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3월14일 [(자)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수도회] 생명을 가리는 너울을 사랑으로 벗겨내고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이사 49.8-15
† 복음 요한 5,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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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이웃에 대해서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2018년 나해 3월14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
<땅을 다시 일으키려고 내가 너를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9,8-15
복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30
아는 분 중에서 자기 몸을 끔찍하게 챙기는 분이 계십니다. 분명히
겉모습은 너무나도 튼튼해 보이는데도 어딘가가 아프다면서 힘든
표정을 많이 지으십니다. 하도 그러시기에 병원에 가보시라고 하니,
벌써 병원에 다녀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늘 건강 보조제를 드시고,
유기농으로만 식단을 꾸려서 드십니다. 여기에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까지 아주 열심히 하십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분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나 오래 살려고 그러는 거야?’, ‘일부러 불쌍해 보이려고 그러는
건가?’, ‘너무 건강에 집착하니까 신경성일거야.’ 등등의 생각을 한
적이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감기를 아주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습니다. 머리도
아프고, 온 몸이 제 몸 같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콧물과 가래로 인해서
강의를 하는데도 불편함이 많았지요. 몸이 불편하니까 기도하는 것도
힘들고 귀찮아지는 것은 물론 좋아하는 책을 보는 것도
힘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조금 더 내 몸에 신경 좀 쓸걸.’라는
후회를 했지요.
이렇게 감기를 앓다 보니 자신의 건강에 신경 쓰시는 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오래 살려고 몸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지금을 더 잘 살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할 것과 또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으려면 당연히 몸부터 신경 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몸을 소홀하게 대하는 것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여기는 분을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서 그 안의 의미를 찾는데
더욱 더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 나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만이 옳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섣부른 판단이 아니라 내 이웃을
향한 공감과 이해의 마음을 갖는데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에 유다인들은 못마땅해
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지요. 왜냐하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은 커다란 불경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다인들의 이 판단은 맞는 것일까요? 정말로 예수님께서 죽어야
마땅한 분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잘 몰랐고 자신들의
별 것 아닌 지식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만으로도 죽어야 마땅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예수님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우리의 이웃에 대해서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안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판단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공감과 이해를 위해
노력한다면 어떨까요? 그 안에서 활동하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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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지금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감에 관한 거야. 그러니까 당신도
오늘만을 살 순 없는 거야(샤오후 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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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생(칼릴 지브란)
절반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말라/
절반만 친구인 사람과 벗하지 말라/
절반의 재능만 담긴 작품에 탐닉하지 말라/ 절반의 인생을 살지 말고/
절반의 해답을 선택하지 말고/ 절반의 진리에 머물지 말라/
절반의 꿈을 꾸지 말고/ 절반의 희망에 환상을 갖지 말라.
침묵을 선택했다면 온전히 침묵하고/ 말을 할 때는 온전히 말하라/
말해야 할 때 침묵하지 말고/ 침묵해야 할 때 말하지 말라/
받아들인다면 솔직하게 받아들이라/ 거절한다면 분명히 하라/
절반의 거절은 나약한 받아들임일 뿐이므로.
절반의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고/ 그대가 하지 않은 말이고/
그대가 뒤로 미룬 미소이며/ 그대가 느끼지 않은 사랑이고/
그대가 알지 못한 우정이다/
절반의 삶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대를 이방인으로 만들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그대에게 이방인으로 만든다.
절반의 삶은 도착했으나 결코 도착하지 못한 것이고/
일했지만 결코 일하지 않은 것이고/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 그대는 그대 자신이 아니다/
그대 자신을 결코 안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대의 동반자가 아니다.
절반의 삶은 그대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는 것이다/
절반의 물은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하고/
절반의 식사는 배고픔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절반만 간 길은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며/
절반의 생각은 어떤 결과도 만들지 못한다.
