보셨습니다.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그들의 모습에 마음을 돌리시고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의 집단적 회개 사건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주님께서는 또 다른 잘 나가는 우리들의 대도시를
향해서도 강력한 회개를 촉구하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돈과
명예, 소비주의와 향락주의에 물든 거대 도시민들의 집단적인 회개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렇게 번창했고 잘 나갔던 대도시 니느베는 기원 전 612년, 자취도
없이 이 지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멸망의 이유는 아시리아 제왕들의
잔혹함 때문이었습니다. 후에 발굴된 오벨리스크나 벽화에는 저마다
새겨놓은 무용담이나 왕에 대한 두려움을 자아내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짐은 잔인하고…전쟁에서는 앞장서 달리는 온 천하의 왕이며…무릎
꿇지 않는 적들을 짓밟고 온 세상을 손아귀에 넣었노라. 나는 들판을
피로 물들이는 무시무시한 태풍이로다.”(아슈르바니팔 왕).

교만과 사악함, 사치와 게으름에 빠져 있던 아슈르바니팔 왕은
연합군이 바빌로니아를 앞세우고 쳐들어오자 궁에 불을 질렀습니다.
궁녀와 시종들 그리고 자신까지 불길 속으로 내던지며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눈부시고 거대했던 도시 니네베는 폐허로 바뀌었습니다.
수천년간 사막 바람이 뜨거운 모래와 먼지 구름을 몰고 와 폐허를 덮자,
왕성은 큰 둔덕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끝도 없이 군사력을 증강시키면서 지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몇몇 강대국들, 앗시리아와 니네베의 멸망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두려워할 줄 모르며, 약소국들을 우습게 여기는 나라들의
회개가 절실합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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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루카 11, 29)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8년 나해 2월21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루카 11, 29)

너와 나의 지나친 욕심이 이 세대를 더욱 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위험하고 불안한 우리의 욕심입니다.
더 높이 쌓여만가는 욕심을 예수님께서는 이제는
허물어뜨리려 하십니다.
사순시기는 이 세대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요나는 회개가 필요한 이들과 함께 합니다.
이와같이 신앙인은 마음의 위로와
변화가 필요한 이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습니다.
참행복과 희망은 회개를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그 어떤 것도 하느님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자신의 욕심이 결코 모든 것의 중심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중심이 되는 것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참된 회개의 표징입니다.
니네베 사람들처럼 가장 빠른 이 세대의
표징은 우리자신의 회개입니다.

거창한 회개의 구호가 아닌 진실된 회개를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원하십니다.
이 사순시기가 하느님 말씀을 듣고 회개의 삶으로 새로워지길
그래서 무엇보다도 제자신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드립니다.
사람은 요나보다 솔로몬보다 더 큰 예수님을 따라야합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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