절반의 삶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지만/ 그대는 할 수 있다/
그대는 절반의 존재가 아니므로/ 그대는 절반의 삶이 아닌/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하는/ 온전한 사람이므로...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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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생명을 가리는 너울을 사랑으로 벗겨내고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8년 나해 3월14일 사순 제4주간 수, 요한 5,17-30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요한 5,19)
생명을 가리는 너울을 사랑으로 벗겨내고
예수님께서 벳자타 못가에서 병자를 고쳐주시자 유다인들이 시비를
걸며 박해하려 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하시며,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5,18) 여기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분께서
하느님을 모독했다며 더욱 더 죽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이 당신의 사명이며(5,19),
하느님의 아들로서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리거나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하십니다(5,21-22). 그렇게 그분은 인간의 삶에
관여하시어 하느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통해 선포되는 하느님 나라와 구원의 선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철저히 배척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황폐함에 풍요를, 갇힘에 해방을, 어둠에 빛을 주시고
굶주림과 갈증을 없애주리라는 희망과 위로를 주십니다
(이사 49,8-13). 그러나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이런 하느님의 자비를
전해주는 분이심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소경이 되어 사랑의 표지를 보지 못한 채, 생명의 숨결을 멀리
하며 어둠 속으로 달려가버린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말합니다. “회개 중에 있지 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지 않으며 악습과 죄를 일삼고 나쁜
욕정과 나쁜 욕망들을 쫓아다니며, 약속한 것들을 지키지 않고, 육적인
욕망과 세속의 근심 걱정과 살아갈 근심에 빠져 세상을 육신적으로
섬기는 이들은 참된 빛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않기에
소경입니다.”(2신자 편지, 63-66)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실행하도록 불렸습니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순간 헛군데 정신을 쓰고 마음을 빼앗기며
소경이 되어버리는지 모릅니다. 생명이요 사랑이신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일을 행한다는 건 그토록 어려운 일입니다. “죄를 짓는 일은
육신에 달콤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육신에 쓰기 때문이며, 모든
악과 악습과 죄는 마음에서 솟아나오기 때문입니다(2신자 편지, 69)
그렇지만 다시 눈을 뜨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면서, 그분이 원하시고
실천하신 사랑과 생명의 역사를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니도록 힘써야 합니다. 생명이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너울을 걷어버리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생명의 길을 걷기 위해, 탐욕과 편견과
고정관념의 너울을 벗겨내고, 몸에 익은 습관의 벽을 허물어야겠습니다.
그 열린 지평에 비로소 생명이 솟아날 것입니다. 나아가 신앙생활이
내면적 체험이나 감성적인 만족에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상의
삶과 만남과 순간들이 바로 생명을 받아들이고 전달하며 나눠야 할
생명의 터입니다.
오늘도 온갖 탐욕과 근심걱정, 악습의 너울을 벗어버리고 깨끗한
영혼과 따뜻한 사랑을 품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그 사랑으로 길거리의
외로운 예수님, 소외당하고 무시당하시는 예수님, 배고프고 아파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았으면 합니다. 사랑의 동화와 헌신적 실천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우리 가운데 생명을 샘솟게 하는 거룩한 오늘이길
기도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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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말씀의 능력
오늘의 능력말씀 2018년 나해 3월14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오늘은 “말씀의 능력”이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새 아파트에서 두 집 살림을 하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바람 난 남편에게 두 집 살림을 해도 좋으니
제자훈련에 참석해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는 이 문제의 상황을 풀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아내는 각오를 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말한 것입니다.
어떻게든 말씀을 듣게 하려고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내자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 후에도 마음이 안 바뀌면 이혼을 해 주겠다 말을 합니다. 이러한
아내의 끈질긴 간청에 남편이 승낙을 하지요.
그런데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남편의 일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제자훈련에서 내주는 과제를 하려면 일주일 내내 예배드리고 성경을
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자훈련 중 하나님의 말씀이 남편을 깨뜨린 것입니다. 남편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두 집 살림을 정리하고 가정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인간의 힘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능히 풀어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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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사순 제4주간 수요일
2018년 나해 3월14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요한 5,17-30
군 생활은 지나고 나면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힘든 일들이 많기
마련입니다. 겨울이면 동계 훈련을 했는데, 제가 있었던 용인에서
안양까지 행군을 하였습니다. 도로 양옆을 길게 줄을 서서 걸었습니다.
소총을 들고, 군장을 메고 걷는 길이 힘들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면
반가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10분간 휴식’이라는 말입니다. 잠시 쉬면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군화의 끈을 다시 매기도 하고, 물을 마시기도
합니다. 잠시의 휴식이지만 다시금 행군할 힘을 얻었습니다.
예전에 낙동강을 건넌 적이 있습니다. 나환자 마을에 봉사 활동을
갔다가, 동네 아이들과 함께 꽁꽁 언 낙동강을 건너 ‘자장면’을 먹고
왔었습니다. 날씨는 추웠지만 아이들과 함께 건넜던 그 언 강이 문득
생각납니다. 강은 두껍게 얼어도 어딘가에 숨을 쉬는 구멍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강물도 숨을 쉬고, 얼음 아래 있는 물고기들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자연의 신비는 참 묘한 것이어서, 물이 얼면 물에서
뜬다고 합니다. 사실 얼면 비중이 더 나가서 가라앉아야 하는데 물만은
위로 뜨기 때문에 물속의 모든 생명체는 얼어붙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얼음 두께가 어느 정도 되면 그 아래의 물은 얼음의
보호를 받아 더 이상 얼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신비입니다.
주변을 보면 꽉 막힌 세상에 ‘숨구멍’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서먹서먹한 관계를 따뜻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그분들은 말은 하지
않아도, 있는 것만으로도 힘을 주기도 합니다. 물론 잘 되고 있는
단체를 꽁꽁 얼리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신들의 욕심과
자신들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뜻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지만 그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일은 정말 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숨구멍’과 같은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기도는 삭막한
세상을 이겨내는, 고통과 아픔을 견뎌내는 ‘숨구멍’과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모두 소중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心身不二’입니다.
현대인들은 마음이 없는 몸처럼 사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갈등과 분쟁은 그릇된 욕망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들의 몸은 하나의
개체를 이루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 모두 하나로
연결될 수 있음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 몸을 위해서 다른
이들의 몸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은
어쩌면 인류라는 같은 영혼의 아픔과 고통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마음’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품어주는 사랑입니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만 베푸는 사랑은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습니다.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는 달랐습니다.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 사랑이 생명을 살리고, 이
사랑이 희망을 주고, 이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미가 자식을 잊을지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을 잊지 않고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자비와 용서, 친절과 온화함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하느님의 모습을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따뜻한 바람이십니다. 막힌 것은 뚫어
주시고, 얼어붙은 것은 녹여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온몸을 바쳐서
우리들 구원을 위한 ‘숨구멍’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생각해 봅니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가 속한
공동체를 얼리는 존재인가! 아니면 질식해서 숨이 멎을 것 같은
공동체에 사랑과 기쁨을 주는 ‘숨구멍’과 같은 존재인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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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마음 둘 자리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3월14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요한 5,17-30)
마음 둘 자리
예수님의 관심사는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38-40)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르는
사람은 결국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따라서 일상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은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나의 계획과 집착, 이기심과 낡은 생활 방식을 고쳐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계획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발에 꼭 맞는
신발이 편안하듯 우리가 주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매일이
편안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가운데
아버지와 하나가 되었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뜻을 행하는 가운데 주님과
일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더 이상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이가 됩니다.
공자께서도 “일흔이 되었을 때 하고 싶은 마음을 쫓아 그대로 하되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당신의 뜻이 하늘의 뜻과
온전히 일치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물론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마음껏 해도 부끄러움이
없는 일입니까? 인간적인 욕심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우선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바를 하십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주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으로 원하는 바를 마음껏 한다면
부끄러움이 있을 리 없습니다. 결국 우리 마음을 둘 곳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생명과 구원이 있기 대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생각에 우리를 일치시키고, 그분의 기도에 우리의
기도를 일치시키고, 그분의 행위에 우리의 행위를 일치시키고, 그분의
생명에 우리의 생명을 일치시킵시다”(마더 데레사).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박해하는 사람들까지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부디 주님과 하나 되는 기쁨과 행복이 넘쳐 나시길
기도드립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성형수술 :
못난 얼굴 수술 하는 것보단 못난 마음 수술하는 것이 더 낫다.
못난 얼굴 수술하면 얼굴만 예뻐지지만 못난 마음 수술하면
얼굴은 따라 예뻐지기 때문이다. -이규경-
이 사순절에 마음을 수술하여 주님과 하나 되기를 희망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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